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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브릿지(블루레이)

울프팩 2022. 7. 23. 18:08

때로는 인류가 한 사람에게 커다란 빚을 질 때가 있다.

일촉즉발 전쟁 위기의 상황에 막전막후에서 기민하게 활약한 사람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건지는 순간이 역사에 여러 번 등장한다.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이 제작하고 연출한 '스파이 브릿지'(Bridge of Spies, 2015년)도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1962년 사상 최초로 일어난 냉전 시대의 미국과 구 소련의 스파이 교환을 다룬 실화다.

 

그 중심에 제임스 도너번(톰 행크스 Tom Hanks)이라는 변호사가 있다.

하버드 법학대학원을 나온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 장교로 복무하다가 훗날 CIA의 모태가 된 미 전략 정보국(OSS)에서 일한다.

 

이때의 인연으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벌어진 나치 전범들을 단죄하는 재판에서 미국 측 수석 검사를 보좌했다.

이후 중령으로 전역 후 변호사가 됐다.

 

그런 그에게 1957년 구 소련 간첩 혐의로 체포된 루돌프 아벨(마크 라일런스 Mark Rylance)의 국선 변호 일이 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구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에 맞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아벨은 전후 첩보원 양성 일을 하다가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사진관을 운영하며 핵무기 관련 기밀을 염탐하는 간첩 활동을 했다.

 

도너번은 아무리 간첩이라도 기본적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에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제공돼야 한다"며 최선을 다해 변론한다.

덕분에 루돌프 아벨은 세간의 거센 여론에도 불구하고 30년형을 받고 수감됐다.

 

이때 미 공군 대위 출신으로 CIA에서 조종사로 일하던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가 몰던 미국의 전략정찰기 U2가 1960년 8월 소련 영토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맞아 격추됐다.

다행히 그는 목숨을 건졌으나 소련 감옥에 갇혀 1년 9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정보를 캐내려는 소련 방첩 조직의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미국과 소련은 경과가 어찌 됐든 두 사람의 존재가 중요했다.

두 사람 모두 떳떳하지 못한 일로 잡혔으나 워낙 중요한 정보를 알고 있어 존재 자체가 부담인 인물들이었다.

 

급기야 이들을 교환하기 위한 막후 협상이 벌어지고 이 일을 도너번 변호사가 맡게 됐다.

양측 정부가 나서서 협상하면 서로의 간첩질을 인정해야 하니 부담스러워 민간 차원의 인권 협상이라는 모양새를 갖춘 것이다.

 

군 경력과 아벨의 변호를 맡으며 막대한 중압감에도 흔들리지 않고 냉철함과 정확한 판단력을 보여준 도너번은 미국 정부를 대신해 협상가로 나설 만한 자질을 갖고 있었다.

결국 목숨을 걸고 적국을 넘나든 도너번의 활약 덕분에 소련 간첩 아벨과 미국의 스파이 조종사 파워스는 1962년 2월 동독과 서독의 경계선에 있던 베를린 글리니케 다리에서 역사적으로 맞교환돼 무사히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때 도너번은 베를린에 유학가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간첩으로 몰려 동독 감옥에 갇혔던 예일대 대학원생 프레드릭 프라이어까지 덤으로 구해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도너번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같은 해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요청으로 쿠바에 밀사로 파견돼 카스트로와 협상하며 CIA 공작으로 쿠바 피그만을 침공했다가 잡힌 공작원들과 쿠바에 억류된 민간인 등 1,100여 명의 목숨도 구해냈다.

이 정도면 가히 역사에 길이 남을 협상가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이 과정을 지루하지 않고 긴장감 있게 묘사했다.

007과 달리 민간 협상가의 활약을 다룬 만큼 액션보다는 대화 위주로 진행돼 자칫 잘못하면 지루할 수도 있는데 스필버그 감독은 사건의 배경을 적절히 삽입해 위기의 순간들을 긴박하게 묘사해 전혀 늘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도너번이 느끼는 중압감과 적국에 체포된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심 등 섬세한 심리 묘사도 놓치지 않고 설득력 있게 영상으로 표현했다.

톰 행크스를 비롯해 마크 라일런스 등 배우들의 과장되지 않은 침착한 연기도 훌륭했다.

 

여기에 유명한 야누스 카민스키(Janusz Kaminski) 촬영감독은 넓은 와이드 스크린의 공간감을 충분히 살린 촬영으로 위기의 순간들을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실감 나게 잘 보여줬다.

한마디로 믿기 힘든 놀라운 이야기를 뛰어난 구성과 연출로 생생하게 전달한 감독의 연출력, 배우들의 연기, 훌륭한 촬영이 적절하게 결합된 수작이다.

 

1080p 풀 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차분하게 필터링된 색감이 잘 살아 있고 윤곽선이 깔끔하다.

 

DTS HD MA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리어 채널을 적절하게 활용해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부록으로 냉정 상황 설명, 1960년대 베를린 재현 설명, U2 활동 소개, 스파이 교환 장면 촬영 등에 대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모두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루돌프 아벨의 거처를 보면 창에서 쏟아지는 빛과 어둠이 적절하게 섞이며 각종 소품들과 함께 공간을 가득 채우는 훌륭한 미장센느를 보여준다. 아벨은 소련으로 돌아가 레닌 훈장을 받는 등 영웅 대접을 받으며 KGB 교관으로 활약하다가 1971년 폐암으로 죽었다.
스필버그 감독의 아버지 아놀드도 냉전시대 GE의 기술자로 구 소련에 가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제임스 도너번 변호사는 냉전시대에 빨갱이로 몰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소련 간첩 아벨의 국선 변호를 맡았다.
미 CIA는 공군의 U2 정찰기를 운용해 소련, 중동, 서남아시아 등의 고고도 사진 촬영 등 첩보 활동을 했다. 제작진은 바일 기지에서 미 공군의 도움으로 1980년대 활동한 실제 U2기를 촬영했다. 게리 파워스 아들이 U2 격납고 장면에 깜짝 출연했다.
U2 정찰기는 자폭용 폭탄이 설치돼 피격시 조종사가 이를 터뜨리도록 돼 있다. 그러나 게리 파워스는 미처 스위치를 작동하지 못하고 동체 밖으로 튕겨나가 소련에 체포됐다. 아일랜드 밴드 U2는 이 비행기명을 따서 밴드명을 지었다. U2의 리더 보노의 딸 이브 휴슨이 도노번의 딸로 깜짝 출연.
게리 파워스는 구 소련 법정에서 간첩죄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다. 그는 약 2년간 온갖 고문을 받았으나 끝내 기밀을 누설하지 않은 채 버텼다.
제작진은 실제 베를린 장벽과 같은 재료를 사용해 폴란드 브라티슬라브시에 약 250m 길이의 벽을 만들었다.
벽에 당시 소련 서기장이었던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사진이 보인다. 에단과 조엘 코엔 형제가 긴장감 넘치는 각본을 썼다.
폴란드 브라티슬라브시에서 1960년대 동베를린 거리 장면들을 찍었다.
실제 스파이를 맞교환한 역사적 장소 글리니케 다리에서 해당 장면을 찍었다.
게리 파워스는 귀국 후 비겁한 생존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CIA를 떠났다. 이후 LA의 한 방송사에서 헬기 조종사로 일하다가 1977년 추락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