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은 후기 작품들 때문에 극단적 보수주의 작가로 욕을 먹지만 그가 초창기에 내놓은 작품들은 상당히 훌륭하다.
특히 '사과와 다섯병정' '금시조' '칼레파 타 칼라' 같은 단편 소설들이 아주 빼어나다.
마당문고에서 나온 '사과와 다섯병정'이라는 이문열 단편집에 실린 '익명의 섬'도 마찬가지.
이 소설은 하나의 성씨로 이뤄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안이다 보니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밖에 없는 곳에서 익명의 존재인 떠돌이 부랑자가 성의 탈출구가 돼 준다는 내용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억눌린 사람들이 성의 일탈을 통해 도덕적 분출구를 찾는 내용을 다룬 이 소설을 보면 과연 그가 보수주의자가 맞는 지 의아할 정도.
하지만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 어떤 현상을 관찰하는데만 그치는 방관자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보면 그의 비판적 시각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1982년이 정치 사회적으로 억눌릴 대로 억눌린 암울한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일탈은 다른 방향으로나마 그 같은 시대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의식의 반영일 수도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안개마을'(1983년)은 바로 이문열의 '익명의 섬'이 원작이다.
영화는 원작의 기본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드러내고, 보충 설명이 될 만한 부분을 추가했다.
임 감독은 오랜 세월 영화판을 지켜온 노장답게 소설을 훌륭하게 영상화했다.
특히 안개에 휩싸인 마을을 몽환적으로 묘사한 롱 테이크나 정사 장면에서 훔쳐보는 듯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만만찮은 그의 내공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한 몫했다.
안성기는 소설 속에서 '몽롱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피부를 찔러 오는 것 같은 그 빛'으로 묘사한 깨철의 눈빛을 훌륭하게 묘사해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정윤희다.
유지인 장미희와 더불어 70년대 제 2기 트로이카 중의 하나였던 그는 당대 최고의 미인이다.
지금봐도 그의 은퇴가 아쉬울 만큼 미모가 단연 빛났는데, 이 작품에서 줄거리를 이끌어 가는 여선생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반가운 DVD 타이틀이다.
다만 몇 가지 내용은 원작과 다르다.
마을 주막의 술집 작부를 둘러싼 이야기와 빈 창고에서 벌어지는 대낮 정사 장면을 물레방앗간 등으로 바꾼 것들이다.
아쉬운 점은 소설에서 깨철이 여선생을 창고에 가두고 겁탈하며 작품의 주제가 되는 중요한 말들을 쏟아내는데 영화에서는 이를 전부 빼버렸다.
그 바람에 육체적 행위만 남으면서 왜 여선생이 깨철의 행동에 저항을 포기했는 지 등이 설명되지 않았다.
감독의 의도인 지, 제작사의 흥행 노림수인 지 알 수 없으나 이 부분은 소설을 충실하게 살리는게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작품을 영상화한 감독의 연출력과 정윤희 안성기 두 배우의 연기가 잘 어우러진 좋은 작품이다.
4 대 3 풀스크린의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윤곽선이 여지없이 뭉개지며 온갖 잡티가 난무하고 필름 노화로 인한 세로줄 무늬인 '비'까지 내린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는데 음량이 일정치 않아 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글자막을 넣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빠져있어 아쉽다.
부록은 배우와 임 감독 프로필이 전부.
<DVD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여선생을 연기한 당대 최고의 미인 정윤희. 개인적으론 성형이 없던 시절이니 요즘 배우들까지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배우로 기억한다. 한때 성룡이 첫 눈에 반해 청혼을 했다는 스캔들 기사가 나기도 했다. 영화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와 낮은 지붕의 집들, 그리고 하루 종일 한 두대 오가던 버스가 외부와의 유일한 연결수단이던 80년대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눈빛 연기가 살아 있는 안성기. 그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소설 제목이 의미하는 '익명의 섬'은 깨철이란 이름으로만 알려진 부랑자다. 주민들 모두가 친족인 마을에서 익명의 외부인인 그는 모든 여인들의 연인이다. 소설은 여인들과 깨철의 은밀한 관계를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영화는 술집 작부를 끼워넣어 마을 남자들도 복수하듯 바람을 피우는 상황이 돼버려 내용이 다소 난잡해졌다. 안개가 자우룩히 깔린 마을 풍경이 인상적이다. 촬영은 임 감독과 오랜 세월 호흡을 같이 한 정일성 촬영감독이 맡았다. 이 영화에서 황당했던 것은 음악이다. 뜬금없이 야주의 'Don't Go'와 'Only You'가 삽입곡으로 쓰였다. 당시 영국에서 결성된 듀엣인 야주가 1집 앨범을 내고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Don't Go'가 전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Only You'는 뮤직비디오처럼 눈 오는 철길 장면과 아주 잘 어울린다. 1983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1982년 제작 당시 사전 여론 조사를 통해 제목과 남녀주연배우를 정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국내 최초로 관객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 됐다. 영화는 '폐쇄되고 억제된 성이 있다면 익명의 섬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라는 이문열의 소설 속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설명했다.
