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정진영 12

국제시장

입소문이란 무서운 게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은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좋든 나쁘든 입소문이 돌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11번째 우리 영화가 됐다니 도대체 어떤 영화인 지 궁금했다. 아버지 세대의 추억을 그린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 세대 입장에서도 영화의 상당 부분은 공유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많았다. 저녁 6시면 울려 퍼지는 애국가 소리에 길가던 사람이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못밖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던 기억이나 온 식구가 눈물 콧물 쏟으며 TV 앞에 못박혀 이산가족 찾기 중계를 봤던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끔 말썽을 부릴 때면 부모님이나 할머니는 우리를 불러앉혀 놓고 6.25 때 1.4 후퇴 이야기를 들려주고, 피난 시절 배 곯았던 이야기와 죽을 뻔 했던..

영화 2015.01.15

7번방의 선물

여러가지 말이 되지 않는 소소한 것들은 영화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설정 자체가 황당한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이환경 감독의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그런 영화다. 억울하게 사형수 누명을 뒤집어 쓴 아빠를 위해 홀로 남겨진 아이를 감방에 데려와 함께 살면서 눈물 콧물을 빼는 드라마다. 아이를 물건 차입하듯 감옥에 데려와 함께 산다는 설정 자체가 황당하다. 영화니 그럴 수 있다고 치면, 이야기 자체가 판타지가 돼버린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상상으로 받아들이면 '반지의 제왕'이나 '엑스맨'과 다를 게 없다. 그만큼 영화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에 TV 막장드라마처럼 이야기 구조 자체가 취약하고 작위적이다. 살인범 누명을 쓰는 상황은 그렇다 쳐도 주인공의 상태를..

영화 2013.03.02

님은 먼 곳에 (DVD)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월남전부터 문세광 사건, 박정희 대통령 서거까지 일련의 사태들이 10년의 역사 속에 소용돌이 치듯 지나갔다. 특히 월남전은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이상문의 '황색인' 등 월남전 소재 소설들을 통해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만큼 월남전은 70년대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정서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 익숙한 노래까지 한 자락 곁들인다면 옛날 앨범을 다시 들추는 것처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 한 켠이 저려온다.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2007년)가 바로 그런 영화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신중현이 만들고 김추자가 부른 같은 제목 노래의 서러운 가락이 들려오는 것 같다. 가부장적 질서가 나라 전체를..

님은 먼 곳에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는 대중적인 오락 영화를 좋아한다면 쉽게 볼 만한 작품은 아니다. 줄거리를 강조하는 하이틴 소설같은 TV드라마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달리 흘러간 정서를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요즘 정서가 아닌 지나간 세월과 1960, 70년대 문화가 녹진 녹진하게 묻어 있는 옛 것이라는 점이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도대체 그런 가수가 있었던가 싶은 '쇼쇼쇼' 시절의 김추자의 히트곡 '님은 먼 곳에'를 제목으로 붙인 것부터 시작해서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팔려가다시피 참전한 월남전, 여기에 70년대 트로이카였던 정윤희를 닮은 수애까지 영화 속 모든 게 옛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는 월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찾아 떠나는 아내(수애)의 이야기다. 사랑하지도 않고 애틋한 정도 없는 여..

영화 2008.08.01

별빛속으로

황규덕 감독의 '별빛속으로'(2007년)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배어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다보면 197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의 정서가 물씬 풍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교련복. 젖소처럼 흰색 바탕에 검은 점이 얼룩덜룩 찍힌 교련복은 정작 학창시절에 그렇게 입기 싫었는데, 지나고 나서 영화로 보니 추억으로 다가온다. 고교시절 교복자율화가 진행되면서 교복을 안입게 됐는데, 교련복은 변함없이 입었다. 지금도 수업시간에 교련을 하는 지 모르겠지만, 1980년대에는 모형 총을 들고 제식훈련을 받았다. 교련 수업이 있는 날이면 가방이 미어터지게 교련복과 베레모, 각반을 싸들고 학교를 갔다. 어찌나 무겁던지, 입고가면 낳았을텐데 학교에서는 교련복을 입고 등하교를 못하게 했다. 대학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