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비이드 린(David Lean)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 1962년)는 다분히 연극적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T.E Lawrence, T.E 로렌스)의 일대기를 다룬 이 작품은 요즘 시각에서 보면 셰익스피어의 연극 무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이다.
그림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주연인 피터 오툴(Peter O'Toole)의 약간 과장된 듯한 연기가 그렇다.
어쩌면 당시 크게 이름을 떨치지 못한 피터 오툴 입장에서는 강렬한 연기로 사람들의 눈에 띄고 싶었을 수 있다.
논란의 인물 T.E 로렌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T.E 로렌스는 아랍어를 할 줄 알아서 제1차 세계대전 때 이집트 카이로로 파견됐다.
영국 육군의 정보장교 역할을 하게 된 그는 당시 중동 지역을 장악한 오스만 제국, 즉 터키의 영향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아랍 국가들이 뭉쳐 터키에 대항하도록 만드는 밀명을 받는다.
로렌스는 서로 반목하며 대립하던 여러 아랍 부족들을 진심으로 설득하는 과정에서 환심을 샀다.
덕분에 아랍 부족들과 함께 터키의 요새였던 아카바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를 기습해 점령하면서 아랍인들이 터키를 몰아내고 독립하도록 도와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추앙받았다.
하지만 터키군에게 잡혀 성적 고문을 당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으로 혼란을 겪었다.
무엇보다 아랍 민족회의를 통해 하나 된 아랍국가 건설을 꿈꿨으나 여러 부족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열강들의 간섭으로 무산되면서 커다란 좌절을 겪었다.
이후 영국으로 돌아갔다가 공군에 병사로 재입대하는 등 방황을 하다가 1935년 오토바이 사고로 47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는 아랍 전쟁을 치른 과정을 '지혜의 일곱 기둥(The Seven Pillars of Wisdom)'이라는 책에 담았는데 이를 토대로 데이비드 린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다.
사후 그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린다.
아랍 민족을 도운 영웅이라는 호평과 정작 아랍 민족에 대한 이해보다 영국의 이익을 대변해 활동한 이야기를 다소 과장되게 부풀렸다는 혹평이다.
영화 초반에도 로렌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리는 대목들이 나온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아무래도 로렌스의 저서를 바탕으로 한 만큼 냉정한 평가보다 중동 활동을 따라가며 보여주는 식으로 구성했다.
그렇다 보니 아랍인들이 로렌스에게 전적으로 의지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여 지나친 백인 우월주의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아랍 민족의 자주성과 독립투쟁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
스펙터클한 영상이 압권
하지만 로렌스의 영웅적 활동을 담아낸 영상만큼은 군말이 필요 없을 만큼 압권이다.
70미리 영상을 통해 호쾌하게 펼쳐지는 사막의 풍경을 보면 새삼 '스펙터클'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린 감독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실제 요르단, 스페인, 모로코를 옮겨 다니며 사막의 풍광을 담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프로젝터를 이용해 대화면으로 봤을 때 빛이 난다.
특히 광활한 검은 사막 위로 핏빛처럼 붉은 해가 떠오르는 영상은 압권이다.
끓어오르는 사막의 신기루 사이를 뚫고 작은 점으로 시작해 서서히 형체가 커지며 말을 타고 알리 왕자(오마 샤리프 Omar Sharif)가 등장하는 장면도 강렬하다.
한마디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열사의 사막을 더 할 수 없이 시원하고 장대한 풍광으로 담은 영상이 1960년대 블록버스터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이다.
여기에 요르단과 모로코 군대까지 동원해 아카바 요새와 다마스쿠스 습격 등을 실감 나게 재현했다.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시절인 만큼 거대한 전투 장면을 실제 인력과 말, 낙타를 동원해 스펙터클 하게 구현했다.
특이하게도 로맨스나 러브라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엑스트라를 제외하고 여배우가 아예 없다.
심지어 여성 엑스트라조차도 보이지 않는 전작 '콰이강의 다리'에서도 그렇듯 린 감독은 남자들의 강렬한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박력 있는 영상으로 담아내는데 일가견 있다.
피터 오툴 외에 알렉 기네스(Alec Guinness), 앤소니 퀸(Anthony Quinn) 등 대배우들의 호연과 애드리언 볼트 경의 지휘로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웅장하게 연주한 모리스 자르의 음악도 영화를 빛냈다.
오로지 로렌스 하나만 보고 달린 이 작품은 제3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촬영, 편집, 미술, 음악, 녹음상 등 무려 7개 분야에서 수상했다.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4K
새로 출시된 4K 타이틀은 무려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4K는 3시간 47분 분량의 본편을 두 장에 디스크에 나눠 담았고, 일반 블루레이도 본편과 부록을 각각 한 장씩 수록했다.
2160p UHD의 2.2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의 화질은 60년 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화질이 좋다.
물론 오래전 작품인 만큼 지글거림이 보이고 윤곽선도 두껍지만 잡티나 스크래치 등 필름 손상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존 블루레이 타이틀보다 개선된 화질은 색감이 뚜렷하고 진하며 샤프니스도 향상돼 윤곽선이 선명하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훌륭하다.
오토바이 이동방향을 소리로만 확실히 알 수 있을 만큼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이 좋다.
기차 폭발 장면 등을 보면 저음이 둔중하고 박력 있게 울린다.
부록은 제작과정, 피터 오툴의 회고, 삭제 장면, 복원 작업을 지휘한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설명,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촬영장 방문 영상 등 풍부한 내용들을 담았다.
대부분의 부록이 한글자막을 지원하며 4K 복원작업 등 일부는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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