특히 '사과와 다섯병정' '금시조' '칼레파 타 칼라' 같은 단편 소설들이 아주 빼어나다.
마당문고에서 나온 '사과와 다섯병정'이라는 이문열 단편집에 실린 '익명의 섬'도 마찬가지.
이 소설은 하나의 성씨로 이뤄져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안이다 보니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밖에 없는 곳에서 익명의 존재인 떠돌이 부랑자가 성의 탈출구가 돼 준다는 내용이다.
정치 사회적으로 억눌린 사람들이 성의 일탈을 통해 도덕적 분출구를 찾는 내용을 다룬 이 소설을 보면 과연 그가 보수주의자가 맞는 지 의아할 정도.
하지만 변화를 추구하기 보다 어떤 현상을 관찰하는데만 그치는 방관자적 자세를 견지하는 것을 보면 그의 비판적 시각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1982년이 정치 사회적으로 억눌릴 대로 억눌린 암울한 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일탈은 다른 방향으로나마 그 같은 시대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의식의 반영일 수도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안개마을'(1983년)은 바로 이문열의 '익명의 섬'이 원작이다.
영화는 원작의 기본 플롯을 그대로 따라가지만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드러내고, 보충 설명이 될 만한 부분을 추가했다.
임 감독은 오랜 세월 영화판을 지켜온 노장답게 소설을 훌륭하게 영상화했다.
특히 안개에 휩싸인 마을을 몽환적으로 묘사한 롱 테이크나 정사 장면에서 훔쳐보는 듯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만만찮은 그의 내공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한 몫했다.
안성기는 소설 속에서 '몽롱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다시 '피부를 찔러 오는 것 같은 그 빛'으로 묘사한 깨철의 눈빛을 훌륭하게 묘사해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정윤희다.
유지인 장미희와 더불어 70년대 제 2기 트로이카 중의 하나였던 그는 당대 최고의 미인이다.
지금봐도 그의 은퇴가 아쉬울 만큼 미모가 단연 빛났는데, 이 작품에서 줄거리를 이끌어 가는 여선생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반가운 DVD 타이틀이다.
다만 몇 가지 내용은 원작과 다르다.
마을 주막의 술집 작부를 둘러싼 이야기와 빈 창고에서 벌어지는 대낮 정사 장면을 물레방앗간 등으로 바꾼 것들이다.
아쉬운 점은 소설에서 깨철이 여선생을 창고에 가두고 겁탈하며 작품의 주제가 되는 중요한 말들을 쏟아내는데 영화에서는 이를 전부 빼버렸다.
그 바람에 육체적 행위만 남으면서 왜 여선생이 깨철의 행동에 저항을 포기했는 지 등이 설명되지 않았다.
감독의 의도인 지, 제작사의 흥행 노림수인 지 알 수 없으나 이 부분은 소설을 충실하게 살리는게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작품을 영상화한 감독의 연출력과 정윤희 안성기 두 배우의 연기가 잘 어우러진 좋은 작품이다.
4 대 3 풀스크린의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윤곽선이 여지없이 뭉개지며 온갖 잡티가 난무하고 필름 노화로 인한 세로줄 무늬인 '비'까지 내린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는데 음량이 일정치 않아 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글자막을 넣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빠져있어 아쉽다.
부록은 배우와 임 감독 프로필이 전부.
<DVD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여선생을 연기한 당대 최고의 미인 정윤희. 개인적으론 성형이 없던 시절이니 요즘 배우들까지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배우로 기억한다. 한때 성룡이 첫 눈에 반해 청혼을 했다는 스캔들 기사가 나기도 했다. 영화는 흙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와 낮은 지붕의 집들, 그리고 하루 종일 한 두대 오가던 버스가 외부와의 유일한 연결수단이던 80년대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눈빛 연기가 살아 있는 안성기. 그는 이 작품으로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소설 제목이 의미하는 '익명의 섬'은 깨철이란 이름으로만 알려진 부랑자다. 주민들 모두가 친족인 마을에서 익명의 외부인인 그는 모든 여인들의 연인이다. 소설은 여인들과 깨철의 은밀한 관계를 통해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영화는 술집 작부를 끼워넣어 마을 남자들도 복수하듯 바람을 피우는 상황이 돼버려 내용이 다소 난잡해졌다. 안개가 자우룩히 깔린 마을 풍경이 인상적이다. 촬영은 임 감독과 오랜 세월 호흡을 같이 한 정일성 촬영감독이 맡았다. 이 영화에서 황당했던 것은 음악이다. 뜬금없이 야주의 'Don't Go'와 'Only You'가 삽입곡으로 쓰였다. 당시 영국에서 결성된 듀엣인 야주가 1집 앨범을 내고 활동하던 시기였는데 'Don't Go'가 전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Only You'는 뮤직비디오처럼 눈 오는 철길 장면과 아주 잘 어울린다. 1983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1982년 제작 당시 사전 여론 조사를 통해 제목과 남녀주연배우를 정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국내 최초로 관객이 제작에 참여한 작품이 됐다. 영화는 '폐쇄되고 억제된 성이 있다면 익명의 섬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라는 이문열의 소설 속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 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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