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메시지까지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사이먼 커티스 감독의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 2015년)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해 낸 영화다.
무엇보다 영화는 실화만이 갖고 있는 진실의 울림이 크다.
영화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을 둘러싼 이야기를 추리소설처럼 따라갔다.
제 2 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나치는 유대인 가문이 소유했던 이 그림을 강제로 빼앗았다.
종전 후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그림을 돌려받아 벨베데레 박물관에 전시해 국보처럼 관리한다.
이후 전시재산 환수법이 통과되면서 옛 주인을 찾아주는 작업을 펼치는데, 이를 알게 된 원주인인 유대 가문의 노부인이 그림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하지만 정부가 호락호락 내줄리는 만무하고, 결국 노부인은 변호사로 일하는 쇤베르그 작곡가의 후손과 함께 한 개인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인다.
사이먼 커티스 감독은 이 과정을 아주 깔끔하게 담아 냈다.
유대인이 박해받는 과정과 이로 인한 아픔 등을 억지로 눈물을 쥐어짜내는 신파조를 싹 걷어내고 군더더기 없이 묘사했다.
오히려 담담하며 속도감 있는 전개가 더 힘있게 다가오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
아울러 영상도 훌륭하다.
와이드 스크린의 넓은 화면을 충분히 살려서 넓게 펼쳐 잡은 비엔나 풍경은 장면 장면이 그림 엽서 같다.
인물들의 클로즈업도 램브란트 조명을 잘 살려 얼굴의 굴곡을 두드러지게 묘사하면서 부드러운 가운데 강렬한 느낌을 준다.
영화를 보다 보면 국가를 상대로 돌팔매를 던진 개인도 대단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도 그 못지 않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보로 취급하는 그림을 다른 나라 사람에게 돌려줄 생각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요즘 일본의 태도와 많이 비교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약탈해 간 문화재를 돌려주기는 커녕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고, 강제 징용이나 위안부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니, 오스트리아 정부의 행보와 비교하면 한숨이 아니 나올 수가 없다.
미국 정부의 결정은 그들답다.
어차피 개인의 손을 들어줘도 전쟁을 일으키거나 군대를 보내 강제로 빼앗아 오는게 아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손해 날 게 없기 때문이다.
결정 뒤 행보는 개인이 알아서 하게 맡기는 것이니, 미국다운 깍쟁이 같은 결정이다.
아무튼 영화는 이런 과정과 각국의 태도, 개인의 용기있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훈까지 함께 준다.
한마디로 훌륭한 작품이다.
나중에 블루레이 타이틀이 나오면 다시 사고 싶다.
이런 영화가 좀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참고로, 제목인 '우먼 인 골드'는 그림에 붙은 유대인 이름을 감추기 위해 나치가 빼앗은 원 제목 대신 붙인 가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