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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킹덤 오브 헤븐(블루레이)

울프팩 2014. 3. 8. 18:48

서사적이고 규모가 큰 작품을 좋아하는 리들리 스코트(Ridley Scott) 감독의 '킹덤 오브 헤븐'(Kingdom Of Heaven, 2005년)은 그의 남성적인 연출 스타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작이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기사들의 십자군 원정을 다룬 이 작품은 칼과 창이 번뜩이며 피가 튀고 비명이 울리는 중세시대의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을 개각도 촬영과 슬로 모션을 적절히 섞어서 핏방울과 흙먼지까지 보일 만큼 세세하게 묘사했다.

덕분에 '글래디에이터' 못지않게 실감 나고 박력이 넘친다.
2003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스코트 감독은 같은 칭호를 받은 기사로서 과거의 기사 이야기를 역사에 충실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실존 인물과 각종 소품을 시대의 고증에 맞게 재현했으나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지극히 서구 편향적이다.
겉보기에는 십자군과 이슬람군 모두 내부에 선과 악이 공존하는 모습을 그려 공평하게 다룬 것 같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는 결코 두 개의 선이 충돌할 수 없는 법, 어느 한쪽은 악역을 맡을 수밖에 없다.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고 십자군의 목을 잘라 쌓아 놓은 참혹한 장면은 이슬람군을 악귀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슬람 사원도 예수의 무덤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모두 소중하다"는 주인공 발리안(올랜도 블룸 Orlando Bloom)의 대사도 가식적으로 들린다.

이라크 전쟁 이후 911 테러 등으로 서구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슬람 세계를 다독이려는 다분히 정치적인 메시지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는 끝까지 지켜보게 만들 만큼 재미있다.

중반까지 약간 늘어지는 게 흠이지만 중반 이후 이슬람군과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블록버스터의 위력이 제대로 발휘된다.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의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서 이야기의 흡입력을 끌어올린 스코트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영상은 화질이 훌륭하다.
DVD 타이틀은 원경과 중경의 샤프니스가 떨어져 윤곽선이 예리하지 못했는데 블루레이는 이를 잘 보강했고, 햇빛에 반사되는 금속 질감 등 색감도 잘 살렸다. 

DTS 음향은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제대로 발휘한다.
저음이 부드럽고 둔중하며 채널별 분리도가 좋아 서라운드 효과가 뛰어나다.

