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언힌지드(블루레이)

울프팩 2021. 4. 13. 00:36

데릭 보트 감독의 '언힌지드'(Unhinged, 2020년)는 일상 속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더 실감 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바쁜 출근길에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출발하지 않는 앞차를 향해 경적을 울렸다가 끔찍한 보복 운전을 당하는 여성 운전자 얘기다.

 

그런데 보복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그저 길을 막아서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여성 운전자의 휴대폰을 빼앗아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살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쯤 되면 사이코패스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이를 지나친 영화적 상상력이라고 흠잡기 힘든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 실생활에서 벌어지는 말도 안 되는 잔혹 보복 범죄를 심심찮게 보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만난 여성이 만나주지 않는다고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이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각종 보복 운전 영상 등을 보면 영화 못지않을 정도로 끔찍하다.

문제는 이런 보복 범죄자들을 사전에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영화 속 범죄자(러셀 크로)는 초반에 아주 점잖고 정중하다.

하지만 그런 겉모습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기 위한 포장일 뿐이다.

 

어느 순간 별 일도 아닌 일이 도화선이 돼서 분노가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인 사람이 된다.

보트 감독은 이 과정을 꽤나 집요하고 충격적으로 묘사했다.

 

언뜻 보면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돌변할 수 있나 의심할 수 있지만 워낙 분노 조절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이 예측불허여서 개연성은 충분하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러셀 크로의 연기는 참으로 위악적이며 무섭다.

 

그동안 악역을 하지 않아 몰랐는데 이 작품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아주 공포스럽다.

피해자가 여성(카렌 피스토리우스)인 것은 젠더 이슈라기보다는 어머니의 강한 모성 본능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봐야 한다.

 

주인공 여성은 이혼녀에 밥벌이마저 잃은 루저이지만 자식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저항하는 용기를 발휘한다.

다만 악당이 잔혹한 보복 범죄를 벌이는 원인을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사회 시스템에서 찾는 것은 보트 감독의 지나친 확대 해석이다.

 

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되면서 여러 가지로 행동의 제약을 받고 경제 또한 침체돼 사람들이 점점 살기 힘들어 작은 일에도 화를 잘 내는 스트레스 사회가 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화를 다스릴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와 보복 범죄를 벌이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일탈을 사회 문제로 몰아가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아울러 악당과 여주인공이 도로에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마찬가지로 보복 운전을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결투'를 떠올리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보트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며 스필버그 감독의 '결투'와 '죠스'를 참조했다고 한다.

물론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연출이나 촬영은 '결투'가 단연 뛰어나다.

 

'결투'는 차량 통행이 드문 도로 위에서 단 두 대의 차량에 집중해 긴장감과 공포를 극도로 끌어올린 반면 이 작품은 차량 통행이 많은 도심에서 벌어지는 추격이어서 긴장감의 밀도가 '결투'보다 떨어진다.

러셀 크로의 악역 변신이 훌륭했고 보복 운전의 공포를 환기시키는 구성도 좋았지만 사회적 문제로 원인을 돌리며 설득력이 떨어졌고 긴장감의 밀도도 희석돼 아쉽다.

 

1080p 풀 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도시의 청회색 빛 우울한 색조를 잘 살렸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그러나 사운드 디자인이 썩 잘 된 편은 아니다.

 

추격 장면 등에서 서라운드 효과를 더 활용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부록으로 HD 영상의 제작 과정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촬영은 뉴올리언스에서 했다. 특히 뉴올리언스 웨어하우스 지구에서 대부분 찍었다.
제작진은 여주인공의 차량을 같은 차종으로 총 5대를 준비해 다양하게 카메라를 장착한 뒤 촬영했다.
카렌 피스토리우스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 됐다. 그는 '모털 엔진'에도 출연했다.
러셀 크로는 처음에 대본을 받고 출연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악역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출연했다.
러셀 크로는 연기를 위해 체중을 불리기도 했지만 뚱뚱해 보이도록 특수 복장을 입었다.
보트 감독은 이 작품을 스필버그 감독의 '대결'과 '죠스'의 중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코로나19 때문에 미국 대부분의 극장이 문을 닫은 뒤 처음 개봉한 영화다.
보트 감독은 러셀 크로의 차량을 '죠스'처럼 회색으로 선택하고 여주인공의 차량은 '결투'를 연상케 하는 적갈색을 골랐다.
촬영은 브렌단 갤빈이 맡았다. 그는 '람보 라스트 워' '백설공주' '에너미 라인스' 등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