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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주정뱅이 천사

울프팩 2013. 2. 19. 09:37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주정뱅이 천사'(1948년)는 일본식 네오리얼리즘 영화다.
제 2 차 세계대전 후 이탈리아에서 일었던 네오 리얼리즘 영화는 '자전거도둑'처럼 전후 이탈리아 사회가 처한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영화였다.

그런 점에서 프로파간다는 아니지만 간접적으로 사람들과 사회의 변화를 촉구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선동적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태평양전쟁 후 패전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이던 일본 사회가 처한 극도의 혼란을 두 사내를 중심으로 풀어 낸다.
누가 됐든 아픈 사람들을 고쳐야겠다는 알코올 중독자 의사와 암흑세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야쿠자의 애증을 통해 당시 일본 사회가 안고 있던 불안과 혼란을 보여준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어찌보면 일본 사회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낸 이 작품을 "나의 첫 번째 영화"라고 표현했다.
이 작품 이전에도 '스가타 산시로' '멋진 일요일' 등 여러 작품을 만들었지만 진정 자신이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찍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개성강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음악을 이용해 챕터 전환의 효과를 가져오고, 몽타주 기법을 이용한 암시와 표현주의 기법의 그로테스크한 영상을 통해 강렬한 느낌을 전달한다.

더불어 이 작품에서 또다른 발견은 바로 미후네 토시로이다.
이 작품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그는 유명세를 얻으며 이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와 미후네 토시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영화다.

4 대 3 풀스크린의 DVD 타이틀은 65년전 작품이라 그런지 화질이 열악하다.
세로줄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밝기도 일정하지 않으며 화소가 뭉개지기 일수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을 지원하며 부록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결핵에 걸린 야쿠자로 등장한 미후네 토시로.
영화 속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처연한 기타 연주는 챕터 전환 역할을 한다. 음악은 하야사카 후미오가 담당.
온갖 악취를 내뿜으며 고여서 썩어가는 물웅덩이는 전후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병폐를 상징한다.
겉으론 무뚝뚝하지만 심성은 착한 알코올 중독 의사를 연기한 시무라 타케시. 그는 '7인의 사무라이' '붉은 수염' 같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를 비롯해 '고질라' 같은 특촬물에도 출연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지만 1940년대, 폐병으로 일컬었던 결핵은 말그대로 못먹어서 생긴 가난병이었다.
'어느 멋진 일요일'에 출연했던 나카키타 치에코도 등장.
영화 속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가사를 여가수가 부르는 재미있는 영상. 좀 기괴해 보인다.
야쿠자 내부의 보이지 않는 권력 싸움을 그림자 놀이로 묘사하고, 자신의 죽음을 꿈으로 표현하는 등 표현주의 기법의 영상들이 등장.
야쿠자 내부의 주도 세력이 바뀐 것을 음악으로 상징하듯, 영화에 꾸준히 흘러 나오던 기타 연주곡이 어느 순간 바뀐다. 그만큼 이 작품에선 음악이 차지하는 역할이 크다.
긴박한 결투의 순간을 마치 분절화면처럼 거울을 이용해 독특하게 표현. 촬영은 이토 타케오가 맡았다.
"네 폐는 이 웅덩이 같은 거야"라는 의사의 대사처럼 웅덩이, 결핵, 야쿠자의 싸움은 고스란히 전후 일본 사회가 넘어야 할 과제를 상징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언제나 갈등과 대립구조 속에서 거의 종교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 구원에 집착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흰 페인트를 뒤집어 쓴 채 죽어가는 야쿠자의 비참한 최후를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구로자와 아키라 컬렉션 3DVD (라쇼몽 주정뱅이 천사 이키루)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 컬렉션 - 주정뱅이 천사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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