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비추천 DVD / 블루레이

올리버 스톤의 킬러 - 무삭제 감독판 (블루레이)

울프팩 2012. 1. 25. 22:02

1995년, 올리버 스톤 감독이 만든 '올리버 스톤의 킬러'(Natural Born Killers, 1994년)가 국내 개봉할 때 말이 많았다.
94년 미국 개봉 때도 영화협회 심의에서 여러 장면이 잘려나갈 만큼 폭력성이 지나쳤기 때문이다.

워너는 95년 초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에 이 영화의 수입 심의를 신청했으나 잔인하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그러자 3월에 제목을 '내추럴 본 킬러스'에서 '올리버 스톤의 킬러'로 바꿔 재심의를 신청해 통과했다.

이를 두고 우리 영화계가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우리 영화계는 "공윤이 폭력 심의를 강화한다며 우리 영화 '해적'은 무참히 가위질해놓고 이보다 훨씬 폭력적인 외국 영화 수입을 허용했다"며 공윤을 비난했다.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토록 말이 많았을까.
뭉텅 잘라내고 개봉한 극장판을 보면 총질을 많이 하는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무삭제 감독판으로 나온 블루레이를 보면 아주 잔혹하다.

미국 심의에서 잘려나간 장면까지 감독이 되살려 놓았으니 끔찍할 정도로 폭력적이다.
경찰을 포함해 죄 없는 사람들을 처참하게 마구 죽이는 장면을 보면 제 정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광기, 한마디로 올리버 스톤의 광기가 빚은 피의 향연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 이토록 잔인한 영상을 빚었을까.

이에 대해 올리버 스톤 감독은 "조금이라도 괜찮은 영화라면 체제를 전복시켜야 한다. 극한까지 밀어 붙여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진동하는 피비린내 속에서 세상에 대한 회의보다 감독에 대한 회의가 더 많이 든다.

충격이 변화를 가져오는 건 사실이지만, 이 작품이 주는 충격 속에선 변화를 위한 메시지를 찾기가 힘들다.
보는 사람들이 메시지를 읽기 힘들다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원동력이 되겠는가.

그런 점에서 파졸리니 감독의 '살로'와는 크게 대비된다.
두 작품 모두 기분 나쁜 영화로 꼽히지만, '살로'는 정치적 메시지가 확연해 체제 전복적인 힘을 갖는다.

이 영화는 난해하고 잔혹한 영상을 뿌려 놓아 그냥 기분만 나쁠 뿐이다.
오죽하면 악마의 작품이라는 비난을 들었겠는가.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35미리 필름촬영 분 외에 의도적으로 조악한 비디오테이프처럼 보이도록 촬영한 16미리와 슈퍼8미리 영상이 섞여 있어 화질이 고르지 않다.
전체적으로 좀 뿌연 편이다.

돌비트루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레오나드 코헨의 삽입곡이 부드럽게 재생된다.
부록으로 감독 음성해설과 삭제장면, 감독 인터뷰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미치광이 살인마 콤비인 믹키와 맬로리를 연기한 우디 해럴슨과 줄리엣 루이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처럼 커플 악당이지만 그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치광이들이다.
왠만한 남자 못지 않게 주먹을 휘두르는 맬로리. 이를 위해 줄리엣은 권투를 배웠다. 영화는 삐딱하게 기운 사선 앵글이 많다. 잘못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다.
스톤 감독은 잔혹한 장면이나 회상 등은 16미리 또는 슈퍼8미리로 촬영하거나 흑백 및 컬러를 교차하는 수법으로 강조했다. 특히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폭력이 문제가 된 맬로리의 가정은 일부러 우스꽝스럽게 16미리로 촬영. 스톤 감독은 이를 통해 폭력성이 유전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단다.
잔혹한 악당을 진압하는 경찰이라고 다를 게 없다. 경찰이 약국앞에서 주인공들을 체포하는 장면은 일부러 흑인 구타로 사회 문제가 된 로드니 킹 사건을 희화화했으나 경찰을 공격하는 일부 장면이 삭제됐다.
스톤 감독은 "악마가 이 영화의 모티브"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그는 "영화를 조잡하고 단순하게 만들면 재미있고 박수를 받는다"며 일부러 홈비디오처럼 배우들에게 과장되거나 우스꽝스런 연기들을 요구했다.
전반부와 후반부 등 두어 장면에 등장하는 코카콜라 광고. 스톤 감독은 광고의 힘과 사람들이 TV를 통해 위로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카콜라 광고를 집어넣었으나, 콜라측에서 화를 냈다.
흑백으로 근접 촬영한 토네이도 영상은 분사기로 모래를 쏘아 날리며 촬영.
주인공들이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다리 장면은 뉴멕시코주 타오스 북부 다리에서 촬영.
실내가 녹색인 약국은 1,000개의 녹색전구를 사용.
주인공들이 수감된 교도소 장면은 실제 시카고 외곽 스테이트빌에 위치한 감옥에서 촬영. 실제 수감 죄수들이 나오기도 했다.
원래 이 영화의 대본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가벼운 코미디풍으로 썼다. 그러나 이를 스톤 감독이 무거운 이야기로 대폭 뜯어 고쳤다.
수감된 여주인공을 희롱하려고 찾아간 형사가 목을 포크로 찔린 뒤 처참하게 죽어가는 장면은 미국 개봉시 통째로 삭제됐다.
스톤 감독은 교도소 폭동 장면을 자신이 만든 '플래툰'의 마지막 전투 장면보다 훨씬 더한 광기로 나타내고 싶어 과장되게 묘사했다.
목 없는 시체는 편집자가 연기. 나중에 목 윗부분을 지웠다.
이 영화에도 역시 악당들의 교과서가 된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스카페이스'가 등장한다.
스톤 감독이 이 영화에서 진정으로 공격하고 싶은 상대는 바로 미디어다. 주인공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끝까지 쫓아오는 미디어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탈옥을 도운 기자(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살해한다. 감독은 이를 통해 선정적인 볼거리에 집착하는 언론을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