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양조위 14

중경삼림 (블루레이)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년)은 참으로 독특한 영화다. 두 편의 에피소드로 나뉜 이야기는 연결되지 않는 듯하면서도 스쳐지나가는 인물들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노점 카페를 통해 교묘하게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서로 남남이지만 사회라는 틀 안에서 보이지 않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 같다. 전작인 '아비정전'의 흥행 실패 이후 데뷔작인 '열혈남아' 스타일로 회귀한 이 작품은 '열혈남아'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홍콩 반환을 목전에 둔 불안한 홍콩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하듯 청춘 군상들의 흔들리는 사랑을 '열혈남아'에서 보여준 스텝 프린팅과 핸드헬드, 형광등 조명, 뮤직비디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딱 떨어지는 음악과 영상의 조합으로 풀어낸..

일대종사 (블루레이)

원래 쿵후(功夫)는 무엇이든 열심히 배워서 숙달하는 것을 말한다. 쿵후의 시조는 16세기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인도에서 온 선승 달마대사가 꼽힌다. 멸청복명의 쿵후 중국 소림사에 당도한 달마대사는 성격이 완고해 승려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근처 동굴에서 9년을 혼자 살았다. 70세 노인이 돼 소림사에 돌아온 달마대사는 승려들이 수양 중에 조는 모습을 보고, 수양만 하다가 체력이 부실해진 승려들을 위해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동작을 고안했다. 그것이 바로 쿵후의 시작이다. 물론 쿵후는 출발이 그렇듯, 싸움 동작도 포함돼 있지만 무술이라기보다는 생명력의 근원인 기를 기르는데 목적이 있다. 주먹으로 말아쥔 오른손을 쫙 편 왼손 바닥에 붙이는 쿵후식 인사법은 원래 해와 달을 상징한다. 바로 한자의 명(明)..

화양연화 (블루레이)

왕가위 감독의 걸작 '화양연화'(2000년)는 엇갈린 인연과 사랑에 대한 영화다. 양조위와 장만옥이 연기한 남과 여는 묘하게도 얽힌 인연 때문에 바람을 피는 불륜의 관계이지만, 그들은 끝까지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고집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더 이상의 진전을 원치 않고 서로의 사랑을 가슴에 묻는다. 과연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시간이 흘러 서로가 돌아보았을 때 그들의 가슴에 남는 것은 안타까운 그리움과 회한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지나간 사랑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때를 의미하는 화양연화(花樣年華)로 기억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시간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러 낯선 남녀가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으로 발전했다가 남남이 된 후 서로가 그리워 하는 감정의 변화를 농..

홍콩 - 소호

홍콩섬을 가보면 왜 홍콩이 국제도시로 각광을 받는 지 알 수 있다. 온갖 금융기관의 아시아태평양 헤드쿼터가 즐비하고, 여기 맞춰 고층건물과 으리으리한 쇼핑몰, 온갖 맛있는 레스토랑이 빼곡하다. 구룡이 서울의 강북이라면 홍콩섬은 서울의 강남 같은 곳. 그 경계를 바다가 가르고 있다. 구룡의 스타페리 선착장에서 10~15분 간격으로 밤 12시까지 운행하는 페리를 타면 8분 가량 걸려 홍콩섬에 도착한다. 날씨가 궂거나 배를 타기 싫다면 구룡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만 가면 홍콩역이다. 홍콩섬은 쑤하우, 즉 소호로 알려진 센트럴과 셩완, 완차이, 코즈웨이 베이 등 크게 네 구역으로 나뉜다. 주로 관광객이 붐비는 곳은 센트럴이다. 높이 400m가 넘는 홍콩 국제금융센터(IFC)를 비롯해 홍콩 최대 쇼핑몰인 I..

여행 2012.02.11

무간도3 - 종극무간 (블루레이 박스세트)

절제. 영화도 절제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된 홍콩 영화 '무간도'는 2편에서 끝내는게 좋았다. 3편인 '무간도3 - 종극무간'(Internal Affaris, 2003년)은 억지로 시리즈를 끌어가기 위해 만든 것처럼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 1, 2편이 정교한 플롯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면 3편은 느닷없이 환상과 정신착란, 심리적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이 2시간을 채운다. 여기에 큰 흐름과 상관없는 곁가지 같은 연애담까지 곁들여 제대로 오점을 찍었다. 유덕화, 양조위, 여명, 진도명, 진혜림 등 3부작 가운데 가장 많은 스타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다. 3편은 1편의 엔딩 이후 벌어지는 경찰의 뒷조사로, 인물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캐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늘어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