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령 기아나.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곳이지만 IT 분야를 담당하는 일부 기자들 사이에선 익숙한 곳이다.
남미의 오지인 이곳에서 KT가 무궁화 위성을 몇 차례 쏘아올렸기 때문이다.
적도선상에 위치한 이 곳이 정지궤도에 가장 근접해 위성을 쏠 수 있는 곳으로 꼽힌다.
지금도 프랑스가 식민지로 관리하는 이 곳에 1850~1950년대까지 끔찍한 감옥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중죄를 저지른 죄수들을 이 곳으로 유배보내 중노동을 시켰고, 많은 사람들이 혹독한 노동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죽어갔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두 사람이 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드레퓌스 사건의 주인공인 드레퓌스와 '빠삐용'으로 알려진 앙리 샤리에르다.
프랑스 포병대위였던 드레퓌스는 독일에 정보를 팔아넘겼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뒤,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마의 섬에서 1895년부터 1899년까지 수형 생활을 했다.
마찬가지로 살인 누명을 쓴 앙리 샤리에르도 종신형을 선고받고 스물 다섯 젊은 나이에 프랑스령 기아나로 유배됐다.
프랭클린 샤프너 감독의 영화 '빠삐용'(Papillon, 1973년)은 바로 앙리 샤리에르의 자전 소설을 토대로 만든 실화다.
가슴에 나비 문신을 새겨 빠삐용으로 불리던 앙리는 지옥의 감옥에 수감된 뒤에도 누명을 벗기 위해 수 차례 탈옥시도를 한 끝에 이 곳을 벗어난다.
샤프너 감독은 한 순간도 희망을 놓지 않고 억압적 제도와 싸우며 자유를 향한 의지를 불태운 한 인간의 처절한 싸움을 긴장감있는 연출로 담아냈다.
빛과 어둠을 적절히 대조해 절대 고독을 표현한 독방 수감 장면, 현지 촬영을 통해 수려한 자연과 대조적으로 수인들의 암울한 처지를 표현한 영상 등은 간접적으로나마 수형 생활의 고통을 전달한다.
더불어 이 작품을 빛낸 스타는 단연 빠삐용을 연기한 스티브 맥퀸이다.
그는 힘든 수형 생활로 피폐해져가는 빠삐용의 모습을 온 몸으로 절절하게 표현했다.
아울러 제리 골드스미스의 유명한 애달픈 주제곡 'Free As The Wind'도 빼놓을 수 없다.
나중에 여기 가사를 붙여 앤디 윌리암스가 부른 노래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1080p 풀HD의 2.40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초반 화질은 입자가 거칠고 샤프니스도 떨어지며 매우 좋지 않지만 뒤로 갈수록 안정된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전방에 사운드가 집중된 편.
부록으로 실제 앙리 샤리에르가 촬영현장에 나타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제작과정이 포함돼 있다.
안타까운 것은 DVD 타이틀에 실린 같은 부록에 수록된 한글 자막이 블루레이에선 누락된 점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
할리우드 스타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고(故) 스티브 맥퀸. 그는 이 작품에서 최고의 명연을 선보였다. 불어로 나비라는 뜻의 빠삐용은 원작자인 앙리 샤리에르의 가슴에 있던 나비 문신을 뜻한다.
이 작품을 만든 프랭클린 샤프너 감독은 '패튼대전차군단' '혹성탈출' 등 영화사에 길이 남는 대작을 만들었다. 선교사였던 부모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난 그는 5세때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TV 연출가로 활동하다가 영화감독이 됐다. 1989년 사망.
빠삐용을 돕는 돈 많은 죄수 친구로 나온 더스틴 호프만. 스티브 맥퀸에 가려졌지만 그도 눈이 나쁜 배역을 위해 돗수높은 안경을 쓰고 열연했다.
원작자인 앙리 샤리에르는 1931년 25세 나이에 포주를 죽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1944년 탈옥할 때까지 14년간 프랑스령 기아나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앙리 샤리에르는 악마의 섬(디아블)이 있던 살뤼 제도에서 탈출에 성공해 영국령 조지타운을 거쳐 베네수엘라로 들어가 정착했다.
