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송강호 23

하울링

개를 살인 교사에 이용하는 이야기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린 시절 읽었던 '바스커빌가의 개'였다. 아더 코난 도일 경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인 이 작품은 지옥의 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늑대개가 사람을 잇따라 물어죽이는 연쇄살인을 다룬 유하 감독의 '하울링'도 이 같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가 사람의 목줄을 물어뜯는다는 설정은 그럴 법 하기에 섬찟하다. 다만 주변에서 늑대개를 본 적이 없기에, 이들을 훈련시켜 살인무기로 쓴다는 설정이 가능한 지 모르겠다. 과학적 진실과 개연성을 떠나 일본 원작 소설을 토대로 한 소재의 참신함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늑대개라는 설정은 여러가지를 상징한다. 오랜 세월 인간과 가까이지낸 가축인 개와..

영화 2012.02.18

푸른 소금

이현승 감독의 '푸른 소금'은 간이 덜 밴 소금구이같은 영화다. '첩혈쌍웅' 같은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정서와 세련된 뮤직비디오를 닮은 영상이 어우러졌는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느와르 액션이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하고, 오히려 로맨스물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저격용 소총을 휘두르는 여자 암살자와 알고도 모른체 하는 조폭 두목의 연정이라는 설정 자체부터 부자연스럽다. 그 속에 한 없이 강한 척 하는 여전사와 마냥 쿨한 아저씨의 이미지는 오히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영화의 성격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이야기 또한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어차피 영화라는게 허구이긴 하지만 손쉽게 오가는 총기 거래나 서부극처럼 총질이 난무하는 장면들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쳤다. 또 실종된 여주인공의 친구를..

영화 2011.09.10

의형제 (블루레이)

1970년대 국민학교 시절, 매년 빼놓지 않고 치르는 행사가 있었다. 6.25 즈음이면 숙제처럼 다가오던 반공글짓기 대회와 반공포스터 그리기 대회였다. 그렇게 교육받아서 그렇겠지만, 아이들이 그린 포스터속 북한군, 아니 괴뢰군은 하나 같이 뿔난 도깨비 아니면 털이 흉하게 뻗친 늑대였다. 오죽했으면 '똘이장군' 같은 만화영화가 나왔을까.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이제는 더 이상 북한군을 괴뢰군이라 부르지도 않고, 뿔난 도깨비로 그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현실을 알 만큼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력이 신장돼 북한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도 있고, 더 이상 위정자들이 반공 논리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릴 수 없는 세상이 된 까닭도 있다. 장훈 감독의 '의형제'(2010년)는 그렇게 달라진 남과 북의 현실에서 출발한 ..

박쥐 (블루레이)

박찬욱 감독은 워낙 이색적인 소재를 좋아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평이한 이야기보다는 좀 더 자극적이고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판타지를 추구한다. '박쥐'(2010년)는 그런 그의 특성이 잘 묻어난 작품이다. 흡혈귀가 돼버린 성직자가 밤마다 피를 찾아 헤메는 것도 아이러니하지만 그 속에서 신의 용서를 갈구한다는 것도 특이하다. 하지만 감독의 특성에 부합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은 흡혈귀라는 이질적인 소재 만큼이나 거리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나마 복수 3부작은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정말 박 감독이 머리 속에서 그려낸 판타지 세계에 빠져들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작품이다. 피를 갈구하는 성직자, 성적 욕망에 몸부림치는 유부녀, 한옥에서 즐기는 마작 등 이 ..

의형제

국내 증시에만 통용되는 변수가 있다. 바로 코리아 리스크다. 분단 국가라는 지정학적 변수 때문에 항상 북한 관련 안보 뉴스가 터지면 국내 증시는 크게 출렁인다. 그만큼 분단은 한반도를 옭죄는 족쇄다. 그랬기에 오랜 세월 남과 북은 서로를 원수 보듯 대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을 제외하고 군은 북한을 주적으로 표현한다. 한동안 영화도 '쉬리'처럼 이 같은 대치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더니 언제부턴가 '공동경비구역 JSA' '간첩 리철진' '웰컴 투 동막골'처럼 적대적 상황을 흔드는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비록 한 핏줄이라는 민족적 동질감을 부각시키다보니 지나치게 인간적 감성에 치우쳐 낭만적 경향이 강조되는 한계는 있지만, 우리 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정서가 있기에 호소력만큼은 짙다. 그럴 때 ..

영화 2010.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