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초 중순이면 제주는 억새가 강물처럼 바람에 일렁인다.
오름 등성과 산간 길 여기저기 군락을 이룬 억새들은 몸뚱이를 누이며 바람을 읽는다.
흔히 제주 하면 돌, 바람, 여자가 많아서 삼다도라고 부르지만 가을에는 단연 억새의 섬이다.
억새가 물결을 이루는 10월에 제주를 찾으면 새삼 봄, 여름, 겨울에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제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연 제주의 새로운 발견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때문에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탓인지 제주는 온통 여행객들로 붐볐다.
김포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렌터카를 빌리는 사람들이 셔틀을 타기 위해 정류장에 가득 모여 있었다.
그렇게 셔틀을 빌려 타고 제주 중턱의 포도호텔까지 가는 길에도 자동차들이 제법 많았다.
몇 년 전 봤던 한갓진 제주가 결코 아니었다.
해안 도로 옆으로 파란 하늘을 이고 옥빛 물결의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를 봤을 때만 해도 억새의 장관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푸른 하늘과 대구를 이루는 시원한 옥색 바다만 눈에 들어왔다.
호텔의 짐을 풀고 금오름으로 향했다.
제주 서부 중산간 금악리에 위치한 금오름은 희한하게도 오름 한가운데 백록담처럼 못이 있다.
물론 규모는 한라산의 백록담에 비할 바 못 되는 작은 못이다.
그런데도 그 모양이 특이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못 주위로는 관광객을 겨냥한 말도 있어서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금은 고어로 신이라는 뜻이어서 제주 사람들이 신성하게 여긴 오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금오름 정상에도 억새들이 등산로 양편에서 고개를 숙이며 바람에 일렁인다.
특히 낙조가 떨어지면서 억새를 금빛으로 물들이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제주에서 억새를 볼 수 있는 곳은 많지만 새별오름도 추천할 만하다.
초저녁 샛별 같다는 뜻으로 새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오름은 꼭대기에 올라가 보면 다섯 개의 크고 작은 오름들이 주변에 포진해 별 모양을 이룬다.
높이는 519미터로 그렇게 높지 않지만 오르는 길의 경사가 만만찮다.
다행히 가마니로 다진 등산로를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내려올 때 무릎에 제법 힘이 실릴 만큼 경사가 심하다.
이 곳 역시 오름에 오르는 길 양편으로 억새가 숲을 이룬다.
이 모습을 담기 위해 사람들이 숨을 몰아쉬며 오름을 오른다.
새별오름은 내려갈 때도 볼 만하다.
멀리 새빌 카페를 향해 비탈진 능선을 바라보면 온통 억새가 하얀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작은 공간에서 억새의 진면목을 느끼고 싶다면 카멜리아 힐을 추천한다.
원래는 동백 정원이었는데 관광객을 의식해서인지 영어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름 그대로 동백꽃을 모아 놓은 식물원 같은 곳이다.
온실도 있지만 꽤 커다란 정원 곳곳에 나무와 꽃을 심어 놓아서 여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성인 8,000원인데 포도호텔 숙박객에게는 제주 도민과 마찬가지로 할인해서 6,000원을 받으니 객실 키를 챙겨가면 좋다.
카멜리아 힐 한편에 가을 정원이라는 곳이 있다.
가을에 이 곳을 찾으면 무조건 가을 정원으로 직행하는 것이 좋다.
별로 넓지 않은 공간에 억새와 핑크 뮬리를 잔뜩 심어놓아서 사람들이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특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 이 곳을 찾으면 억새들이 온통 은빛으로 빛나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오후 6시까지는 개장을 하니 낙조에 물든 억새와 뮬리를 보고 싶다면 아예 5시쯤 느지막이 가는 것도 방법이다.
벤치가 놓여 있는 등 인기 있는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데 아예 늦게 가면 그나마 사진 찍을 시간이 생긴다.
지금은 코로나 19 때문에 외국 관광객이 적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코로나 19 이후 외국 관광객이 많이 찾으면 사람들로 붐빌만한 곳이다.
재미있는 것은 유독 흰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이 많다는 점이다.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 흰색이라고 해서 사진 찍으러 온 여성들은 유니폼처럼 흰 옷들을 입고 온다.
때로는 그 풍경이 웃기기도 하다.
바람에 머리와 흰 치맛단이 여기저기 날리는 모습을 보면 '전설의 고향'이 생각난다.
SNS 시대가 낳은 재미있는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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