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일본 55

바닷마을 다이어리(블루레이)

어느날 바람이 나서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서먹한 아버지의 장례식에 갔다가 뜻하지 않게 이복 여동생을 만난다. 도저히 이복 동생만 홀로 놔두고 오기 힘든 환경에서 같이 살지 않겠냐는 말을 해본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인데 선뜻 그러겠다는 대답을 한다. 그때부터 배 다른 네자매의 한 살림이 시작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海街diary, 2015년)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룬 영화다.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난 네 자매가 한 식구가 돼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담담하면서도 조용하게 짚어 나갔다. 부모가 모두 집을 나가서 배 다른 자매끼리 살아가는 과정은 언뜻보면 막장 드라마의 소재 같지만 결코 자극적이나 선정적으로 흐르지 않은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블루레이)

나가이 다츠유키 감독의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心が叫びたがってるんだ, 2015년)는 말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을 다룬 아픔과 치유의 애니메이션이다. 주인공인 나루세 준은 어린 시절 무심코 목격한 일을 이야기했다가 부모가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면서 "네가 한 말 때문에 이렇게 돼 버렸다"며 어린 딸을 책망한다. 결국 나루세 준은 그 일이 상처가 돼서 이후 입을 다물어 버린다. 오히려 말을 하면 배가 아픈 심인성 질환을 앓게 된다. 그런 그에게 담임 선생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뮤지컬을 만드는 일을 맡긴다. 언뜻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학교 친구들과 함께 하며 나루세 준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나가이 다츠유키 감독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말 때문에 상처받는 일을 섬세하..

공각기동대 S.A.C (블루레이)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를 토대로 한 저패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독특했던 것은 고스트라는 존재다. 2020년대 미래의 인류는 뇌와 육신을 로봇처럼 인공물로 대체한다. 전자두뇌라는 뜻의 전뇌는 디지털 정보를 송신할 수 있게 개량되고, 의체라고 불리는 육신은 로봇 부품처럼 갈아끼울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전뇌와 의체 뿐이라면 로봇과 차이가 없겠지만, 제작진은 여기에 고스트라는 존재를 불어 넣었다. 고스트는 말 그대로 인간의 혼이다. 몸과 두뇌가 기계화 됐어도 정신과 감성, 즉 고유한 사람의 마음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희노애락을 느끼며 인공 물질로 대체된 두뇌와 몸을 지배한다. 공각기동대는 이처럼 특수한 존재들이 살아가는 미래의 일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수사하는 공안 9과의 활약을 배경으..

바람이 분다 (블루레이)

1941년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일본이 자랑할 만한 전력은 해군이었다. 아카기, 히류, 즈이가쿠, 카가 등 6척의 항공모함과 여기 탑재된 제로센 전투기는 태평양 전쟁의 서막인 진주만 기습의 주역이었고 세계 해전의 향배를 거함 거포주의에서 항공결전 시대로 바꿔 놓는데 일조했다. 당시 일본군들이 레이센, 즉 영전(零戰)이라고 부른 제로센 함상전투기는 가벼운 기체 덕분에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시속 533km의 속도를 자랑했다. 그만큼 빠르고 기동성이 좋아서 개전 초기 공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로센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4척의 항모와 함께 경험많고 우수한 조종사들이 대거 수장되며 더 이상 개전 초기의 우위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당대 세계 최정상급 전투기였다. 이를 만든 사람이 미쓰비시 중공업의 ..

메종 드 히미코 (블루레이)

이누도 잇신 감독은 불편한 소재에서 재미를 끌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이어 '메종 드 히미코'(2005년)에서는 게이들을 다뤘다. 그것도 한창 팔팔한 나이가 아닌 이제는 황혼에 접어든 노년의 게이들이 모여 사는 게이 양로원이라는 아주 독특한 소재다. 과연 게이들이 나이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그나마 가족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면 다른 집들처럼 편안한 노년을 맞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말년이 더더욱 쓸쓸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동성을 사랑하는 게이를 향한 시선이 누구나 똑같을 수는 없는 법. 그러니 예전의 화려함이 사라진 게이의 노년은 다른 노인들보다 유독 쓸쓸하며 조심스럽다. 여기에 이누도 잇신 감독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