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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화양연화

울프팩 2005. 9. 22. 14:03

왕가위(王家卫) 감독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열혈남아'와 '화양연화'다.
'열혈남아'가 그의 패기를 느낄 수 있는 독보적 작품이라면 '화양연화'는 명품처럼 빛나는 걸작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 2000년)는 극장 개봉 당시 지루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 영화는 상당히 느리다.

 

1시간 30분이라는 길지 않은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여러 장면이 슬로 모션과 정지 화면에 가까운 클로즈업으로 흘러간다.
왕 감독은 이처럼 느린 영상을 통해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했다.


미국의 명가 크라이테리언 DVD를 리핑한 게 아닐까 싶은 국내 출시판은 화질 좋은 프로젝터로 보면 아련한 색감과 곱디고운 필름 입자가 그대로 느껴져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살린다.
여기에 시게루 우메바야시의 음악이 가슴을 아프게 때린다.

최근 다시 나온 FE판 DVD 타이틀은 디지팩 케이스 외에 영상, 음향, 부록 등이 기존 틴 케이스판과 달라진 것이 없다.
기존 틴 케이스판도 화질과 음향이 괜찮았던 만큼 더 이상 개선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DVD 타이틀은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과 돌비디지털 5.0 음향을 지원한다.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만큼 2번째 부록에 음성해설이 가미된 삭제장면, 작품 제작 의도를 알 수 있는 왕가위 감독의 인터뷰와 제작과정이 들어 있다.

특히 편집으로 잘려나간 '펄프픽션'을 그대로 흉내 낸 장만옥과 양조위의 속옷바람 댄싱을 볼 수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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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는 꽃다운 나이, 즉 여성이 가장 아름다운 때를 의미한다. 왕 감독은 기억 속에서 화려했던 시절인 홍콩의 1960년대를 가리키는 이중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이 영화의 묘미는 느림의 미학이다. 시게루 우메바야시의 느린 왈츠풍 선율에 맞춰 대사 한마디 없이 슬로 모션으로 흐르는 장면들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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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특징은 익스트림 클로즈업. 담배연기, 남녀의 손 등 극단적으로 확대된 영상은 집요할 정도로 탐미적이다. 영화에 나오는 음식은 계절을 나타낸다. 왕 감독은 계절별 요리 재료를 나타내 중국 사람들이라면 음식만 보고 몇 월인지 알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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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의 친구로 나오는 팽이라는 인물은 배우가 아닌 이 영화의 소품 담당이다. 의외로 연기를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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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보이지 않는 특징은 바로 숨어보기다. 크리스토퍼 도일이 잡은 카메라는 건물이나 물건, 창살 틈 뒤에서 인물들을 잡아 마치 관객이 숨어서 엿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왕 감독은 이런 기법이 서스펜스를 높여 준다고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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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 킹 콜의 'Quizas, Quizas, Quizas'가 부드럽게 흐르는 가운데 붉은 커튼이 슬로 모션으로 흩날리는 장면은 한 편의 시 같다. 호텔로 나오는 곳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전 영국 병사들을 위한 병원이었다. 왕 감독은 이곳이 해체된다는 소식을 듣고 호텔처럼 꾸민 뒤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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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아련함을 주는 싱가포르 하늘. 이 영화는 15개월 걸려 촬영했다. 촬영 도중 아시아의 환란으로 투자가 중단돼 제작이 길어졌다. 그 바람에 왕 감독은 '2046'과 동시에 작업을 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두 작품의 영화 내용이 뒤섞였다. 원래 왕 감독은 대본없이 2~3개 이야기를 두서없이 찍기로 유명하다. '중경삼림'이 대표적인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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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드레스를 입은 장만옥은 참으로 매혹적이다. 틀어올린 머리와 긴 목, 높은 컬러가 잘 어울려 더욱 미끈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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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앙코르와트에서 막을 내린다. 편집전 장면을 보면 이곳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재회한다. 그 뒤 더 이어지는 내용을 찍을 예정이었으나 칸영화제 출품 때문에 중단했다. 그래서 앙코르와트에서 갑자기 결론이 난 것. 그 바람에 영화는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 대미를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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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위는 저 돌 틈에 무엇을 묻었을까. 못다한 사랑 고백일까, 회한에 찬 소리없는 눈물일까. 모두 세월이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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