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전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매사에 시큰둥하고 불만이 가득한 사람들이 나온다.
'생활의 발견'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오 수정' 등 그의 작품들을 보면 배우들은 느닷없이 화를 내고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건다.

이를 보는 관객들은 당황스럽다.
배우들의 엉뚱한 모습이 마치 관객에게 도전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홍 감독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를 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를 영화의 재미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의 6번째 작품 '극장전'(2005년)도 마찬가지다.
엉뚱한 인물들의 대화와 상황이 빚어내는 당혹감은 전작들과 마찬가지지만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만큼 유머러스하지 않다.

더 이상 놀랍거나 신기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도 그의 당황스러운 작품 스타일에 익숙해진 모양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영상이 불안하다.

영상이 지글거리고 끊임없이 떨린다.
물론 잡티와 스크래치도 자주 보인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김상경이 헤드폰을 쓰는 장면 등 일부에서만 서라운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극장전'이라는 제목은 극장에 대한 이야기와 극장 앞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이중 의미를 담고 있다. 전반부는 극장에 대한 이야기, 즉 영화 속 영화를 다루고 있다.

홍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전작들과 달리 줌인을 남발하고 처음으로 배우들의 목소리로 해설을 집어넣었다. 서울 인사동 맥도널드 본사 앞 거리 풍경이 낯익다.

우연히 첫사랑 영실(엄지원)을 만난 상원(이기우)의 이야기를 다룬 전반부.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투 샷으로 잡은 장면은 홍 감독 영화에서 익숙한 풍경이다.

낯선 상황이 빚어내는 엉뚱함은 뜻하지 않은 웃음을 자아낸다. 자실 기도 후 살아나 집에 돌아온 상원이 엄마에게 야단을 맞는 풍경. 더없이 무거운 분위기지만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한 손에 링거병을 든 채 야단맞는 모습은 웃지 않을 수 없다.

후반부는 감독 지망생 김동수(김상경)가 전반부 영화 속 주인공을 연기한 엄지원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홍 감독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이어 또다시 감독 지망생을 등장시켰다.

김동수 또한 홍 감독의 다른 작품 주인공들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이 장면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의 상황과 비슷하다.

이 장면의 섬세한 연기 표현이 정말 좋다. 느닷없이 대시하는 김상경을 꺼리는 엄지원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몸이 조금씩 뒤로 젖혀진다. 이에 반해 적극적인 김상경은 말을 할 때마다 몸이 앞으로 기운다. 참으로 자연스러운 연기다.

대화 도중 김상경은 느닷없이 소주잔을 물어뜯어 깨뜨린다. "어이구, 참 내..."라는 엄지원의 대사만큼이나 황당하다.

김상경과 엄지원의 정사 장면. 감독은 왜 엄지원에게 까만 스타킹을 신겼을까. 여배우라는 존재의 신비감을 부각하기 위해서인가. 그래서 그런지 엄지원은 "여배우도 똑같은 여자"라는 대사를 한다.

이 장면도 은근히 웃기다. 김상경은 약속이 있다며 떠나려는 엄지원을 붙잡아 앉힌다. "저, 볼일 보고 다시 오시면 안 돼요?" "... 있다가 봐서요." "저, 그러면 물건을 하나 맡겨 놓고 가시면 안 될까요?" "네?"

전작들처럼 이 작품 역시 길 위의 남자로 종지부를 찍는다. 길을 걸으며 김상경이 중얼거리는 대사도 미스터리다. "난 죽지 않기 위해 생각을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