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없던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잘만 킹 감독의 작품들은 금기시된 것들을 알려주는 교과서였다.
당시 비디오대여점에 꽂힌 '레드슈 다이어리' '투 문 정션' '와일드 오키드' 같은 그의 작품들은 피 끓는 청춘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였다.
그만큼 1980, 90년대 청춘들에게 잘만 킹은 음지의 스승인 셈이다.
원래 잘만 킹은 배우였다.
그러나 배우로서 별반 재미를 보지 못하자 잘만 킹은 소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제작 쪽으로 돌아섰다.
그 첫 작품이 그가 제작한 애드리안 라인 감독의 '나인 하프 위크'(9 1/2 Weeks, 1986년)다.
원래 잘만 킹이 감독하려 했으나 초보인 그에게 작품을 선뜻 맡기는 사람이 없어, 당시 '플래시댄스'로 주가를 올린 애드리안 라인을 감독으로 끌어 들였다.
킴 베신저와 미키 루크가 주연한 이 작품은 워낙 강도높은 영상들을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싱겁다.
하지만 인터넷이 없던 1980년대에 이 작품은 별반 노출이 없는데도 대단한 화제였다.
영상도 영상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파격적이기 때문.
커리어우먼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뉴요커 여성이 남자를 만나 이색적인 성에 눈을 뜨는 내용이다.
이색적인 성이란 흔히 말하는 변태, 즉 새디즘과 마조히즘을 다룬 SM의 세계다.
그렇다고 밧줄로 묶고 때리거나 괴롭히는 등 이상한 짓을 하는게 아니라, 눈을 가리거나 음식을 이용하고 바닥을 기도록 시키는 정도다.
그런데 그 과정을 애드리안 라인 감독은 특유의 감각적 영상으로 아주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했다.
갖가지 음식이 뿜어내는 영롱한 색감과 역광을 이용한 실루엣의 활용 등은 노출이 없어도 충분히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마디로 세련된 에로티시즘 영화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여기에 음악에 강한 애드리안 라인 감독답게 영상과 어울리는 유리스믹스, 브라이언 페리, 조 카커, 빌리 할리데이, 장 미셀 자르의 음악과 노래 등을 적절히 섞어 청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만큼 이 작품이 블루레이로 나온다길래 내심 기대가 컸다.
하지만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의 화질은 실망스럽다.
지글거리는 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샤프니스도 떨어진다.
그래도 DVD보다 낫다는 점에 위안을 삼아야 할 듯.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간헐적인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주며, 부록은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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