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가신 감독의 '첨밀밀'(甛蜜蜜, 1996년)은 홍콩 영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은 영화다.
이전까지 홍콩영화라면 '영웅본색' 같은 홍콩느와르나 '취권' '외팔이' 시리즈 같은 무협물을 우선 떠올렸다.
그러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홍콩영화도 잘 만든 드라마로 승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10년 동안 홍콩과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이 작품은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다뤘다.
개방화 물결이 밀려든 중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건너간 남자가 우연히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남자에게는 중국 본토에 결혼을 약속한 여인이 있고, 홍콩서 만난 또다른 여인은 어떻게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결코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둘의 사랑은 화선지에 스며든 물처럼 조용이 번져간다.
진가신 감독은 이 과정을 과장이나 격정적으로 그리지 않고 잔잔하며 차분한 영상으로 담아 냈다.
여기에 한 몫하는 것은 제목이 말해주듯 등려군의 노래다.
시작과 끝을 비롯해 주요한 분기점마다 등려군의 노래가 마치 내레이션처럼 흐른다.
등려군 또한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중국 사람들에게는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세상이요, 자본주의의 상징이다.
1980년대 중국 정부는 대만가수인 등려군의 노래를 금지했지만 중국 사람들은 불법복제 테이프를 통해 꿀처럼 달콤한 그의 목소리에 취했다.
영화 속에서 등려군이 부른 '꿀처럼 달콤하다'는 뜻의 노래 '첨밀밀'은 주인공(여명)이 취했던 자본주의의 맛이면서 홍콩서 만난 여인(장만옥)과 나눈 사랑의 밀어이기도 하다.
꿈처럼 흐르는 그의 노래가 때로는 달콤하게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슴아프게 들리기도 하는 것은 영상과 기가 막히게 연결한 진가신 감독의 연출 솜씨 덕분이다.
힘을 뺀 감독의 연출만큼이나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도 좋았다.
더불어 연가(戀歌) 사이로 개방화의 물결에 부평초처럼 휩쓸린 1980년대 중국 사람들의 불안한 정서를 잘 녹여낸 진 감독의 연출과 구성력은 다시 한 번 칭찬할 만 하다.
1080p 풀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괜찮은 화질이다.
윤곽선이 예리하거나 디테일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입자감이 느껴지는 영상이 오히려 영화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져 1990년대 필름 영화를 보는 흥취를 자아낸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배경음악이 리어에서 흘러 나오는 등 각 채널을 잘 활용해 적절한 서라운드 사운드를 들려준다.
부록이 전혀 없는 점이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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