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의 청평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회전문이 있다.
돌아가는 문이 아니라 큰 흐름이 바뀌는 터닝포인트 같은 문이란 뜻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끝나고 해탈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문이다.
더불어 여기 얽힌 전설도 있다.
당 태종의 딸 평양공주를 사랑했던 청년이 있었으나 평민 주제에 공주를 넘본 죄로 처형당했다.
청년은 죽어 상사뱀이 돼 공주의 몸을 휘감았다.
별의별 방법을 써도 뱀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신라에서 온 중이 청평사에 가서 불공을 드리라고 일러줬다.
공주가 청평사에 들어가 불공을 드리는 동안 떨어졌던 뱀은 공주가 나오지 않자 회전문으로 들어섰고, 그 순간 벼락이 쳐서 죽고 말았다.
공주는 죽은 뱀을 불쌍히 여겨 묻어줬다.
그러나 어찌 보면 뱀에게는 죽음이 곧 질긴 집착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해탈일 수 있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2002년)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청평사 회전문의 전설을 한참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들이 굳이 긴 시간을 들여 회전문 전설을 이야기 한 것은 이 부분이 영화의 모티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경수(김상경)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선영(추상미)이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좋아한다.
그런데 마치 뱀이 전생에 공주를 사랑한 청년이었던 것처럼, 경수는 중학생 때도 선영을 쫓아다닌 적이 있는데 이를 기억하지 못했다.
선영도 잠자리를 같이 할 만큼 경수를 좋아하지만 남편을 버리지는 못한다.
그 순간, 선영의 집 대문은 경수에게 청평사 회전문이다.
비를 맞으며 말없이 돌아서는 경수는 뱀이 아집의 굴레에서 벗어나 해탈하듯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서로가 서로의 자리를 다시 보는 순간, 각자의 생활을 발견하는 것이다.
경수와 선영의 관계는 명숙(예지원)에게도 오버랩된다.
다만 처지가 바뀌어, 명숙은 경수를 좋아하지만 경수가 선배(김학선)와 불편한 관계에 놓이는 것이 싫어 피할 뿐이다.
홍 감독은 엉뚱하게도 전설을 현대에 대입해 복잡 다단한 사람들의 만남과 사랑을 시침 뚝 떼고 담담하게 담아냈다.
그 엉뚱함과 일상적인 평범함이 웃음을 자아내는 점이 이 영화의 묘미다.
그러면서도 영리하게도 결코 종교적 메시지나 노골적인 코미디를 표방하지 않는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생활 속에 숨어 있는 엉뚱함의 발견, 그것이 이 영화를 통해 홍 감독이 말하고자 한 생활의 발견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홍등가 밤 장면 등은 모아레 현상이 보이고 디테일이 떨어지지만, 낮 장면은 윤곽선이 또렷하고 색감도 명료하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에서 바람소리가 들리는 등 간간히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김상경과 예지원, 추상미의 음성해설이 따로 따로 들어 있고 메이킹 필름도 포함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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