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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슬러

울프팩 2017. 4. 5. 22:22

로버트 로슨 감독의 명작 '허슬러'(The Hustler, 1961년)는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판 '타짜' 같은 영화다.

타짜의 등장인물들이 화투로 대결을 벌인다면 허슬러의 등장인물들이 대결을 위해 선택한 도구는 당구다.


내용은 내기 당구로 유명한 주인공 에디(폴 뉴먼)가 거물 당구꾼 미네소타 팻(잭키 글리슨)을 만나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에디는 몸과 마음에 고통을 받는 일도 겪고 소아마비를 앓은 여인 사라(파이퍼 로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제목 허슬러는 전문적으로 내기 도박을 즐기는 당구꾼으로, 우리네 타짜에 해당한다.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들이 벌이는 당구 시합을 참으로 긴장감있게 잡아냈는데, 여기에는 로슨 감독의 이력이 한 몫 했다.


로슨 감독은 젊은 시절 당구에 빠져 허슬러 생활을 했는데 이때 경험을 영화에 제대로 녹여 냈다.

그는 화투나 당구 등 도박은 심리전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봤다.


도박사에게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정이다.

어차피 실력이 월등하게 차이나지 않는 프로 도박사들이라면 상대를 당황하거나 긴장하게 만들어 실수를 유발하고 반대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고 냉정한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영화가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쉽게 묘사하기 힘든 도박사들의 심리를 영상으로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에디는 긴장하면 시합 중에 지나치게 술을 마시는 경향이 있고 도발하는 말에 참지 못하고 발끈하는 단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시합에서 지기도 하고, 나중에는 자신의 단점을 역이용해 상대를 꺾기도 한다.

오로지 돈만 밝히는 지독한 승부사인 매니저(조지 C 스콧)는 에디의 문제를 꿰뚫어 보고 "너는 패배자야, 이번 시합에서 질거야"라는 말로 에디를 격동시켜 시합의 승패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로슨 감독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실력이 아닌 에디의 성질"을 승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영화는 에디와 주변인물들의 변화를 따라가며 문제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한 번도 긴장감을 놓치 않고 밀도있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로슨 감독의 연출력이다.

더불어 1등 공신을 꼽는다면 유진 슈프턴의 탁월한 촬영 솜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당구대와 눈높이를 맞춘 앵글로 당구치는 인물의 표정과 상황을 한꺼번에 잘 잡았다.

인상적인 것인 거울을 비스듬하게 잡은 영상과 배경을 대각선으로 가르는 구도다.


1960년대 영화에서 흔치 않은 구도를 통해 시선을 끌며 인물의 불안정한 감정을 관객들이 함께 느끼도록 만든다.

더불어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처럼 자주 앙각을 활용해 인물을 강조했는데, 독특하게도 '시민 케인'의 앙각이 인물들이 서있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작품에서는 앉아 있는 인물들을 앙각으로 잡았다.


느낌도 그만큼 다르다.

'시민 케인'의 앙각이 인물을 거대하고 위압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면 이 작품의 앙각은 인물에게 한층 다가가 파고드는 느낌을 준다.


아울러 폴 뉴먼은 배역에 딱 맞아 떨어지는 절묘한 캐스팅이었다.

그는 얄미울 정도로 에디 역을 잘 소화해 이 작품 이후 전성기를 맞았다.

 

폴 뉴먼 뿐만 아니라 이 작품 이후 긴 공백기를 가진 여배우 파이퍼 로리, 매니저의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준 조지 C 스콧, 침묵의 승부사를 연기한 잭키 글리슨까지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그만큼 연출, 연기, 영상과 편집, 음악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이 작품과 동명의 원작 소설을 쓴 월터 테비스는 25년 뒤 나이 든 에디를 주인공으로 다룬 속편을 썼다.

그 작품 또한 영화로 제작됐는데 바로 폴 뉴먼과 톰 크루즈가 콤비를 이룬 '컬러 오브 머니'다.

