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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스트로우 독스 : 어둠의 표적 2011 (블루레이)

울프팩 2012. 3. 4. 00:10
샘 페킨파 감독의 '어둠의 표적'(Straw Dogs, 1971년)은 숨겨진 걸작이다.
약자의 분노를 통해 표출되는 인간 내면의 숨겨진 폭력성을 긴장감있게 묘사했다.

그만큼 이를 리메이크한 로드 루리 감독의 '스트로우 독스 : 어둠의 표적 2011'(Straw Dogs, 2011년)도 어느 정도 기대했다.
워낙 원작이 훌륭한 만큼 반 정도만 따라가도 괜찮은 작품이 될 것 같았기 때문.

그런데, 기대에 부응은 커녕 너무 실망스럽다.
그저 배경과 시대, 배우만 바뀌었을 뿐 원작 흉내내기에 급급한 졸작이 돼버렸다.

여기에 원작의 긴장감과 공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원작은 마을 청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학자가 그만의 방식으로 분노를 표출하면서 보는 이의 공감대를 끌어내며 같이 분노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리메이크작은 주인공의 분노가 전혀 전이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연출력의 차이다.
샘 페킨파의 원작은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점층되는 분노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반면, 리메이크작은 이야기가 지리하게 늘어지며 오히려 김을 빼놓았다.

캐스팅도 원작에 미치지 못했다.
원작에서 주인공 부부를 연기한 더스틴 호프만과 수잔 조지에 비해 리메이크작의 제임스 마스던과 케이트 보스워스는 동정받을 만한 약자의 이미지가 부족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워낙 잘 만든 원작과 차별화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중압감이 컸던게 아닌가 싶다.

1080p 풀HD의 2.40 대 1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날카로운 샤프니스 덕에 영상이 또렷하며 황갈색 분위기의 색감도 좋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저음이 박력있다.
프론트에서 리어로 잔향을 끌며 넘어가는 총소리를 들어보면 소리의 이동성이 확실하다.

부록으로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등이 들어 있으나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의 모태가 된 원작 소설은 고든 윌리엄스가 쓴 '트렌치 농장의 포위'다. 이를 샘 페킨파 감독이 영화로 만들었으며, 이 작품은 그의 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주인공인 시나리오작가를 연기한 제임스 마스던은 '엑스맨2'에서 사이크롭스를 연기했다. 마을 청년들의 폭력에는 애국심이 됐든 뭐가 됐든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성과 질투가 내재돼 있다.
문제의 장소로 나온 집은 남북전쟁 당시 요새로 쓰였던 곳이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케이트 보스워스. 복잡다단한 여주인공 심리 묘사는 원작의 수잔 조지가 더 나았다.
남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가 어려서 알았던 청년들에게 윤간을 당하면서 분노가 발화된다.
제임스 우즈가 폭력의 광기에 사로잡힌 미식축구 코치를 연기. 샘 페킨파 감독의 영화가 영국을 무대로 하고 있다면 이 작품은 원작의 설정을 미국적인 요소로 바꿨다.
주인공은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포위됐다가 이겨낸 스탈린그라드를 소재로 한 대본을 쓴다. 스탈린그라드는 포위전의 상징같은 곳. 즉, 마을 청년들에게 포위된 주인공의 처지를 암시하고 있다.
주인공의 대응 방법이 현대적으로 바뀐 부분도 있다. 네일건으로 창을 넘어 들어오는 침입자의 손을 벽에 밖아 버린다.
마을 청년들이 트럭으로 벽을 받아서 부숴버리고 침입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여러 개의 벽을 만들어 놓고 바꿔가며 촬영.
영화는 비폭력적 인물이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원작에서 끓는 기름을 얼굴에 끼얹는 장면과 더불어 충격적이었던 거대한 덫에 머리가 치어 죽는 장면도 그대로 흉내냈다.
폭력의 끝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승리와 비극이 함께 하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