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엄지원 9

그림자 살인

탐정물의 재미는 수수께끼 풀이와 일맥 상통한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뇌 플레이는 곧 제작진과 관객의 싸움이다. 한국의 탐정물을 표방한 박대민 감독의 '그림자 살인'은 그런 점에서 절반의 성공이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연쇄살인의 비밀을 푸는 탐정(황정민)과 그 일행(류덕환, 엄지원)의 활약을 다룬 스토리는 치밀했지만 관객과의 게임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선이 적절하게 스며들어간 이야기는 나름대로 탄탄해서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종반으로 치달을 수록 사건의 해결 과정이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한다. 이유는 한가지, 추리극의 기본 원칙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추리극은 초반에 제시된 인물들 속에서 범인이 등장하는 것을 불문율로 하고 있다. 결코 독자..

영화 2009.04.11

야수 (감독판)

'야수'(2005년)의 감독판 DVD는 극장 개봉시 삭제된 20여분 가량이 추가됐다. 덕분에 이야기가 한결 윤택해지고 장면 전환이 매끄럽다. 극장판의 경우, 장면 전개가 지나치게 건너뛰는 부분이 많아서 비약이 심하다보니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감정과잉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감독판은 충분한 설명 덕분에 등장인물들의 행동을 둘러싼 전후맥락이 분명하게 이해된다. 신인감독 김성수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권력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같은 두 남자의 처절한 인생사를 다루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거머쥔 악당에 맞서는 형사와 검사의 처절한 싸움은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그다지 끌리는 작품은 아니다. 이야기의 흡입력도 떨어지고 메시지 부각을 위해 홍콩 느와르처럼 내용을 과장하다보니 ..

극장전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매사에 시큰둥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나온다.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오 수정' 등 그의 작품들을 보면 배우들은 느닷없이 화를 내고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 이를 보는 관객들은 당황스럽다. 배우들의 엉뚱한 모습이 마치 관객에게 도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홍 감독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를 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를 영화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의 6번째 작품 '극장전'(2005년)도 마찬가지다. 엉뚱한 인물들의 대화와 상황이 빚어내는 당혹감은 전작들과 마찬가지지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만큼 유머러스하지 않다. 더 이상 놀랍거나 신기..

주홍글씨

욕망은 초콜릿 같다. 핥을수록 달지만 달콤함 뒤에 식욕을 떨어뜨리고 나른한 나락으로 끌어들이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변혁 감독은 '주홍글씨'(2004년)에서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나른한 욕망을 그렸다. 이브가 유혹의 사과를 아담에게 건네는 대목인 성경의 창세기 3장 6절로 시작한 영화는 식욕이나 물욕, 명예욕도 아닌 색욕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도,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사건도 모두 헤어날 수 없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혹의 초콜릿을 핥은 인물은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 그는 아내 수현(엄지원)과 애인 가희(이은주)를 오가며 욕망의 달콤함을 한껏 즐긴다. 그런 그에게 과제처럼 주어진 살인 사건은 욕망이 파국으로 치닫는 굴레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점에서 살인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경희(성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