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일본 55

늑대아이 (블루레이)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은 선이 곱다. 전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 '섬머워즈' 등을 보면 순정 만화를 보는 것처럼 인물들의 얼굴선이나 윤곽을 끊어질 듯 이어지는 가는 선으로 살렸다. 마치 낭창낭창한 여인의 허리를 보는 느낌. 이처럼 고운 선의 캐릭터가 실사에 가까운 서정적인 배경 속에 녹아 들어 감성을 자극한다. '늑대아이'(2012년)도 마찬가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나고 자란 일본 도야마현의 아름다운 산골을 배경으로 가는 선의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언제나 그렇듯 이번 작품도 이야기는 범상치 않다. 대학 강의실에서 우연히 만난 늑대인간 청년에게 끌려 아이를 갖은 여성이 혼자 힘으로 늑대의 피를 물려 받은 두 아이를 키우는 내용이다. 반인반수이다 보니 인간의 본성과 짐승의 습성을 함께..

카게무샤 (블루레이)

사무라이들이 판을 치던 일본 전국시대에는 영주의 신변을 보호하고자 그를 대신할 가짜 영주를 내세웠다. 그가 바로 그림자 무사, 즉 카게무샤(影武者)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1980년에 만든 '카게무샤'(Kagemusha)는 다케다 신겐의 그림자 무사 이야기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전국 통일을 놓고 다투던 3인중 하나인 신겐은 천하무적의 기마대를 거느린 가장 강력한 영주였으나 일찍 전사하는 바람에 통일의 꿈을 놓쳤다. 아키라 감독은 조지 루카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투자를 받아 신겐의 죽음을 영화로 제작, 제3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화려한 의상과 스펙타클한 전쟁 장면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무엇보다 아키라 감독의 영화 문법이 전편에 걸쳐 고스란히 투영돼..

어느 멋진 일요일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초창기 작품 '멋진 일요일'(1947년)은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은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다. 어느 가난한 연인의 일요일 한때 데이트를 다룬 이 작품을 보면 두 사람의 로맨스보다 뒷배경에 눈이 간다. 무너진 건물 투성이인 폐허, 꼬질꼬질한 거지소년, 다 쓰러져가는 판자촌과 암표상 등 요즘 도쿄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의 풍경이다. 실제로 제 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비참했다. 한도 가즈토시가 쓴 책 를 보면 당시 모습이 생생히 기록돼 있는데, 도쿄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전쟁 때 폭격으로 생산시설이 모두 파괴되는 바람에 미 군정은 식량통제법을 만들어 1949년까지 배급을 실시했다. 그러나 1인당 하루 300g의 배급량은 턱없이 부족해 당시 ..

동경이야기

참으로 가슴이 먹먹한 영화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1953년)는 노부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이야기로 큰 울림을 준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위대한 감독일 뿐 아니라 위대한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을 보면 그 말에 절로 공감이 간다. 10년 마다 세계 명작 순위를 메겨 유명한 영국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 사운드'는 올해 발표한 리스트에서 1위 히치콕의 '현기증' , 2위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 이어 3위로 '동경이야기'를 꼽았다. 이처럼 앞다퉈 이 작품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 놓는 까닭은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킨 노부부가 자식들을 찾아가면..

아들을 동반한 검객 2

미스미 겐지 감독의 시리즈물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 국내에는 '아들을 동반한 검객2'(1972년)로 소개됐다. 겐지 감독은 1편이 성공하자 그 해에 4편까지 몰아치는 폭풍같은 연출력으로 시리즈의 인기를 이어갔다. 2편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유모차에 아들을 태워 데리고 다니는 방랑 검객이 의뢰를 받아 적들을 해치우는 내용.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군대 수준의 떼거리로 덤비는 적들을 혼자서 상대한다. 이번 작품은 좀 더 노골적으로 서부극 흉내를 더 많이 냈다. 특히 1966년에 등장한 프랑코 네로를 유명하게 만든 서부극 '쟝고'를 많이 닮았다. 아예 악당이 쌍권총을 들고 등장하고 주인공도 한 순간 총을 사용한다. 특히 압권은 유모차에서 등장하는 개틀링건 수준의 기관총이다. 마치 쟝고가 관 속에서 기관총을 꺼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