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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에로스(블루레이)

울프팩 2022. 6. 20. 00:36

2004년 나온 '에로스'(Eros)는 왕가위(Kar Wai Wong),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 감독 3명이 만든 옴니버스 영화다.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한 감독 3명의 서로 다른 시선과 연출 기법을 비교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이 1995년 '구름 저편에' 연출 도중 중풍에 걸려 어려움을 겪으면서 죽기 전에 사랑에 대한 3부작을 만들고 싶다는 뜻을 현실화한 시리즈다.

여기에 안토니오니 감독의 영향을 받은 후배 감독들이 뜻을 함께 했다.

 

원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참여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맞지 않아 대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참여했다.

결국 이 작품은 2007년 사망한 안토니오니 감독의 유작이 됐다.

 

왕가위 '그녀의 손길'

왕가위 감독이 만든 '그녀의 손길'(The Hand)은 폐병에 걸려 죽어가는 매춘부(공리 Li Gong)를 사랑하는 재단사(장첸 Chang Chen)의 순애보다.

매춘부를 사랑하지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재단사의 애달픈 순애보를 왕가위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으로 풀어냈다.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왕 감독의 전작인 '화양연화' '2046'과 비슷하다.

1960년대 홍콩을 무대로 두 사람의 아련한 사랑을 몽환적이고 관조적인 영상으로 담아낸 점이 닮았다.

 

특히 왕가위와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크리스토퍼 도일(Christopher Doyle) 촬영감독은 마치 훔쳐보는 듯한 카메라 움직임으로 두 사람의 안타까운 마음과 엇갈리는 사랑을 대변한다.

무엇보다 베드신 이상으로 관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여인의 미묘한 손길을 잘 잡아냈다.

 

색감도 차분하고 음악도 좋다.

1960년대 홍콩에 대한 진한 향수를 갖고 있는 왕가위 특유의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스티븐 소더버그 '꿈속의 여인'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한 '꿈속의 여인'(Equilibrium)은 유머러스한 단편이다.

꿈속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여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남성이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내용이다.

 

여러 가지 강박증이 가져오는 스트레스에 대한 도피처로 사랑이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와 앨런 아킨(Alan Arkin)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볼 수 있는 가벼운 소품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위험한 관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위험한 관계'(The Dangerous Thread of Things)는 사랑에 대해 솔직하고 직접적인 감독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서먹해진 관계를 회복하고자 아내와 여행을 떠난 남자가 그곳에서 여인을 만나 뜻밖의 사랑을 하는 이야기다.

 

안토니오니 감독답게 헤어 누드까지 그대로 보여주며 거침없이 사랑을 묘사한다.

다소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사랑이야기지만 지나치게 감각적으로 흘러 인물들의 감정과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작품에 따라 미세한 지글거림이 보이고 샤프니스도 떨어진다.

 

색감도 약간 들뜬 편.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리어 채널에서 라디오와 천둥소리가 들리는 등 소리의 방향감이 좋다.

부록으로 왕가위 감독 인터뷰, 공리와 장첸 인터뷰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세 작품 가운데 완성도가 가장 뛰어난 왕가위 감독의 '그녀의 손길'. 왕 감독은 2011년 칸영화제에서 만난 제작사로부터 이 작품의 제의를 받았다.
공리의 도도한 표정연기가 인상적이다.
왕가위는 상하이 출신 작가의 단편 '사교춤 무용수의 황혼'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했다.
왕가위 감독은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찍고 싶었으나 사스가 발생하는 바람에 상하이에 가지 못해 1960년대 홍콩으로 배경을 바꿨다. 제작진도 마스크를 쓰고 촬영하면서 최대한 신체 접촉을 피했다.
사람의 손이 참으로 관능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 음악은 독일의 피어 라벤이 맡았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꿈속의 여인'. 현실을 흑백, 꿈을 컬러로 촬영.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매일 밤 꿈속에 나타나는 정체모를 여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 이야기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이 작품의 각본을 직접 쓰고 촬영까지 했다.
안토니오니 감독이 제작 당시 건강이 좋지 않아 3명의 감독이 옴니버스로 만들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위험한 관계'. 안토니오니 감독답게 적나라한 육욕의 향연이 펼쳐진다.
마세라티를 몰고 비좁은 출구를 지나는 장면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호수에서 물놀이하며 노래를 부르는 여인들 모습은 그리스 신화의 사이렌을 연상케 한다. 2001년 이탈리아 투스카니 지역 호수에서 촬영.
안토니오니 감독은 6주 동안 촬영했다. 촬영은 미드 시리즈 '왕자의 게임'과 '롬'을 찍은 마코 폰테코보가 맡았다.
안토니오니 감독은 '구름 저편에'처럼 자신이 쓴 '티베르강에서의 볼링'에 소개한 작품을 원작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에 출연한 루이자 라니에리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자위 장면 등을 찍고 싶지 않았으나 감독의 설득에 어쩔 수 없이 촬영하고 나서 충격을 받아 토할만큼 아팠다"고 토로했다. 결국 프랑스 개봉 당시 약 3분 가량이 잘려 나갔다.
이탈리아의 유명 화가 로렌조 마토티의 그림이 세 편의 이야기 사이에 인서트 컷으로 들어간다. 이때 흐르는 음악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그녀에게'에서 '쿠쿠루쿠쿠 팔로마'라는 노래를 부른 브라질의 자작곡 가수 카에타노 벨로소가 영화를 위해 만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라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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