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울프팩 2018. 11. 10. 15:41

1980년대는 금기의 시대였다.

서슬 퍼런 군사 정권 아래에서 영화 음악은 물론이고 책, 방송까지 모든 문화활동이 철저한 정부의 검열을 받았다.


이념을 떠나 조금이라도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철저하게 금지시켰다.

영화는 무조건 가위질당했고 책이나 음악은 금서나 금지곡으로 묶여 시중에서 사라졌다.


당시 록 음악 꽤나 듣는다는 록 키즈들 사이에 인기 있던 영국 밴드 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노래 'Killer Queen' 'Bicycle race' 'Death On Two Legs' 등 숱한 곡이 국내에서는 금지곡으로 묶였고, 가장 결정적인 히트곡 'Bohemian Rhapsody'도 국내에서는 금지곡이어서 음반으로 발매되지 않았다.


이유도 가지가지였는데,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염세적이고 비관적이며 살인을 묘사해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다고 못 들은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이태원의 길거리 리어카나 동네 음반점에서는 금지곡만 모아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팔았고, LP를 듣던 친구들은 청계천 장안레코드 같은 곳에 가서 백판을 여러 장 사다가 들었다.

퀸의 'A Night at the Opera'나 핑크 플로이드의 'Wall' 같은 명반들은 이렇게 백판으로 구입했다.


값이 싸고 열악한 환경에서 찍어낸 백판들은 당연히 음질이 좋을 수 없다.

판이 긁혀 지글거리는 잡음과 뭉개진 소리골에서 울려대는 비명 소리가 정작 음악소리보다 더 컸지만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다는 희열이 그런 모든 불만을 상쇄했다.


그때 듣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나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모틀리 크루의 'Shout At The Devil' 같은 금지곡들을 들으면 좀 무서웠다.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는 긴장과 불안 때문이었다.


그렇게 공포로 시작했던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너무나 아름다운 멜로디와 웅장한 오페레타적 구성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그 곡뿐만 아니라 '39' 'Seaside Rendezvous' 'I'm In Love With My Car' 'Love Of My Life' 'Good Company' 등 '어 나잇 앳 디 오페라' 음반에 실린 대부분의 곡들이 너무 좋아서 음반 전체를 수백 번 들었다.


그만큼 좋아했던 밴드였기에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려 사망했다는 보도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렇게 갑자기 프레디 머큐리가 한창 나이에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렇게 사라진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일깨워준 영화다.

그들이 밴드를 결성해 한창 인기를 얻었고 어떻게 마지막을 장식했는지를 보여준다.


초점은 단연 퀸의 중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다.

그의 찬란하게 빛나고 아팠던 시기들을 영화는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담아냈다.


그래서 보고 나면 가슴이 짠하다.

무엇보다 퀸의 공연 장면 재현은 압권이다.


1985년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열렸던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 돕기 자선공연이었던 '라이브 에이드'는 실제 공연 현장에 있는 것처럼 아주 실감 나게 재현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퀸의 '몬트리올 라이브' 블루레이에 들어 있는 라이브 에이드 영상을 재생해보니 영화 속 장면이 방송 카메라의 움직임과 무대 위 한편 설치물에 앉아있던 스태프까지 그대로 똑같이 묘사한 것을 보고 놀랐다.


여기에는 실제 밴드 멤버들과 똑같이 닮은 배우들의 외모도 크게 기여했다.

특히 기타리스트인 브라이언 메이가 아주 똑같이 닮았다.


오히려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라미 말렉이 가장 안 닮은 셈.

그들의 공연 실황 블루레이나 DVD를 보면 프레디 머큐리는 라미 말렉보다 키가 컸고 어깨가 더 넓다.


그래서 훨씬 더 남성적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프레디 머큐리는 피부가 아주 하얗다.


비록 라미 말렉은 실제 프레디 머큐리와 닮지 않았지만 연기를 너무 잘해서 외모에 대한 아쉬움이 덜했다.

그만큼 캐스팅이 잘 된 영화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노란색 재킷으로 상징되는 퀸의 웸블리 라이브 장면이 빠져서 아쉬웠다.

아마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장면을 고스란히 넣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들을 다루다 보니 라이브 에이드 공연 실황을 제외하고는 노래 전곡이 온전히 나오는 경우가 없다.

영화 제목인 보헤미안 랩소디의 경우 한 번쯤 전곡이 나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출과 배우들의 몰입도 높은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퀸의 음악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감동적인 영화다.

새삼 퀸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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