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진주만 기습을 한 이듬해인 1942년 4월 조선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을 강제 징용했다.
이렇게 전국에서 가려낸 사람이 3,000여 명.
이 가운데 친일파 자제들을 제외한 2,700명이 군속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이 침략한 동남아 전선에 파견됐다.
특히 영어를 잘하는 300명은 태국의 콰이강다리 공사현장인 제4 포로수용소 일대로 보내졌다.
원작에 없는 한국 소설 '콰이강의 다리'에 숨은 비극
그들은 그곳에서 다리 공사에 강제 동원된 연합군 포로들을 감시하며 통역 등 일본군 보조 일을 했다.
그 가운데 홍종묵 씨는 제4 포로수용소장과 영국군 포로 대표 사이에 통역을 맡았다.
그렇다 보니 포로들의 미움과 일본군의 차별 등 이중고를 겪었다.
그 바람에 끌려간 조선인 군속들은 1945년 일본 패전 후 모두 전범으로 체포됐다.
콰이강 다리 공사가 너무 힘들어 1만 6,000명의 포로가 죽다 보니 연합군의 분노와 적개심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조선인 군속들은 홍 씨를 포함한 24명이 사형, 28명은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사형대기 중 2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던 홍 씨는 포로시절 도움을 받은 영국군 군의관의 증언 덕분에 무기로 감형된 뒤 도쿄 형무소로 이감됐다.
그렇게 졸지에 죄수가 된 그들은 철저하게 조국에서 잊혀졌다.
스스로 구명운동을 펼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1955년까지 차례로 가석방됐다.
가석방은 감옥살이만 하지 않을 뿐 여전히 죄수 신분이다.
그래서 일본을 떠날 수 없었던 그들은 하나씩 둘씩 자살하거나 정신병원에서 죽어갔다.
홍 씨는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교토의 우토로에서 일본의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준비하다가 1997년 82세로 한 많은 삶을 마감했다.
홍 씨를 비롯한 조선인 군속들의 비극은 소설가 정동주 씨가 1999년 출간한 소설 '콰이강의 다리'로 세상에 알려졌다.
소설보다 할리우드 영화로 더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 1957년)에는 이처럼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가슴 아픈 우리 민족의 비극이 서려 있다.
전쟁의 비극과 아이러니 다룬 데이비드 린의 수작
데이비드 린(David Lean) 감독은 콰이강의 다리 건설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영국군 포로들과 일본군을 통해 전쟁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이야기했다.
영화 속 콰이강의 다리는 아무리 험난한 환경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으려는 영국군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표상이다.
아울러 무지막지한 전쟁으로 문명을 파괴하는 인간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영화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실제 역사와 달리 사실을 왜곡했고, 그런 영웅주의식 전쟁놀이로 포장된 부분들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다.
그럼에고 불구하고 이 작품은 데이비드 린 특유의 서사가 돋보이는 연출과 수려한 영상 속에 인물들 간의 긴장 관계가 잘 묘사된 수작이다.
덕분에 이 작품은 제3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 감독, 남우주연(알렉 기네스 Alec Guinness), 촬영, 음악, 편집, 각색상 등 7개 부문 상을 받았다.
알렉 기네스, 윌리엄 홀든의 열연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대배우들의 열연이다.
긍지의 표상인 영국군 니콜슨 대령을 연기한 알렉 기네스와 미군 장교를 연기한 윌리엄 홀든(William Holden)의 연기가 돋보였다.
윌리엄 홀든은 연기를 하는 듯하지 않는 듯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특징이다.
프랑스의 장 가방이나 최불암처럼 화면 상에서 존재 자체가 자연스러운 배우들이다.
경우에 따라서 극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오히려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효과가 크다.
그만큼 '와일드 번치'나 '타워링' '제17 포로수용소' '선셋대로' 등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힘을 주지 않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다소 냉소적이면서도 맡은 일에 적극적인 미군 장교 역할을 설득력 있게 잘 해냈다.
더불어 할리우드 배우들에 비하면 유명세는 떨어지지만 일본 배우 하야카와 세슈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무사도에 맹목적으로 집착하며 지나친 자존심에 눈물을 쏟는 사무라이의 전형인 일본군 포로수용소장을 잘 살렸다.
그가 악역을 확실히 살려준 덕분에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건 알렉 기네스의 연기가 빛을 발했다.
아울러 제임스 도널드가 군의관으로 출연해 반가웠다.
여러 편의 전쟁 영화에 출연한 그는 '대탈주'에서 연합군 포로를 이끄는 리더로 등장했다.
가슴을 설레게 하는 유명한 주제곡
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유명한 주제곡이다.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주제곡을 알 정도로 말콤 아널드가 작곡한 '보기 대령의 행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초반 영국군 포로들이 수용소로 행진해 들어오면서 휘파람으로 부는 이 곡을 들으면 옛 추억에 가슴이 아련해진다.
1980년대 FM 라디오에서 전쟁 영화 관련 음악을 틀어줄 때마다 '대탈주' 주제곡과 함께 빠지지 않고 나왔다.
잭 힐드야드 촬영감독의 촬영도 칭찬할 만하다.
그는 길게 늘어선 다리와 강줄기 등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를 잘 살린 촬영으로 전쟁 영화의 웅장함을 강조했다.
특히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험준한 산세와 정글을 찍은 장면을 보면 제작진과 배우들의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절로 든다.
그러면서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특공대원과 현지 여성들의 모습을 내려찍은 장면을 보면 망중한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힐드야드의 촬영은 마치 그림으로 대화하듯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는 이 작품 외에도 앤소니 퀸이 출연한 '사막의 라이온', 히치콕 감독의 '토파즈', 유명한 전쟁 영화 '발지 대전투', 찰튼 헤스톤이 나온 '북경의 55일', 데이비드 린 감독의 명작 '여정' 등 유명한 작품들을 많이 찍었다.
음향 개선된 4K 타이틀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5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제작된 지 60년 넘은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화질이 괜찮다.
원본 필름의 거친 입자와 지글거림이 두드러지고 샤프니스가 떨어져 윤곽선이 두텁지만 예전 블루레이에 비하면 색감 등이 분명해졌다.
특히 잡티나 스크래치 등 필름 손상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훌륭하다.
예전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DTS-HD 5.1 채널인데도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았는데 4K 타이틀은 완전히 새로운 음향이라고 할 만큼 많이 달라졌다.
초반부터 정글의 다채로운 소리가 사방의 각 채널에서 쏟아진다.
그만큼 리어 채널도 적극 활용했다.
기차의 달리는 장면을 보면 소리의 방향감과 이동성이 잘 살아 있다.
폭발음도 웅장하다.
아쉬운 것은 부록이다.
예전 블루레이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부록에 한글자막이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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