앙리 샤리에르는 영화처럼 감옥에 갇힌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단두대로 죄수를 처형하는 것을 목격했다. 당시 교도 당국은 죄수들을 겁주기 위해 실제로 공개처형했다.
1906년생인 앙리 샤리에르는 1934년 프랑스령 기아니의 생로랑 뒤 마로니 감옥에 수감된 뒤 8차례나 탈출을 시도했다. 그가 이 경험을 1968년 소설로 쓴 <빠삐용>은 전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다.
"인생을 낭비한 죄로 너를 기소한다"는 재판장의 준엄한 일갈에 유죄를 인정하며 빠삐용이 쓸쓸히 돌아서는 환상 장면은 이 영화의 명장면이다.
'빠삐용'을 유명하게 만든 장면. 빛 조차 통제하는 생 조제프 감옥 독방에 갇힌 빠삐용은 먹을 게 턱없이 부족해 온갖 벌레를 잡아먹으며 연명한다. 생 조제프 감옥에는 150개의 독방이 붙어 있었다.
카메라를 한 바퀴 회전시키며 찍는 등 영상도 독특하다. 촬영은 프레드 코엔캠프가 담당. 각색은 매카시즘 열풍 때 공산주의자로 몰려 고초를 겪었던 유명 작가 달톤 트럼보가 맡았다.
폐쇄 집단에서 흔히 일어나기 마련인 동성간의 성추행도 등장.
1930~40년대 엑스선 촬영 모습.
1933년 처음 탈출을 시도한 앙리 샤리에르는 두 명의 죄수들과 함께 담을 넘어 나병인들의 섬인 피죵 섬으로 달아났다.
피죵 섬에서 나병인들의 도움을 받은 앙리 샤리에르는 트리니다드 섬과 쿠라사우, 리오 아샤를 거쳐 인디오 부족의 마을인 과지라로 도피했다.
앙리 샤리에르는 인간 사냥꾼의 추적을 받기도 했지만 인디오인 과지라 부족의 도움으로 7개월간 꿈 같은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는 과지라를 떠났다.
과지라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앙리 샤리에르는 잠시 피신한 수녀원에서 원장의 밀고로 다시 체포돼 산타 마르타 감옥에 수감된다. 그곳에서 앙리는 4차례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매번 실패해, 결국 생 조제프 감옥 독방에서 2년간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는다.
제작진이 다시 찾은 프랑스령 기아나에는 앙리 샤리에르가 갇혔던 폐쇄된 감옥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제작진은 이 곳에 앙리를 초청해 수용소 세트를 지어 고증을 받은 뒤 촬영했다.
앙리 샤리에르는 수 차례 탈옥 시도로 세 번이나 생 조제프 감옥 독방에 갇히는 고초를 겪은 뒤 마지막으로 죄수들의 무덤으로 통하던 디아블(악마의 섬)에 유폐됐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절해고도의 이 섬은 높은 파도와 우글거리는 상어떼 때문에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곳이다. 이 곳은 1952년 폐쇄됐다.
야자수와 바위투성이 섬인 디아블은 기아나에서 13km 정도 떨어져 있다. 앙리는 이 곳에 유폐된 드레퓌스가 생각에 잠겼던 '드레퓌스의 벤치'에 앉아서 탈출의 힌트를 얻는다. 소심했던 드가(더스틴 호프만)는 결국 막판 탈출을 포기하고, 홀로 떠나는 빠삐용을 끌어 안는다. 참으로 가슴 뭉클한 장면이다.
앙리는 코코넛 자루 두 개를 연결해 바다에 던진 뒤 뛰어내려 악마의 섬 디아블에서 탈출한다. 그렇게 탈출에 성공한 앙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노트 13권에 담아 1968년 자전 소설 <빠삐용>을 펴냈다.
탈출 후 남은 생의 대부분을 베네수엘라에서 지낸 앙리 샤리에르는 '빠삐용'이 개봉한 해 인 1973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병원에서 후두암으로 죽었다. 향년 67세. 그는 1967년 61세때 노인이 돼서 파리를 잠시 찾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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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 1,2권 세트
문신원 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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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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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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