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해바라기'(I Girasoli, 1970년)는 주인공인 소피아 로렌의 인생을 닮았다.
1934년생으로 올해 만 80세인 소피아 로렌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났다.
소피아 로렌의 삶을 닮은 영화
본명이 소피아 빌라니 시코로네였던 그는 사생아였다.
아버지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태어난 그는 찢어지게 가난해 나폴리 북쪽 포스오리 항구 근처의 외할아버지 집에 어머니와 함께 얹혀 살았다.
외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여서 그는 어려서 부터 일을 했고 제 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거리에서 빵을 구걸했다.
그 와중에 나폴리 음악학교를 다녔고 무대 경험도 있던 어머니 로밀라가 틈틈히 소피아 로렌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다.
모녀를 버리다시피 한 아버지는 로마에 사는 유부남으로, 건축기사였다.
특히 아버지는 소피아까지는 인정했지만 세 살 터울의 여동생 마리아를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아, 소피아가 평생 아버지를 증오하게 만들었다.
소피아는 나중에 배우로 성공한 뒤 아버지에게 소송을 걸어 동생 마리아의 친자권을 획득한다.
그래도 소피아는 한이 풀리지 않아 아버지의 임종 때도 찾지 않았다.
174cm의 큰 키에 글래머였던 소피아 로렌은 15세때 나폴리에서 열린 바다의 여왕 선발대회에 출전해 1등은 아니지만 12명의 왕녀 중 하나로 뽑혔다.
이때 받은 상금으로 어머니는 소피아를 연극학교에 보냈다.
마침 1950년 할리우드에서 영화 '쿼바디스'의 엑스트라를 모집해, 모녀는 여기 응모하기위해 로마로 갔다.
밥 먹을 돈도 없어 아버지를 찾아갔으나, 아버지는 모녀를 내쫓다시피 했다.
다행히 소피아는 엑스트라에 뽑혀 그 돈으로 월세방을 얻어 로마에서 생활한다.
이후 소피아는 각종 미인대회 출전 상금으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17세때 이태리 잡지 '피멧티'의 모델을 하면서 유명 영화 제작자 카를로 폰티의 눈에 띈다.
1910년생인 폰티는 소피아를 로마 영화학교에 보내 연기를 배우게 하는 등 돌봐준다.
소피아는 영화 '해저 아프리카'에 출연하며 로렌이라는 예명을 쓰게 된다.
폰티의 주선으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을 만나 '나폴리의 황금'에서 주인공을 하며 배우로 입지를 다진다.
여러 영화에 출연한 소피아는 1954년 '하녀'의 주연을 맡으며 국제적 스타가 된다.
뿐만 아니라 소피아는 1957년 멕시코에서 '해바라기'의 제작자이기도 한 카를로 폰티와 결혼을 한다.
결혼 당시 소피아는 23세, 폰티는 47세로 아버지 뻘이었다.
당시 유부남이었던 폰티는 부인 줄리아나와 헤어지려 했으나 이태리가 천주교 국가여서 이혼이 인정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폰티와 소피아는 멕시코로 건너가 결혼을 했으나 이태리에서 중혼죄로 고소를 당한다.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처럼 프랑스로 건너가 1964년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이듬해 프랑스 법정서 폰티와 줄리아나는 이혼을 한다.
이에 폰티와 소피아는 1966년 프랑스 파리 근교에서 다시 결혼식을 올렸다.
결국 이태리도 중혼죄를 기각한다.
과중한 출연으로 피로가 겹쳤던 소피아는 3번이나 유산을 했으나 1968년 이후 두 아들을 낳았다.
소피아는 1980년대 이후에도 간간히 활동을 했고, 남편 폰티는 2007년 세상을 떴다.
70년대에 만나는 네오 리얼리즘
사생아로 태어난 불우한 가정사, 두 아내를 가졌던 아버지, 남편 폰티의 중혼으로 힘들었던 결혼 생활 등 소피아의 삶은 '해바라기'를 연상케 한다.
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생이별한 부부가 결국 비극적인 파국을 맞게 되는 이야기다.
그 와중에 러시아 전선에 끌려간 남편(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이 또다른 가정을 꾸리게 되고, 여기 상처받은 아내(소피아 로렌) 역시 새출발하는 삶은 그들의 선택이 아닌 운명의 장난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피아 로렌은 이 작품에서 처절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한다.
소피아 로렌은 풍만한 여배우를 뜻하는 '마조라테 피지체'의 대표적 인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커다란 가슴과 육체적 매력 보다는 상처입은 여인의 내면에 집중한다.
이를 적절하게 뒷받침한 것이 헨리 맨시니가 작곡한 유명한 주제곡이다.
마치 흐느끼듯 이어지는 가슴 아픈 선율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 명곡이다.
여기에 거장인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정갈한 연출을 빼놓을 수 없다.
비록 1950년대 성행했던 네오 리얼리즘 영화가 퇴조하면서 스토리가 다소 신파조로 보일 수 있지만, 반전 메시지를 뚜렷하게 부각하는 진솔한 이야기의 힘이 있는 작품이다.
1080p 풀HD의 16 대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40여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기에는 한계가 있다.
미세한 지글거림이 보이고 윤곽선이 두터우며, 중경 원경에서는 눈 코 입이 명확하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이 떨어진다.
그래도 이 작품을 DVD 보다 좋은 화질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모노를 지원하는데,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귀에 거슬릴 정도로 자극적이다.
부록은 예고편만 들어 있어 거의 없다시피 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만개한 해바라기 밭이 참으로 처연해 보인다. 촬영은 주세페 로트노가 맡았다.
공간의 여유와 깊이감을 느끼게 하는 촬영이 인상적인 주세페 로트노는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 '울프' '아마코드' 등을 찍었다.
영화는 제 2 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전선을 배경으로 한다.
전쟁이 갈라 놓은 영화 속 비극적인 삶은 6.25를 겪은 우리도 숱하게 되풀이됐다. 남편을 연기한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이 작품이 개봉 때 국내에서 인기를 끈 것은 이산가족들이 주인공의 삶에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피아 로렌은 특유의 성적인 매력을 자제하고 삶에 지치고 피폐해진 여인을 연기했다.
남편의 또다른 아내를 연기한 루드밀라 사벨리에바는 1942년생으로 지금의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인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났다. 1962년 발레학교 졸업 후 레닌그라드의 키로프 발레단원으로 활동하다가 배우가 됐다.
소피아 로렌은 72세때인 2007년 피렐리 달력의 모델을 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찍은 최초의 서구 영화이자, 이태리 영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기는 실제 소피아 로렌이 낳은 아기다.
녹음 등 일부 작업은 이태리 로마의 치네치타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자전거 도둑' '움베르토 D' 등 전후 네오리얼리즘의 걸작을 남긴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이 작품 촬영 4년 뒤인 1974년 11월 폐 낭종 제거 수술 후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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