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알란 파커 6

안젤라스 애쉬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중반, 토굴에 살던 아이들이 있었다. 머나먼 산골 이야기가 아니라 서울, 그것도 강동으로 분류되는 곳 얘기다. 믿기 힘든 얘기일 수 있지만 지금의 서울중앙병원 자리에 높다란 언덕이 있었고, 그 경사면에 굴을 파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다. 어두침침한 입구를 구부리고 내려 가면 흙바닥에 무언가 깔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같은 반 친구를 따라 가봤던 그들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충격이었다. 하도 강렬해 몇 십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습이 또렷이 기억나고, 아직도 코 끝에선 진한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코흘리개 시절이라 집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에 당시로서는 왜 그렇게 사는 지 의아했다. 그러니 맨날 웃통을 벗고 거의 반벌거숭이에 맨발로 다니던 아이의 모습이 생경할 ..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러시아 영화인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Zamri Umri Voskresni, 1990년)는 루저들의 승전가다. 카네프스키 감독은 1960년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 입학했으나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1966년 강간죄를 뒤집어 쓰고 무려 8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1974년 감옥에서 풀려나 41세인 77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두어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으나 사상성을 의심받으며 쓰레기로 낙인찍혀 사실상 영화를 찍을 길이 막혀 버렸다. 결국 영화촬영현장의 잡부 등으로 일하던그가 우연히 렌필름 제작자의 눈에 띄어 장편 데뷔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필름은 렌필름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흑백필름을 사용했고, 촬영은 당시 무능한 퇴물로 간주됐던 블라디미르 브릴랴코프가 맡았다. 배우들..

핑크 플로이드의 벽

1980년대 초반, LP를 한창 듣던 고교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듣고 홀딱 반한 음반이 있었다. 바로 핑크 플로이드의 'The Wall'이었다. 당시 이 음반은 국내에서 정식으로 구할 수 없었다. 저항적인 가사 내용 때문에 금지음반이어서 세운상가나 황학동 도깨비시장에서 백판을 사서 들어야 했다. 음질도 좋지 않고 더러 튀기도 해서 다음 곡으로 넘어가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던 백판이었지만 아주 열심히 들었다. 그만큼 핑크 플로이드의 곡은 너무나도 대단했다. 이 음반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 바로 알란 파커 감독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Pink Floyd: The Wall, 1982년)이다. 영화도 음반과 다르지 않았다. 영화는 개성을 말살하는 획일화된 교육과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권위적인 정부에 저..

작은 사랑의 멜로디

1960, 70년대 영화들은 국내 개봉 제목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직역하거나 영어 제목을 우리 말로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예전에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내일을 향해 쏴라' '석양의 무법자' 등 분위기에 맞는 의역이 돋보였다. '작은 사랑의 멜로디'(Melody, 1971년)도 마찬가지다. 여주인공 이름을 딴 원제와 달리 국내 개봉 제목은 영화의 분위기가 함축적으로 잘 살아있다. 당시 대부분 27세의 젊은이들이 만든 이 영화는 흔히 영국판 '소나기'에 묘사된다. 열 살짜리 소년 소녀들이 사랑에 눈을 떠 결혼하는 내용 때문이다. 그러나 황순원의 소설과 달리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하게 진행된다. 두 아이의 사랑은 풋풋하며 순수하고 그들이 벌이는 소동은 때론 사뭇 즐겁기까지 하다. 특히..

페임 (블루레이)

'Remember My Name'(내 이름을 기억해) 아이린 카라가 부른 'Fame'의 한 구절이다. 스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절실한 말은 없을 것이다. 알란 파커 감독이 1980년에 만든 영화 '페임'(Fame)은 스타가 되기 위해 예술고를 다니는 청소년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이 8명이다보니 이야기가 산만할 수 있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성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는 학생들을 통해 스타란 저절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무려 30년 전 작품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꿈을 향한 사람들의 열정은 변함이 없기에, 그들의 노력에 공감이 간다. 이 작품 덕분에 아이린 카라는 이름을 알렸고, 그가 부른 동명 주제가도 유명해졌다. 특히 8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