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화녀82

울프팩 2012. 12. 9. 21:40
'화녀82'(1982년)는 우리 영화사의 기인이자 위대한 명장으로 꼽히는 고 김기영 감독이 자신의 대표작 '하녀'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1971년 '화녀'에 이어 두 번째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원작보다 한층 더 무시무시해졌다.

이야기의 구성은 똑같다.
가정부로 올라온 시골 처녀가 주인집 남자에게 몸을 버린 후 온 가족에게 복수를 하는 이야기다.

단순 복수가 아니라 남자에 대한 집착이 무서운 증오로 변하는 과정을 애증의 변증법으로 다뤘다.
흑백으로 제작된 원작의 긴장과 섬뜩한 공포도 압권이지만, 다시 만든 이 작품 역시 또다른 긴장감을 선사한다.

특히 이 작품에서 김 감독은 다채로운 색을 사용해 등장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 상태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했다.
다양하게 반짝이는 스테인드글라스 파편과 김지미가 남편을 유혹하는 장면에 나오는 여러가지 색깔의 쿠션 등은 마치 사이키델릭 뮤직을 듣는 것처럼 몽환적이다.

여기에 김 감독은 각종 소품을 적절하게 사용해 강박증에 쫓기는 남성과 여성의 심리를 대신했다.
온 벽을 가득 메운 벽시계와 닭모이 분쇄기, 그리고 남자 주인공이 작곡한 처연하게 들리는 노래 등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사람들과 언제 부서질 지 모르는 위기의 가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원작에서는 막판 가벼운 유머로 남자들에게 외도를 경고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것 없이 일사천리 미스테리 드라마로 달린다.
하지만 김 감독 특유의 풍자적 대사를 통한 교훈은 여전하다.

"테레비가 하루에 12번씩 사람 죽이는 걸 보여주니 안그러겠냐"는 대사는 영화를 위협하는 TV의 폐해를 지적했고, "오입을 안해봤기 때문에 이런 실수가 생긴거야"라는 남편의 황당한 변명은 타락한 성 의식을 대변한다.
다시금 김 감독의 남다른 감각이 어떻게 변해갔는 지를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작품이다.

16 대 9 레터박스 방식의 DVD 타이틀은 화질이 비디오테이프 수준으로 조악하다.
잡티와 스크래치 등이 난무하고 디테일도 떨어져 원경 중경에서는 인물의 눈 코 입이 뭉개지기 일쑤다.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음량이 커졌다 작아지는 등 들쭉날쭉해 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부분도 많다.
부록은 전혀 없다.

영상과 음향이 제대로 복원된 블루레이나 DVD 타이틀이 다시 나오기를 기대한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주인집 남자에게 몸을 버린 후 무서운 복수의 화신으로 돌변하는 순진한 시골처녀 역할은 나영희가 맡았다. 극 중 나이는 18세인데, 역할보다 더 들어 보인다.
원작부터 이어지는 쥐와 쥐약에 대한 공포가 이 작품에서 중요한 메타포로 작용한다. 농약, 쥐약은 어찌보면 이 땅의 한의 상징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주부로 눌러앉은 김지미의 꿈의 상징이자, 억눌린 여성의 욕망을 상징한다.
이 작품 속 남편(전무송)은 끊임없이 유혹에 흔들리는 약한 존재다. 작곡가인 남자를 유혹하는 가수 역할은 김해숙이 연기.
마치 서치라이트를 비추듯 실내등으로 남자의 외도를 비추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다채로운 색깔의 쿠션에 파묻혀 남편을 유혹하는 김지미의 모습은 사이키델릭 뮤직같다.
딸로 나온 아역 배우가 바로 장서희다.
극 중 나오는 처연한 노래는 김옥이 불렀다.
정사 장면을 금박 은박 등 다채로운 영상으로 표현한 김 감독의 감각이 놀랍다.
2층으로 이어지는 좁은 계단의 집과 위에서 내려다보고,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공포심을 조장하는 앵글은 원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양계장, 닭모이 분쇄기가 놓인 지하실 등 공간이 더 늘어났다.
한국영화 마스터피스 컬렉션 화녀82
장서희 출연/김기영 감독/김해숙 출연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하실의 멜로디  (2) 2012.12.11
황혼에서 새벽까지 (블루레이)  (10) 2012.12.10
고고70 (블루레이)  (2) 2012.12.08
일라이  (4) 2012.12.07
멋진 하루 (블루레이)  (6) 2012.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