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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하트 오브 더 씨(블루레이)

울프팩 2022. 7. 18. 00:08

예전에 읽었던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백경'(Moby-Dick)은 복수의 광기로 점철된 드라마였다.

거대한 흰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허브 선장의 복수심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처사는 광기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다리를 잃은 분노로 평생에 걸쳐 목숨을 걸고 한 마리 짐승을 쫓는 행위를 이성적이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에이허브는 왜 그리 포경선을 몰아 고래를 쫓았을까, 그것이 백경이 남긴 숙제였다.

 

그 궁금증을 풀어준 것이 론 하워드(Ron Howard) 감독의 '하트 오브 더 씨'(In the Heart of the Sea, 2015년)다.

이 영화는 너새니얼 필브릭이 쓴 르포르타주 문학인 '바다 한가운데서'를 원작으로 한 실화다.

 

원작은 1820년 남태평양에서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포경선 에식스호와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1819년 8월 에식스호가 출항한 미국 낸터킷 섬은 고래잡이로 유명한 마을이다.

 

당시 고래기름은 산업의 원동력이었다.

가로등을 비롯해 집집마다 밤을 밝히는 등잔불, 공장의 기계까지 모두 고래기름을 사용했다.

 

지금으로 치면 석유인 셈이다.

그러니 고래를 잡아 기름을 뽑으면 한 밑천 거머쥘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고래잡이에 나섰다.

 

백경에서 에이허브가 집요하게 고래잡이에 나선 것도 개인적인 복수 못지않게 이 같은 시대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즉 산업적인 배경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백경은 그저 개인의 피 맺힌 복수극으로 끝나는 소설이 되고 만다.

 

하지만 이를 알고 나면 백경은 거대한 고래기름 산업에 얽힌 시대적 비극과 서사가 촘촘한 그물처럼 얽힌 역사극으로 다가온다.

에식스호도 같은 꿈을 품고 고래잡이에 나섰다.

 

출발은 좋았다.

여러 마리의 고래를 잡아 기름을 채우면서 조지 폴라드 선장과 선원들은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었다.

 

귀향을 앞둔 에식스호는 남태평양에서 향유고래 떼가 있는 노다지 어장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고래를 잡던 선원들은 뜻하지 않게 모카 딕이라는 이름이 붙은 80톤이나 나가는 거대한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았다.

 

다른 고래와 달리 강력한 머리뼈 덕분에 들이받으면 망치 같은 위력을 발휘하는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에식스호는 침몰하고 말았다.

간신히 세 척의 보트에 나눠 탄 선원들은 구조를 바라며 망망대해를 떠돌았다.

 

94일간 7,200km를 표류한 21명의 선원들은 물과 식량이 떨어져 겨우 8명만 살아남았다.

급기야 보트 위에서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고 이마저도 떨어지면 제비뽑기를 해서 서로 잡아먹기까지 했다.

 

허먼 멜빌은 충격적이고 놀라운 이야기를 생존 선원으로부터 듣고 소설 백경, 즉 '모비 딕'을 썼다.

영화에도 멜빌이 등장해 모비 딕의 모티브를 얻는 장면이 나온다.

 

'러시 더 라이벌' '뷰티풀 마인드' '아폴로 13' '아메리칸 메이드' 등 실화를 영화로 많이 만든 하워드 감독은 이 과정을 조지 폴라드(벤자민 워커 Benjamin Walker) 선장과 1등 항해사 오웬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 Chris Hemsworth)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감독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갈등하다가 생존을 위해 화해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 보니 이야기가 늘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컴퓨터 그래픽으로 실감 나게 재현한 고래잡이 장면은 놀랄 만큼 위력적이다.

'분노의 역류' '다빈치코드' '천사와 악마' '한 솔로' 등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를 연출한 하워드 감독의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도록 장면을 구성하는 장점이 고래잡이 장면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다만 극적 재미를 위해 실제와 다르게 일부 구성을 바꿨으니 사실을 제대로 알려면 영화보다 국내 번역 출간된 책을 보는 것이 좋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잿빛 바다 등 청회색의 암울한 색감이 잘 살아 있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압권이다.

 

웅장한 사운드가 사방 채널을 휘감으며 청취 공간을 뒤흔든다.

부록으로 하워드 감독의 기록영상, 캐릭터 소개, 고래잡이와 허먼 멜빌 이야기, 모비딕과 비교 및 삭제 장면, 확장 컷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모든 부록은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미국 낸터킷 섬은 19세기 당시 세계 최고의 고래잡이항으로, 요즘의 중동 같은 곳이었다.
에식스호는 26m 길이의 포경선이다. 6명씩 7.6m 길이의 작은 보트를 타고 나가서 작설을 던져 고래를 잡았다.
크리스 햄스워스가 1등 항해사가 된 작살잡이 오웬 체이스를 연기. 그는 농부의 아들이어서 뱃사람들에게 무시당했고, 그래서 더더욱 고래잡이에 열중했다.
향유고래 머리에 기름을 퍼내기 위해 구멍을 뚫고 선원이 들어간다. 공기와 닿으면 기름이 굳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머리 모형을 만들어 이 장면을 촬영했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조지 폴라드 선장은 유명한 고래잡이 가문 출신이다. 그는 에식스호 침몰 후에 포경선과 상선 선장을 잇따라 역임했으나 모두 좌초되거나 침몰돼 더 이상 선장을 하지 못하고 등대지기로 살았다.
고래잡이 등 많은 장면을 영국 런던 외곽의 리베스덴에 위치한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 수조에서 찍었다.
오웬 체이스는 나중에 포경선 선장과 선주가 될 정도로 성공했으나 팔자가 기구했다. 바다에 있는 동안 첫 번째와 두 번째 결혼한 아내가 죽었고, 세 번째 결혼한 아내는 출항한 사이 바람을 피워 아이를 낳아 이혼했다. 네 번째 아내와 결혼 후 은퇴했으나 심한 두통에 시달리다가 보호시설에서 말년을 보내고 62세로 사망했다.
해상 장면은 카나리아 제도에서 촬영. 배우들은 체중 감량을 위해 하루 500, 600칼로리만 섭취했다.
배우들은 노젓기와 작살 던지기 등 포경기술을 배웠다. 영화에서는 선주들이 낸터킷의 포경 산업 보호를 위해 에식스호 침몰과 식인 이야기를 감추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당대에 널리 알려졌다.
에식스호의 급사 소년이었다가 살아남아 멜빌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토마스 니커슨은 나중에 상선 선장이 됐고, 은퇴 후 낸터킷에서 여관을 운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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