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중반, 토굴에 살던 아이들이 있었다.
머나먼 산골 이야기가 아니라 서울, 그것도 강동으로 분류되는 곳 얘기다.
믿기 힘든 얘기일 수 있지만 지금의 서울중앙병원 자리에 높다란 언덕이 있었고, 그 경사면에 굴을 파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두침침한 입구를 구부리고 내려 가면 흙바닥에 무언가 깔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같은 반 친구를 따라 가봤던 그들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충격이었다.
하도 강렬해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습이 또렷이 기억나고, 아직도 코 끝에선 진한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코흘리개 시절이라 집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당시로서는 왜 그렇게 사는 지 의아했다.
그러니 맨날 웃통을 벗고 거의 반벌거숭이에 맨발로 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생경할 수 밖에 없었다.
여름 장마때면 배수가 되지 않아 언덕 아래는 물에 잠겨 강이 돼버렸다.
어른들이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물 속에서 고무보트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토굴은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알란 파커 감독의 '안젤라스 애쉬스'(Angela's Ashes, 1999년)를 보면서 가장 먼저 그 토굴이 떠올랐다.
영화 속 끔찍했던 가난의 풍경들이 그들의 모습과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아일랜드계 미국 작가 프랭크 맥코트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1930년대 끔찍하게 가난한 삶을 살았던 아일랜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먹을 게 없어 아이들은 하나씩 굶어죽고, 땔감이 없어 벽을 뜯어 불을 땐다.
비만 오면 1층은 물바다가 되고, 여름이면 마을 공동정화조에서 끔찍한 냄새가 퍼져 나간다.
이런 곳에서 질병과 죽음은 생활의 한 부분이다.
구걸하는 엄마를 보며, 죽어가는 형제들을 보며 아이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치는 것이 곧 삶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 곳에서 선악의 잣대는 무의미하며 오로지 생존이 곧 선이 된다.
바른 생활을 인도하는 종교나 학교, 아버지의 권위도 가난 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뿐이다.
그만큼 영화는 삶과의 처절한 투쟁을 냉철하게 보여준다.
지난하고 척박한 삶이 어찌나 그악스럽던 지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영화 속에서 끝없이 내리는 비 만큼이나 우울하고 축축한 영화지만, 그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찾는 아일랜드인들의 모습은 위대한 삶의 기록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아일랜드인들의 가난과 아픔과 용기의 기록이다.
이를 알란 파커 감독은 잿빛 영상으로 잘 담아 냈다.
애닮은 선율과 흥겨운 재즈가 뒤섞인 음악도 좋았다.
과연 '가난이 죄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지글거림과 링잉이 나타나고 잡티도 보인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감독 음성해설, 작가 음성해설, 제작과정, 감독과 배우인터뷰 등이 수록됐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한글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비가 오면 집 앞과 1층은 물웅덩이가 되며, 사람들이 오물을 쏟아내는 공동 정화조가 바로 집 앞에 있어서 악취가 진동한다. 이 풍경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계 미국 작가 프랭크 맥코트가 써서 1997년 퓰리처상을 받은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그는 아일랜드 리머릭에서 보낸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이 책에 담았다. 아이들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집 안 여기저기에 오물이 쌓인 곳에서 살아가다가 하나 둘 죽어간다. 무능한 부모를 연기한 로버트 칼라일과 에밀리 왓슨. 피어스 브로스넌과 스테픈 리아도 로버트 칼라일이 연기한 아버지역 후보였다. 원작자인 프랭크 맥코트는 뉴욕에서 30년간 교사로 일했고, 68세에 원작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2009년 뉴욕 맨하튼에서 78세 나이에 흑색종으로 타계했다. 소년의 얼굴을 표지로 한 책과 영화 포스터는 빌 카이에가 작업했다. 제임스 캐그니가 출연한 갱스터 무비가 극 중 영화관 상영작으로 나온다. 비 내리는 장면은 할리우드의 강우기를 동원해 촬영. 빌리 할리데이의 'Your Mother's Son-in-law' 등 재즈 넘버들이 흘러 나온다. 'Kaiser Bill'이란 곡은 감독이 작곡. 돈이 없다보니 크리스마스에 양머리를 사서 요리해 먹는 장면. 집단으로 자위 행위를 하는 등 그 또래들의 문화도 나온다. 알란 파커 감독도 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겁주는 의사 역할로 깜짝 출연. 촬영은 '벅시 말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버디' '페임' 등 알란 파커 감독과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마이클 세레신이 담당.
머나먼 산골 이야기가 아니라 서울, 그것도 강동으로 분류되는 곳 얘기다.
