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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제트(Z)

울프팩 2012. 11. 21. 21:23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1980년대 후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제트'(Z, 1969년)가 제작된 지 20년 만에 국내에 들어 왔다.
그리스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야당 정치인의 암살을 다룬 내용은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과 상황이 흡사해 국내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만큼 '제트'의 국내 개봉은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갈망 만큼이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영화는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 처럼 흥미진진하다.

정의로운 검사가 경찰 고위 관계자들의 조직적 은폐와 사건 왜곡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아주 긴장감 넘친다.
특히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이를 다큐멘터리나 뉴스 보도처럼 들고찍기와 롱 샷, 클로즈업을 병행하며 현장감있는 영상으로 실감나게 재현했다.

단순 흥미를 떠나 당시 사회 현실에 비추어 영화가 큰 울림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실화이기 때문.
알제리와 프랑스 합작으로 가브라스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바실리스 바실리코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은 1963년 5월 나토의 미군 미사일 기지 설치에 반대하던 그리스의 좌파 교수이자 야당 국회의원이던 그레고리오 람브라스키가 거리에서 습격을 받고 중태에 빠졌다가 사망한 실화를 다뤘다.
당시 그리스 정부는 영화처럼 조직적으로 은폐에 나섰으나 결국 사건 전모가 드러난다.

이듬해인 1964년 그리스는 야당이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람브라스키 암살에 가담했던 정부 고위 관료들에 대한 재판을 벌인다.
결국 암살에 가담한 관료들은 1966년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1967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그들은 모두 복귀했다.

그로부터 7년 동안 그리스의 군사독재정권이 이어졌고, 오히려 진실을 파헤쳤던 사람들이 독재정권에 내몰려 추방당하거나 감옥에 갇혔다.
가브라스 감독은 고국의 암울하고 답답한 현실을 날카로운 영상으로 알기 쉽게 스크린에 담았고,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하며 196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1970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전미영화비평가협회 작품상 등을 휩쓸었다.

영화를 보면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길게 이어지는 우리네 암울했던 독재정권 시절과 흡사한 풍경이 대거 등장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 정부의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사회주의 계열서적 판매금지 및 정부 비판 노래 불가 등 영화 음악 출판에 대한 검열 등은 놀랄 정도로 우리네 모습과 닮았다.

그러니 1989년 국내 개봉 당시 한창 혈기왕성한 대학생이었던 만큼 영화를 보고 나서 피가 끓어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보면 이 작품은 당시 거리에서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청춘을 보내던 젊은이들에게 민주화에 대한 갈망과 의지를 북돋워 준 작품이요, 흰머리가 늘어난 요즘 청춘의 한때를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마침 이 작품을 집어들고 보니 공교롭게 대선 정국이다.

1.66 대 1 레터박스 포맷의 DVD 타이틀은 화질이 떨어진다.
제작 연도를 감안하면 미흡한 화질은 이해가 가지만 말도 안되는 오탈자는 문제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이런 작품이 블루레이로 국내에 나왔으면 좋겠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영화를 보면 그리스도 막나간 국가라는 생각이 든다. 경찰들이 눈 앞에서 야당 국회의원이 테러를 당해 죽어가는데도 버젓이 보고만 있다.
정부 치안관계자들은 민주화 운동을 나무를 좀 먹는 흰가루병에 비유하며 "이데올로기는 병균"이라고 단정짓는다. 이 대목은 마치 1970, 80년대 우리네 공안당국회의를 연상케 한다.
정부는 부랑자들을 시켜 야당 집회를 습격하게 한다. 우리도 드라마 '모래시계'에 나온 1970년대 신민당사 습격처럼 유사한 사례가 많다.
반미 시위를 주도하는 대통령 후보이자 야당 국회의원인 주인공을 연기한 이브 몽탕. 프랑스의 대스타인 그는 1991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공교롭게 유작인 'IP5'에서 그는 심장마비로 죽는 연기를 촬영하고 나서 실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영화를 보면 반가운 자동차가 나온다. 바로 삼륜차다. 19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동네를 누비던 삼륜차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그리스도 일본서 삼륜차를 수입해 1960,70년대 소형화물차로 활용했다.
가브라스 감독은 몽타주 기법과 클로즈업을 적극 활용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암살로 남편을 잃는 부인 역은 '그리스인 조르바' '나바론 요새' 등에 나온 그리스의 대배우 이렌느 파파스가 연기.
이 영화는 구슬픈 선율의 음악도 참 좋았다. 음악은 바로 그리스의 유명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맡았다.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음악은 좌파 작곡가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1970, 80년대 국내에서 금지곡이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그의 노래를 처음 접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죽어간 정치인을 기리며 길 위에 흰 페인트로 쓰는 커다란 'Z'는 그리스어로 "그는 살아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1967년 쿠데타로 집권한 그리스의 군사독재정권은 'Z'자의 사용을 금지했다.
영화에서 정치권의 음모를 파헤치는 용기있고 소신있는 검사를 연기한 장 루이 트랜티냥은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는 클로드 를르슈 감독의 '남과여'에서 남자 주인공을 연기했다. 그는 배우였던 딸 마리가 1999년 사위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반전은 막바지에 일어난다. 그 고생을 해서 음모를 파헤치고 공모자들을 법정에 세우지만,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오히려 정의로운 사람들을 내몰린다. 당시 이를 지켜보면서 분노와 함께 절대 저런 일이 되풀이되게 놓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결의를 다진 기억이 난다.
Mikis Theodorakis - The Best Of Mikis Theodorakis
Mikis Theodorakis 노래
제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이브 몽땅 출연; 이렌느 파파스 출연; 장-루이 트랭티낭 출연; 찰스 테너 출연;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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