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테이프가 주름잡던 1980년대는 '영웅본색'의 시대였다.
그 말은 곧 홍콩 느와르의 전성기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시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에 가면 진열대 한쪽이 제목도 비슷한 홍콩 영화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의리에 죽고 사는 젊은 갱들의 이야기로, 내용과 구성이 비슷했다.
차이는 얼마나 멋있게 싸우고 얼마나 멋있게 죽느냐였다.
그런 폼생폼사의 시대를 열어젖힌 작품이 서극이 제작하고 오우삼이 감독한 '영웅본색'(1986년)이다.
내용은 동료를 배신하고 권력을 잡은 악당 조직 두목을 세 남자가 목숨을 걸고 응징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 이전에 코미디로 일관했던 오우삼 감독은 마치 군무를 보는 듯 느리게 진행되는 슬로 모션 액션과 칼처럼 휘두르는 쌍권총 등 그만의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정립했다.
이 작품의 묘미는 극도로 허세를 부린 폭력의 과장이다.
그 중심에는 주윤발이 있다.
긴 롱코트 깃을 잔뜩 세운 채 검은 선글라스에 성냥개비를 질겅 질겅 씹는 그의 모습은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안티히어로의 전형이었다.
덕분에 그는 정작 주인공인 적룡을 제치고 국내에서 음료수 광고에 등장할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가 기관총처럼 쏴대는 권총 세례에 적들은 짚단 쓰러지듯 쓰러진다.
주인공들은 여러 발 맞아도 죽지 않지만 적들은 총알이 스치기만 해도 과도하게 피를 뿜으며 날아간다.
여기에 적룡과 주윤발 등 주인공들도 위조지폐를 찍던 범죄자라는 점은 중요치 않다.
반항끼 가득한 모습으로 아무리 적이 많아도 굴하지 않고 싸우는 저항 정신이 중요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1980년대는 지금보다 정치적으로 많이 억눌린 시대였다.
젊은이들이 연일 거리에 나와 최루탄을 맞으며 힘든 하루를 보내다 보니 안티 히어로일 망정 시원한 총질로 난관을 돌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모양이다.
그래서 더욱 홍콩 느와르의 배우들이 시대의 아픔과 함께 사랑을 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서 블루레이로 다시 만난 이 작품은 영화적 완성도나 재미를 떠나 청춘의 한때가 묻어 있는 앨범을 들치는 기분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일반적인 블루레이 타이틀을 기대하고 보면 화질이 그저 그렇다.
물론 DVD 타이틀보다는 월등 좋지만 윤곽선이 두텁고 지글거림이 보이며 원경 중경의 디테일이 많이 부족하다.
물론 화질이 좋으면 좋겠지만, 이 타이틀은 화질이 전부가 아닌만큼 옛 향수와 추억을 다시 만나는 점에 의의를 둘 만 하다.
DTS-HD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인위적인 채널 분리 때문에 서라운드 효과가 자연스럽지 않다.
부록으로 영화 속 총기에 대한 설명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영화의 상징같은 장면. 청춘의 반항과 허세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면이다. 원래 이 작품은 용강 감독의 '영웅본색'을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오우삼 감독은 '불료정'이라는 영화가 원작이라고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장국영 옆에 선글래스를 쓴 사람이 바로 영화 제작자인 서극이다. 극 중 심사위원으로 잠깐 등장.
이 작품으로 유명해 진 인물은 주윤발이다. 용강 감독의 원작보다 역할의 비중이 늘면서 그가 부각됐다.
여성들의 인기를 끈 장국영. 그가 부른 유명한 주제가 '당년정(當年情)'도 인기를 끌었다.
오우삼은 홍콩의 대표적 영화사 쇼브라더스와 골든하베스트에서 영화 경력을 쌓았다. 이후 서극이 만든 시네마시티에 합류해 홍콩 느와르를 찍으며 이름을 날렸다.
장국영의 액션은 참으로 어설프다. 총 쏘는 자세는 물론이고 주먹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마치 여자가 싸우는 것 처럼 어설프다.
무술영화에 많이 출연한 적룡은 홍콩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였다. 이 영화에는 구창모의 '희나리'를 나문이 중국어로 번안해 부른 '기허풍우'(幾許風雨)가 극 중 술집에서 흘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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