 

폴 뉴먼은 '컬러 오브 머니'로 그의 인생에서 유일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아 '허슬러'에서 후보에만 오르고 수상하지 못한 한을 풀었다.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흑백 영화라서 화질 열화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지글거리고 더러 세로 줄무늬도 보이지만 DVD 타이틀 치고는 무난한 화질이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포토 갤러리와 예고편이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폴 뉴먼이 연기한 에디와 콤비로 나온 인물이 무려 14회나 세계 포켓볼 챔피언을 지낸 윌리 모스코니다. 그는 이 작품의 당구 자문역을 맡았으며 후반 등장하는 에디의 묘기 당구는 폴 뉴먼이 아닌 그가 대신 쳤다.

이 작품은 당구 승부사들의 한 판 대결을 긴장감있게 잘 묘사했다. 유명한 영화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작품에 대해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을 인정하면서 승리를 거두는 영화"라고 평했다.

사실주의를 추구한 로버트 로슨 감독은 실제 장소에서 촬영하기를 고집해 호텔, 버스정류장, 당구장 등을 뉴욕과 루이스빌의 실제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찍었다.

이 작품은 제 34회 아카데미상 8개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은 촬영상과 미술상 2개 부문만 했다. 세련된 촬영은 유진 슈프턴의 솜씨다.

폴 뉴먼은 이 영화를 찍으며 처음으로 당구를 쳤다. 그래도 열심히 연습해서 상당 부분 장면을 직접 소화했다고 알려졌다.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는 미네소타 팻을 연기한 잭키 글리슨은 실제로 포켓볼 당구 실력이 뛰어나 그가 나오는 모든 장면에서 직접 당구를 쳤다.

로슨 감독은 촬영 장소 주변의 실제 건달들을 엑스트라로 고용해 당구장 장면을 촬영했다.

이 영화는 1965년 다시 한 번 리메이크 됐는데, 바로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신시내티 키드'다. 대신 이 작품은 당구를 포커 카드게임으로 바꿨다.

로버트 로슨 감독은 1940년대 미국에 극우 반공물결인 매카시즘 광풍이 불때 좌익 시나리오 작가로 지목돼 미 의회에 소환됐다. 그는 처음에 협조를 거부했으나 나중에 공산주의자라고 밝히고 다른 용의자 57명의 이름까지 제공했다. 주인공 에디가 세상에 순응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그린 배경에는 이런 과거도 한 몫 했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파이퍼 로리는 이혼 소송과 딸의 양육 문제 때문에 이 작품 이후 15년 동안 영화계를 떠났다. 그러다가 신변이 정리된 뒤 1976년 공포영화 '캐리'로 복귀했다.

로슨 감독은 월터 테비스의 원작 소설 각색에 직접 참여했다.

한창 젊었을 때 꽤 근사한 몸을 가졌던 폴 뉴먼. 그는 이 작품의 주연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 거절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영화 '투 포 더 시소'를 찍고 있었기 때문이다.

'타짜'에서 손장난을 걸린 도박사의 손목을 잘랐다면 이 작품에서는 정체가 들통난 허슬러의 양 손 엄지손가락을 부러뜨린다. 킴 노박은 여주인공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이 작품에 또다른 전설이 한 명 등장한다. 바로 폴 뉴먼의 등 뒤에 보이는 바텐더를 연기한 유명한 권투선수 제이크 라모타다. 로버트 드 니로가 연기한 '성난 황소'의 실존 인물이다.

존재 자체가 카리스마였던 조지 C 스콧.

토니 커티스도 주인공을 제안받았으나 다른 영화 촬영 때문에 거절했다. 로슨 감독은 1966년에 죽었다.

허슬러
로버트 로센 감독; 폴 뉴먼 출연; 조지 C. 스콧 출연;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The Hustler (허슬러 OST): Original Soundtrack Recording (Music Composed by Kenyon Hopkins)
Kenyon Hop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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