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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82년생 김지영(블루레이)

울프팩 2022. 2. 26. 17:40

2016년 출간된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페미니즘 논란을 부른 작품이다.

한 여성의 30여 년 삶을 조망한 이 작품은 이 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다뤘는데 이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일었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옹호한 반면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쪽에서는 지나친 과장이자 피해의식의 확대로 봤다.

이를 원작으로 한 김도영 감독의 '82년생 김지영'(2019년) 또한 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원작을 둘러싼 논쟁이 그대로 전이돼 개봉 전부터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과연 페미니즘 논란이 일만한 작품인지 의문이 든다.

 

영화의 소재 자체가 성평등의 한계를 지적할 만한 사회 구조적 문제보다는 한 여성의 삶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 여성의 단편적인 삶을 전체 여성의 문제로 치환해 사회 구조적인 성 차별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내용은 결혼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 여주인공 지영(정유미)이 일상에서 벗어나 복직을 준비하던 중 뜻밖의 질병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사람의 영혼이 덧씌우는 빙의처럼 졸지에 자신을 잃고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일종의 환각 증세를 보인 것이다.

 

결국 지영의 복직은 무산되지만 그 원인이 질병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지영이 겪게 되는 육아의 어려움과 남편 월급을 올곳이 대체하기 힘든 생계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가 지영의 발목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을 향한 사회의 그릇된 시선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유모차를 밀고 카페에 들어섰다가 커피를 쏟은 지영을 향해 맘충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 여전히 남아선호 사상에 사로잡힌 지영의 아버지와 어른들의 모습, 명절 시댁 살림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며느리의 어려움과 여고시절 버스에서 성추행을 당할 뻔한 상황 등이 조각그림처럼 나열된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큰 연결고리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사회구조적 문제를 짚어내지 못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에피소드들을 관통해 목걸이로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 부분은 김 감독도 원작의 한계를 지적하며 영화화의 어려운 문제로 꼽았다.

원작 소설 자체가 김지영을 진찰한 정신과 의사의 기록처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큰 줄거리보다는 에피소드 나열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김 감독은 영화의 중심인 서사 구조를 원작에서 찾을 수 없어 에피소드를 추려내 힘들게 이어 붙이는 방식을 썼다.

이 과정에서 김 감독은 이야기의 뼈대를 세우기 위해 원작에서는 그렇게 큰 비중을 두지 않은 복직 과정에 무게를 실었다.

 

이 부분은 김 감독의 판단과 선택이 옳았다고 본다.

경력단절녀가 복직되는 과정의 어려움을 보여 주면서 출산, 육아 등의 문제가 사회제도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줬다.

 

그래서 결말 또한 원작 소설과 달리 다르게 진행된다.

오히려 원작 소설보다 영화가 희망적이며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로 보기 힘든 것은 지영을 둘러싼 이야기들이 너무 단편적이어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고 제각기 조건이 다른 여성들을 대변하기에도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상한 병을 앓고 복직에 어려움을 겪는 지영의 삶은 그저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만 읽힐 뿐이다.

 

그 속에서 정치적 함의를 찾아내 해석하는 것은 각자의 몫일 따름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지영보다는 남편 대현(공유)이 더 딱하게 보일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논하는 페미니즘 영화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저 서사 구조가 약한 하나의 심심한 드라마일 뿐이다.

확대 해석해서 페미니즘 운운할 만한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별을 떠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것들을 일일이 법과 제도로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사회 구성원들의 통념이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한 교육과 메시지를 일깨우는 활동들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런 메신저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는 의문이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필터링된 색감이 잘 살아 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잔잔한 드라마인 만큼 서라운드 효과가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들의 음성해설, 감독과 원작 소설을 출간한 민음사 편집자들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감독 및 배우들의 인터뷰 등이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에는 지영의 뒷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감독은 여기서 한발만 더 내디디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벼랑끝에 선 여성들을 표현하기 위해 이 장면을 자주 썼다는 설명이다.
이 작품은 봄바람영화사의 창립작이자 김 감독의 장편 입봉작이다. 극 중 김 팀장이 세우는 광고회사 이름도 봄바람이다.
이 영화는 '내머리속의 지우개'처럼 딱한 처지의 여인을 다룬 드라마다. 주인공이 아픈 것은 안타깝지만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는 다른 여인들에 비하면 조건이 나쁘지 않다.
소설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남성인데 영화에서는 여성으로 바뀌었다. 감독은 굳이 남자일 필요가 없어서 바꿨다고 한다.
빙의 증세를 보이는 지영의 병명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감독은 빙의 장면을 오컬트 영화처럼 무섭게 표현하는 것을 일부러 피했다. 그보다 말의 내용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여성인 감독도 육아를 병행하며 영화를 찍었다. 이 작품은 367만명이 봤다.
감독은 원작소설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8가지 에피소드를 뽑은 뒤 이를 6개로 줄여 시나리오를 쓰고 다시 5개로 줄여 영화에 담았다.
영화는 원작에 없는 만년필 이야기를 넣었다.
조남주 작가는 아이를 기르며 PD수첩 등 방송작가로 일한 어려움을 담아 르포 형식의 소설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했다. 민음사에서 펴낸 이 소설은 100만부 이상 팔렸다.
결말은 시니컬한 소설과 달리 영화가 더 희망적이다. 감독은 복직과 작가가 되는 것 등 2가지 엔딩을 만들었으나 결국 작가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김 감독은 예전에 배우로도 활동해 '말아톤' '오아시스' '완득이' '내 아내의 모든 것' 등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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