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형사 Duelist

울프팩 2006. 1. 20. 18:28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
신중현의 노래 '미인'의 한 구절이다.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2005년)는 '미인'같은 영화다.
처음 볼 때는 도대체 무슨 얘기인 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지만 두 번, 세 번 되풀이해 보며 곱씹을수록 보이지 않던 그림과 이명세 특유의 멋이 우러난다.

대신 이명세 스타일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영화평론가 강한섭은 "이명세에 대한 정보와 애정이 없다면 화가 날 영화"라고 평했다.

이유는 줄거리보다 영상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만화가 방학기의 '다모'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좌포청 포교 남순이 위조화폐범을 좇는 이야기지만 실상 액션과 사건풀이보다 남순(하지원)과 악당 슬픈 눈(강동원)의 엇갈리는 사랑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언뜻 보면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이 감독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풀었다.
대사를 최대한 억제하고 배우들의 동작을 강조한 것.

이야기(내러티브)를 우선 살피는 관객들에게는 참기 힘든 고문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이 감독 말마따나 "이성으로 생각하지 말고 시각적 쾌감과 청각적 쾌감에 의존"한다면 달리 보인다.

한마디로 이명세표 영화는 움직임(movement)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을 상기하고 보면 기존 우리 영화들과 다른 스타일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명세에 대한 짝사랑일 수도 있지만 근래 DVD 타이틀로 본 최고의 한국영화로 꼽고 싶다.

참고로, 이 영화는 극장이 아닌 DVD 타이틀로 봐야 한다.
이유는 소리 때문이다.

이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때 영상 못지않게 신경 쓴 부분이 음향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대사가 전, 후, 좌, 우 스피커로 이동하며 들리도록 5.1 채널 음향을 조정했기  때문에 오히려 환경이 부실한 극장보다 DVD 타이틀에서 더 나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평범하다.
원경의 샤프니스는 떨어지지만 클로즈업은 비교적 괜찮다.

3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만큼 부록이 많다.
그중에 디스크 3에 수록된 ‘형사 만들기’가 볼 만하다.

이 감독의 작품 세계와 독특한 현장 연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어서 오히려 제작과정 코너보다 더 많은 정보를 준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마치 '전설의 고향'을 연상케 하는 도입부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헷갈려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도입부는 관객의 눈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호기심을 끌기 위한 맥거핀일 뿐이니 의미를 두지 말고 지나쳐도 된다.
이 장면은 야외 씬이 많지만 실제 로케이션 촬영은 거의 없고 대부분 세트다. 요란한 장터거리 역시 남양주에 있는 MBC 세트장에서 촬영. 이 부분에 등장하는 남사당패는 유명한 동춘서커스단이다.
위조화폐범과 돈주머니를 쫓아 포교들이 질주하는 장면. 특히 길쭉한 돈주머니를 옆구리에 끼고 태클을 피해 뛰어넘고 구르며 달리는 이 장면은 마치 미식축구 경기를 보는 것처럼 역동적이다. 실제 이 감독은 이 장면을 미식축구에 비유해 찍었다.
하지원은 드라마 '다모'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하지원의 연기는 절반은 아쉽고 절반은 좋다. 아쉬운 부분은 껄렁껄렁한 연기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박중훈을 흉내 낸 것 같아서였고, 좋은 부분은 후반 표정연기들이다.
남순과 슬픈 눈의 대결을 그린 이 장면은 프리즈 프레임과 음악, 조명을 적절히 사용해 검무를 보는 것 같다.
우리 영화 중 화면의 절반을 과감히 포기하고 어둠 속에 묻어버릴 수 있는 감독이 있을까. 극도로 콘트라스트가 강조된 이 장면은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을 준다. 더욱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은 마치 만화책을 보며 그림의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듯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동작을 상상하게 만든다. 여백의 미를 강조한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명장면이다.
팔레트에 물감을 묽게 풀어 확 뿌리면 빛깔이 이리 나올까. 형형색색 등이 곱게 빛나는 이 장소는 홍등가다. 사랑을 사고파는 거리를 꿈결처럼 아름다운 색깔로 묘사할 수 있는 것도 재주다. 색으로만 이뤄진 몬드리안의 그림 같다.
또 계단이다. 이명세는 "계단은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끊어져 있고 막힌 듯하면서도 흐르기 때문에 영화적인 장소"라고 말한다.
안 포교(안성기) 얼굴 위로 빛과 그림자가 함께 드리운다. 그 뒤로 빛나는 칼날이 그림자에 묻혀 아련하게 보인다. 실로 이명세의 스타일과 황기석의 뛰어난 카메라 워킹이 빚어낸 솜씨다.
이 영화는 그림 못지않게 조성우 음악감독의 음악이 훌륭했다. 음악이 대사를 대신하는 또 하나의 내러티브인 셈. 특히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이 익어가는 장면에 흐르던 음악이 참 고왔다.
의복도 특징이 있다. 양반의 옷을 제외하고 얼굴과 옷을 구분 짓는 동정이 없다.
막판 대결에 나오던 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이 절묘하게 배어있는 하지원의 표정연기가 압권이다.
막판 대결은 탱고 춤을 보는 것 같다. 실제 안무로 구성된 이 장면과 조성우의 음악이 잘 어울렸다. 엔딩 타이틀에 흐르던 하지원과 강동원이 직접 부른 노래도 참 좋은데, OST에 제외됐다. 오로지 DVD 타이틀에서만 들을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명장면은 극도의 콘트라스트를 보여준 돌담길 장면들이다. 돌담길 역시 세트다. 극도의 콘트라스트는 천장과 돌담 뒤 수많은 조명을 설치해 반대편을 강하게 밝히면서 빛이 차단당한 쪽에 진한 그림자를 드리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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