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대만 10

말할 수 없는 비밀(블루레이)

대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Secret, 2007년)은 기대하지 않고 봤다가 우연히 건진 수작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만든 주걸륜의 탁월한 재능에 연신 감탄하며 본 작품이다. 중화권 인기 가수인 주걸륜은 이 작품의 감독, 극본, 주연, 편집, 작곡, 주제가 등 혼자서 1인 다역을 했다. 거기에 극중 화려한 피아노 연주도 모두 그의 솜씨다. 이처럼 많은 역할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완성도 높은 이야기와 탄탄한 연출, 빼어난 장면 구성과 음악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해냈다. 한마디로 팔방미인이다. 이야기는 음악에 얽힌 두 청춘 남녀의 사랑을 판타지풍으로 묘사한 내용이다. 초반부를 보면 언뜻 일종의 기담을 연상할 수 있지만 막판 반전은 보는 이의 기대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그만큼 이야기의..

루시 (블루레이)

뤽 베송 감독의 '루시'(LUCY, 2014년)는 허탈한 영화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감독의 전작인 '니키타'나 또다른 여성 전사물 '한나' '웉트라 바이올렛' 같은 액션을 기대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러웠다. 내용은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능력을 획득하게 된 여인이 복수를 벌이는 이야기다. 감독은 이를 통해 인간의 뇌 활용 능력에 궁금증을 던졌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보통 뇌 용적의 10% 가량을 활용한다고 한다. 이를 개발해 20% 이상을 활용하게 되면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아무도 거기까지 가보지 못했으니 감독의 황당한 상상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폭주 기관차처럼 무한 상상궤도를 달린다. 극 중 루시..

라이프 오브 파이 (블루레이)

영화는 기술을 통해 진화한다. 문학이나 음악 무용과 같은 순수 예술과 달리 영화는 광학, 컴퓨터그래픽 등 산업기술의 발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 2012년)다. 이 작품에 나오는 호랑이를 보면 실제 호랑이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호랑이를 구별하기 힘들 만큼 똑같다. 오죽했으면 이 작품에서 호랑이 조련을 맡은 티에리 르포르티에 조차 실물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올올이 일어선 털들과 인광을 뿜어내는 눈빛, 역동적인 움직임까지 참으로 정교하다. '스타워즈' 에 등장하는 로봇이나 괴물처럼 가상의 존재인 경우 비교할 실물이 없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 기상천외한 존재를 만들 수 있겠지만 이 작품처럼 실물이 존..

대만 타이베이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만 해도 중국이라하면 중화민국, 즉 지금의 대만(타이완)을 의미했다. 지금의 중국은 당시 '중공'이었다. 그러던 것이 노태우 정부 시절인 92년에 중국과 국교를 수교하면서 중국의 요구로 대만과 국교가 단절됐다. 지금까지 국가적 교류는 없지만 경제, 민간 차원의 교류는 활발하다. 아이러니한 것은 중국의 압력 때문에 대만과 국교를 유지하는 나라는 10여개국 수준에 불과하지만 정작 중국과 대만은 요즘 훈풍 분위기다. 양 국간 경제협력으로 대만의 중국투자 및 중국의 대만투자가 늘고 있다. 대만까지 인천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 걸린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어서 시차도 1시간 밖에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만의 수도인 타이베이는 정확히 말하면 수도가 아닌 직할시다. 194..

여행 2010.10.09

열혈남아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으니 1988년으로 기억한다. 새 학기가 시작돼 대학에 수강신청을 하러 갔다가 고교 후배를 만났다. 점심을 먹으며 영화 얘기를 하던 중 녀석이 갑자기 "죽이는 영화를 봤다"며 입에 침을 튀기기 시작했다. 녀석 왈, "최근 일본에서 붐이 일어난 작품인데,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변두리 극장에 며칠 걸렸다가 사라졌다"며 "최근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봤는데 극장에서 못 본 게 한이 될 만큼 멋진 작품"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그 작품이 바로 왕가위(王家卫) 감독의 데뷔작 '열혈남아'(As Tears Go By, 1987년)였다. 궁금함을 참지 못해 그날 당장 비디오테이프로 빌려본 작품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당시 더블데크가 없어 VTR을 재생하며 TV에 연결된 비디오카메라로 녹화를 뜬 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