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렝 코르노(Alain Corneau) 감독의 '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 1991년)은 비올라 다 감바가 얼마나 매력적인 악기인지 알려준 영화다.
아울러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이라는 위대한 연주자를 재발견한 작품이기도 하다.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17세기 프랑스에서 활약한 작곡가 겸 뛰어난 비올라 다 감바 연주자였던 생트 콜롱브(Monsieur de Sainte Colombe)와 그의 제자였던 마랭 마레(Marin Marais)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7현을 활로 연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는 첼로의 원형으로 알려진 악기로 지금의 첼로보다는 크기가 약간 작다.
당시에는 꽤 인기 있던 악기였으나 이후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서 잊힌 고악기다.
알렝 코르노 감독은 애증의 관계인 두 사람을 통해 사라진 고악기를 스크린으로 다시 불러냈다.
이 작품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실제 이야기와 거리가 있다.
음악을 좋아한 코르노 감독이 음악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작가인 키냐르에게 생트 콜롱브에 대해 언급했고 이를 키냐르가 '음악수업'이라는 단편 소설을 써서 감독에게 줬다.
즉 감독의 이야기를 토대로 작가가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다시 각색해 영화로 만든 특이한 경우다.
내용은 예술의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생트 콜롱브(장 피에르 마리엘 Jean-Pierre Marielle)가 재능은 있으나 부와 명예를 좇아 세속적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제자 마랭 마레(제라르 드 빠르디유 Gerard Depardieu, 기욤 드 빠르디유 Guillaume Depardieu)와 갈등을 벌이는 이야기다.
코르노 감독은 완벽한 예술의 구현을 위해 자기만의 음악세계를 고집하는 콜롱브를 통해 음악이 무엇인지, 예술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도 그런 것이, 영화 속에서 음악에 대해 엄격한 스승이었던 콜롱보는 정작 제자를 배려하지 않았고 가족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
그 바람에 두 딸은 힘겨운 삶을 살았고 그중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지녔던 큰 딸의 인생은 참으로 비참했다.
재능이 많았던 제자 마레가 돈을 받고 연주하며 궁정에서 인정받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콜롱브는 제자를 쫓아내고 관계를 끊는다.
예술가도 돈을 벌어야 먹고살 수 있는 현실적 삶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영화 속 콜롱브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타인을 배려하지 않았다.
특히 콜롱브가 죽은 아내를 못 잊어 환영을 보며 음악에 몰두하는 설정은 지고지순한 사랑과 함께 예술가의 고집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런 삶 때문에 제자와 틀어지고 가족과 멀어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어쩌면 코르노 감독 또한 영화라는 대중예술을 하는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질문일 수도 있다.
다만 이 모든 이야기가 실화에 기반하지만 사실은 아니다.
마랭 마레가 콜롱브에게 비올라 다 감바를 배우기는 했지만 오랜 기간 제자로 있었던 것은 아니고 둘의 관계가 갈등 관계였는지도 알 수 없다.
오페라와 협주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겨 대중적으로 알려졌던 마레와 달리 콜롱브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단서들이 별로 없는 베일에 쌓인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코르노 감독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갈등 구조를 극적으로 만들어 냈다.
마치 콜롱브와 마레의 관계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를 보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콜롱브의 모습은 제자에 대해 엄격하면서 재능을 질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마레가 처음 찾아왔을 때 그의 연주를 듣고 놀라면서도 별다른 칭찬을 하지 않고 돌려보내는 콜롱브의 모습과 콜롱브가 돈을 벌어 온 마레에 대해 분노하며 비올라 다 감바를 때려 부수는 장면에서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코르노 감독은 두 사람의 관계를 극적으로 과장하기는 했지만 다면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도록 심리 묘사를 아주 잘했다.
한마디로 극적 구성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형식적으로도 초반 약 7분간 제라르 드 빠르디유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면서 늙은 마레가 스승을 회상하는 독백으로 시작해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도 '아마데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구조가 그렇다는 것이지 내용이 닮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영화가 뛰어난 것은 극적인 완성도뿐 아니라 훌륭한 영상과 음악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마치 중세시대 유화 작품을 보는 것처럼 영상이 아름답고 고풍스럽다.
완벽한 구도를 이루는 회화적인 인물 배치나 각종 소품을 잘 살려 공간을 적절하게 채운 장면들은 한 폭의 풍경화나 정물화를 보는 것 같다.
특히 코르노 감독은 이 작품에서 공간을 가득 채우지 않고 여백을 뒀다.
대신 적절한 조명으로 집중해야 할 부분을 잘 살려서 회화적인 강조 효과를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마치 특정 부분에 강조점을 둔 렘브란트의 조명처럼 어둠에 묻힌 배경과 대비되는 인물들을 통해 그림 같은 효과를 연출한 것이다.
덕분에 영상이 전체적으로 컬러풀하지는 않지만 오래된 유화처럼 기품 있고 우아하다.
여기에 뛰어난 고악기 연주자인 조르디 사발의 훌륭한 비올라 다 감바 연주가 얹히면서 영화를 보는 내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덕분에 비올라 다 감바라는 악기에 관심을 갖게 됐고 OST까지 구입했다.
한마디로 뛰어난 음악과 영상,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연출이 잘 어우러진 수작이다.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잠깐 등장하는 헤어 누드와 성기 노출 등을 다행히 훼손 없이 그대로 수록해 더 반갑다.
1.66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영상은 화질이 무난하다.
약간 바랜듯한 색감과 함께 지글거림이 두드러지고 플리커링도 간간히 나타난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부드러우면서 중후한 비올라 다 감바의 소리를 잘 살렸다.
전체적으로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소리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제작과정과 제작진 인터뷰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특히 코르노 감독의 인터뷰는 작품을 이해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배경 지식을 제공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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