믿기 힘든 얘기일 수 있지만 지금의 서울중앙병원 자리에 높다란 언덕이 있었고, 그 경사면에 굴을 파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두침침한 입구를 구부리고 내려 가면 흙바닥에 무언가 깔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같은 반 친구를 따라 가봤던 그들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충격이었다.
하도 강렬해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습이 또렷이 기억나고, 아직도 코 끝에선 진한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코흘리개 시절이라 집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당시로서는 왜 그렇게 사는 지 의아했다.
그러니 맨날 웃통을 벗고 거의 반벌거숭이에 맨발로 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생경할 수 밖에 없었다.
여름 장마때면 배수가 되지 않아 언덕 아래는 물에 잠겨 강이 돼버렸다.
어른들이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물 속에서 고무보트를 밀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토굴은 괜찮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알란 파커 감독의 '안젤라스 애쉬스'(Angela's Ashes, 1999년)를 보면서 가장 먼저 그 토굴이 떠올랐다.
영화 속 끔찍했던 가난의 풍경들이 그들의 모습과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아일랜드계 미국 작가 프랭크 맥코트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1930년대 끔찍하게 가난한 삶을 살았던 아일랜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먹을 게 없어 아이들은 하나씩 굶어죽고, 땔감이 없어 벽을 뜯어 불을 땐다.
비만 오면 1층은 물바다가 되고, 여름이면 마을 공동정화조에서 끔찍한 냄새가 퍼져 나간다.
이런 곳에서 질병과 죽음은 생활의 한 부분이다.
구걸하는 엄마를 보며, 죽어가는 형제들을 보며 아이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발버둥치는 것이 곧 삶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런 곳에서 선악의 잣대는 무의미하며 오로지 생존이 곧 선이 된다.
바른 생활을 인도하는 종교나 학교, 아버지의 권위도 가난 앞에서는 그저 무력할 뿐이다.
그만큼 영화는 삶과의 처절한 투쟁을 냉철하게 보여준다.
지난하고 척박한 삶이 어찌나 그악스럽던 지 보는 내내 가슴이 아프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영화 속에서 끝없이 내리는 비 만큼이나 우울하고 축축한 영화지만, 그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찾는 아일랜드인들의 모습은 위대한 삶의 기록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아일랜드인들의 가난과 아픔과 용기의 기록이다.
이를 알란 파커 감독은 잿빛 영상으로 잘 담아 냈다.
애닮은 선율과 흥겨운 재즈가 뒤섞인 음악도 좋았다.
과연 '가난이 죄인가'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지글거림과 링잉이 나타나고 잡티도 보인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감독 음성해설, 작가 음성해설, 제작과정, 감독과 배우인터뷰 등이 수록됐으나 안타깝게도 모두 한글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비가 오면 집 앞과 1층은 물웅덩이가 되며, 사람들이 오물을 쏟아내는 공동 정화조가 바로 집 앞에 있어서 악취가 진동한다. 이 풍경만 봐도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 작품은 아일랜드계 미국 작가 프랭크 맥코트가 써서 1997년 퓰리처상을 받은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그는 아일랜드 리머릭에서 보낸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이 책에 담았다. 아이들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집 안 여기저기에 오물이 쌓인 곳에서 살아가다가 하나 둘 죽어간다. 무능한 부모를 연기한 로버트 칼라일과 에밀리 왓슨. 피어스 브로스넌과 스테픈 리아도 로버트 칼라일이 연기한 아버지역 후보였다. 원작자인 프랭크 맥코트는 뉴욕에서 30년간 교사로 일했고, 68세에 원작 소설을 써서 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2009년 뉴욕 맨하튼에서 78세 나이에 흑색종으로 타계했다. 소년의 얼굴을 표지로 한 책과 영화 포스터는 빌 카이에가 작업했다. 제임스 캐그니가 출연한 갱스터 무비가 극 중 영화관 상영작으로 나온다. 비 내리는 장면은 할리우드의 강우기를 동원해 촬영. 빌리 할리데이의 'Your Mother's Son-in-law' 등 재즈 넘버들이 흘러 나온다. 'Kaiser Bill'이란 곡은 감독이 작곡. 돈이 없다보니 크리스마스에 양머리를 사서 요리해 먹는 장면. 집단으로 자위 행위를 하는 등 그 또래들의 문화도 나온다. 알란 파커 감독도 병원에 입원한 아이를 겁주는 의사 역할로 깜짝 출연. 촬영은 '벅시 말론'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버디' '페임' 등 알란 파커 감독과 여러 작품에서 호흡을 맞춘 마이클 세레신이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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