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1998년)은 우리 공포물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빼어난 수작이다.
감독이 직접 쓴 탄탄한 시나리오와 더불어 입시위주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메시지 전달력이 뛰어났다.
특히 공포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익숙한 이야기와 환경을 다뤘기 때문이다.
화장실 귀신처럼 오래된 학교에 한두 가지씩 떠도는 귀신 이야기와 학교라는 건물이 주는 위압감과 폐쇄감을 적절히 이용했다.
예전 두발 및 교복자율화 이전 학창 시절을 떠올려보면 유난히 을씨년스럽던 풍경이 떠오른다.
불 꺼진 어두침침한 나무 마룻바닥 복도, 바람에 연통이 흔들리며 끊임없이 울려대던 삐걱거리는 쇳소리, 한낮에도 그늘이 져 해가 들지 않는 외따로 떨어진 화장실 건물, 을씨년스러운 뒷산과 이어진 쓰레기소각장 등 감수성 예민한 시절에 모두가 살풍경한 환경들이었다.
말도 안 되는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기분 나쁘게 만드는 것이 싫어 공포물을 좋아하지 않는데, '식스센스'나 '디 아더스' '여고괴담'처럼 구성이 탄탄한 작품들은 좋아한다.
이 작품으로 재능을 드러낸 박 감독은 2003년 후속작 '아카시아'를 선보였으나 실망스러웠다.
다시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는 후속작품을 기대해 본다.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 영상은 줄거리 파악에만 만족해야 할 정도로 화질이 안 좋다.
잡티, 색 번짐, 지글거림 등 온갖 노이즈 때문에 대여점에서 빌려온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꼭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블루레이 타이틀로 나왔으면 좋겠다.
그만큼 훌륭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돌비디지털 2.0을 지원하는 음향도 대사가 작고 배경음에 묻혀 여러모로 불편하다.
이렇다 할 부록도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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