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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블루레이)

울프팩 2022. 6. 22. 00:44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花とアリス殺人事件, 2015년)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와 연결되는 작품이다.

특이하게도 슌지 감독은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시도했다.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내용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하나와 앨리스'의 속편이면서 실사 영화보다 이전 얘기를 다뤘다.

 

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나

새로 중학교에 전학 온 아리스(아오이 유우)가 학급에 장기 결석하는 학생인 하나(스즈키 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하나는 살해당했다고 알려진 유다와 관련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아이들 사이에 왕따를 당한다.

 

아리스가 비밀을 캐기 위해 하나를 찾아가면서 둘 사이에 묘한 우정이 싹트게 된다.

이렇게 친해진 두 사람의 이야기가 '하나의 앨리스'로 연결된다.

 

슌지 감독은 당연히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만큼 실사 영화의 배우들을 그대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실사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 만에 등장한 속편에서 훌쩍 나이를 먹은 배우들이 10년 전보다 더 어린 중학생을 연기하는 것은 무리다.

 

할 수 없이 슌지 감독은 세월의 흔적을 피하기 위해 애니메이션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잘 쓰지 않는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만들었다.

 

'비포 선라이즈' 시리즈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이 애용하는 로토스코핑은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촬영해 그림으로 전환하는 애니메이션 방식이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웨이킹 라이프' '스캐너 다클리' 등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다.

 

로토스코핑의 장점을 무시한 이와이 슌지

로토스코핑은 배우들의 개성, 즉 특색 있는 표정과 연기 등을 살리기 위해 주로 사용한다.

그런데 슌지 감독은 다른 방식으로 로토스코핑을 활용했다.

 

인물들의 얼굴을 평면적으로 단순화시켜 배우들의 표정이나 특징이 살아나지 않는다.

오히려 로코스코핑의 장점을 무시한 셈이다.

 

대신 배우들의 동작에 집중했다.

아리스가 발레를 추거나 뛰어가는 장면 등을 로토스코핑으로 살렸다.

 

그것도 애니메이션에서 잘 쓰지 않는 느린 동작으로 묘사했다.

이것도 특이하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더 많은 컷을 그려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서 슬로 모션을 잘 쓰지 않는다.

오히려 저패니메이션의 경우 슬로 모션보다 정지 화면으로 시간의 완급을 조절한다.

 

그런데 슌지 감독은 마치 실사 영화를 찍듯 슬로 모션을 여러 장면에 끼워 넣었다.

그 바람에 애니메이션이면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은 아름답지만 배우들 매력이 살아나지 않아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슌지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잘 몰라서 익숙한 실사 영화처럼 접근한 것도 있지만 저패니메이션의 과장된 묘사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팬인 슌지 감독은 기존 애니메이션들이 컷 생략을 통해 강조하는 동작들이 너무 과장돼 자연스럽지 않다고 봤다.

그러다가 우연히 랠프 박시 감독의 로코스코핑 애니메이션 '아메리칸 팝'을 보고 배우들의 연기처럼 동작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이 작품을 로토스코핑으로 만들었다.

 

비록 배우들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아오이 유우와 스즈키 안 등 배우들은 연기 후 대사를 녹음했다.

 

하지만 '하나와 앨리스'의 캐릭터를 목소리만으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다.

그만큼 이 작품 속 캐릭터는 실사 영화 속 배우들을 닮지 않아 동질감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슌지 감독의 감성이 듬뿍 배어있는 풍경만큼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아련하게 노을이 비낀 하늘 아래 마을 풍경 등을 보면 맑고 담백한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특히 밑그림 선을 그대로 드러낸 그림은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 손그림에 가깝다.

색상마저 물기를 머금고 번진 것처럼 처리해 의도적으로 수채화 그림의 느낌을 강조했다.

 

여기에 헤쿠토 파스칼이 만든 주제곡 'Fish in the Pool'도 영화와 잘 어울렸다.

그림과 음악만 놓고 보면 슌지 감독 특유의 낭만적 감수성이 어우러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하나와 앨리스'의 히로인 아오이 유우와 스즈키 안의 매력이 묻어나지 않아 아쉽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윤곽선이 깔끔하면서 맑고 투명한 색감이 그대로 살아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소리가 적당히 퍼지면서 편안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들 인터뷰, 시사회와 개봉 당일 무대 인사 영상,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상 인터뷰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들도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와이 슌지 감독은 '하나와 앨리스' 개봉 후 이듬해 이 작품의 대본을 완성했다.
처음에는 초등학생들이 등장하는 내용이었으나 배우들이 연기하기에는 무리일&nbsp; 것 같아 수정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슌지 감독은 평소 즐겨 사용하던 실사 조명을 애니메이션에 도입했다. 그래서 기존 애니메이션에 없는 번진 듯한 색감의 특이한 배색이 나왔다.
원래 슌지 감독은 미술을 공부했고 만화가가 되려는 생각을 했다. 작품 포스터도 감독이 그렸다.
슌지 감독은 음료수 광고를 기획하면서 두 소녀가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구상했다. 원래 제목은 하나와 앨리스가 아니라 스즈리와 나나메라는 소녀가 등장하는 '스즈리와 나나메 이야기'였다.
슌지 감독은 우연히 위성방송에서 랠프 벅시 감독의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아메리칸 팝'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슌지 감독은 지브리스튜디오 대표를 지낸 스즈키 도시오를 찾아갔다. 스즈키는 로토스코핑에 대해 반대했다. 일본에서는 실사를 그림으로 바꾸는 것을 선호하지 않아 제작하기 힘들다고 봤기 때문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도 이 작품의 슬로 모션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슬로 모션이 실사와 달리 이상하게 보여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제작사에서는 당시 흐름에 맞춰 이 작품을 3D로 만들기를 원했다.
슌지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면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와 '언어의 정원'을 여러 번 봤다.
'하나와 앨리스'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 그림으로 재현됐다. 이 작품은 나중에 소설과 만화책으로도 출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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