영화 본편을 수록한 블루레이와 별도로 DVD 디스크에 부록을 따로 담았다.
제작과정, 역사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자막과 함께 수록됐는데 ‘역사 VS 할리우드’와 ‘AE무비리얼’ 등 각각 40여분 분량의 다큐멘터리 2편이 역사와 영화를 비교해 놓아 볼 만하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반지의 제왕'의 꽃미남 요정이었던 올랜도 블룸이 주인공 발리안을 연기. 발리안은 실존 인물로 영주였다. 블룸은 이 영화를 위해 9kg의 체중을 늘렸다. 영화의 배경이 된 1184년에는 온몸을 감싸는 무쇠 갑옷이 없어 사슬 갑옷을 입고 그 위에 천으로 된 코트를 걸쳤다.
리암 니슨이 연기한 발리안의 아버지 고프리는 제1차 십자군 원정을 이끈 고드프리 드 부용에서 따온 인물. 헨리 링컨 등이 쓴 '성혈과 성배',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등을 보면 고드프리는 템플 기사단의 원조이자 예수의 자손으로 나온다. 어스름 새벽에 풀씨가 날리는 숲에서 벌이는 전투는 '글래디에이터'의 새벽 숲 전투를 연상케 한다.
시빌라 공주 역의 에바 그린은 소피 마르소를 닮았다. 의상은 태국과 인도에서 만들었고, 사슬 갑옷은 중국 인도 등지에서 제작.
시빌라가 손에 그린 헤나는 아라비아어에서 파생됐으며 십자군 원정 때 이슬람에서 들어왔다. 실크, 나침반, 화약, 천 염색, 후추, 쌀, 레몬, 설탕, 오렌지 등도 모두 이슬람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것.
영화 속에서 잔혹하게 묘사된 템플 기사단은 예루살렘에서 성배를 찾기 위해 조직됐다. 9명 기사로 시작된 이들은 '성혈과 성배' '다빈치 코드' 등을 보면 예수의 자손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었다. 이들은 성배와 관련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나 이를 시기한 필립 왕에게 이단으로 몰려 1307년 10월 13일 대부분 처형됐다. 여기서 13일의 금요일이 유래했다.
핏방울까지 세세하게 보이는 개각도 촬영과 슬로 모션을 이용해 전장의 참혹함을 그대로 묘사했다. 병사로 나온 엑스트라들은 대부분 촬영지인 모로코 군인들이다.
영화 자막에 영어식으로 볼드윈 1세로 표기된 보두앵 4세는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었으나 영화처럼 나병으로 죽었다. 볼드윈 1세는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했으나 내내 철가면을 쓰고 나오는 바람에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묘미는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고 실제 인물들이 벌이는 스펙터클한 전투에 있다. 십자군과 이슬람 군의 충돌을 그린 이 장면도 모로코 사막에서 군대를 동원해 찍었다.
극 중 갑옷과 무기, 의상 등은 모두 제작한 것. 사슬 갑옷은 무려 20~30kg 무게 때문에 플라스틱을 사용해 만들었다.
교황 우르반 2세는 1095년 클레르몽 공의회를 열어 이슬람이 400년간 통치한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면죄부를 내걸고 제1차 십자군을 모병했다. 면죄부 때문에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참여해 매춘부와 소년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변변한 무기도 없는 농부들이었다.
볼드윈 1세와 이슬람군을 이끄는 살라딘이 만나서 협상하는 장면은 스페인 북부 피레네 산맥에 위치한 로아레 성 아래서 촬영. 로아레 성은 실제 중세시대에 세운 성이다.
볼드윈 왕이 죽고 공주인 시빌라와 결혼해 예루살렘 왕이 된 기 드 루시앵은 탐욕에 눈이 멀어 살라딘과 전쟁을 벌인다. 예수가 못 박혔던 십자가 조각까지 용기에 넣어 군기처럼 들고나갔으나 하틴의 곶에서 몰살당한 뒤 루시앵은 포로가 됐고, 십자가 조각도 빼앗겼다.
이슬람군을 이끈 위대한 투사 살라딘. 이슬람 세계를 통칭하는 사라센이라는 말은 동쪽 사람들이라는 뜻의 중세 기독교어에서 파생됐다. 이슬람 왕국을 통합한 살라딘은 사자왕 리처드까지 물리치며 중세시대 용맹을 떨친 전사로 부상해 베니스에서는 그를 존경해 아이들 이름을 살라딘으로 짓기도 했다.
극 중 예루살렘 성벽은 모로코에 세운 길이 360미터, 높이 17미터의 세트다. 성벽 뒤 도시 모습만 CG로 그려 넣었다.
십자군 기사들은 중무장 기병들이 일렬로 공격하는 프랑크의 돌격 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이슬람의 포위공격으로 모세의 산상수훈이 이뤄진 하틴의 곶이라는 사화산 부근에서 전멸한다.
탑차를 앞세우고 몰려드는 이슬람군. 높이 18m, 무게 25t의 탑차도 실물을 만들어 촬영. 수성용 무기로는 기름을 섞어 태우는 일종의 네이팜탄인 그리스 화약이 쓰였다. 영화와 달리 중세시대에는 불화살이 쓰이지 않았다. 날아가며 불이 꺼지거나 성벽에 맞으면 꺼졌기 때문.
십자군은 '스콜피온'으로 불렸던 거대한 기계 석궁을 발사해 이슬람의 탑차를 쓰러뜨렸다. 1095년 결성된 제1차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 탈환에 성공한다. 하지만 보급이라는 개념이 없던 중세시대에 이들은 살기 위해 마을을 약탈하고 가축과 쥐까지 잡아먹고 천막 끈까지 끓여먹었다. 성을 탈환한 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슬람과 유대인들을 절멸시켰다. "이교도 학살은 죄가 아니라 천국에 갈 수 있는 선행"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인들에게 승천 후 부활한 예수의 무덤이 있는 곳, 이슬람에게는 마호메트가 승천한 장소, 유대인들에게는 솔로몬 왕이 첫 성전을 지은 곳으로, 모두에게 성지인 하늘의 왕국이다.
하틴의 곶에서 십자군이 전멸한 뒤 유일하게 살아남은 발리안은 기독교인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함락 뒤 살라딘과 협상해 몸값을 지불하고 일부 기독교인들과 철수했다. 몸값을 지불하지 못한 나머지 수천 명의 기독교인들은 이슬람군에 의해 노예로 팔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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