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주진모 10

신세계 (블루레이)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2012년)는 깔끔한 영화다. 장르에 충실한 느와르 영화답게 군더더기 하나 없이 비정한 사나이들의 혈투를 피비린내 가득한 영상으로 묘사했다. 내용은 스파이를 통해 범죄 조직을 장악하려는 경찰과 이에 맞선 조직 폭력배들의 이야기다. 신분을 숨긴 채 잠입한 경찰 스파이라는 설정만 놓고 보면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홍콩 영화 '무간도' 시리즈를 비롯해 할리우드 영화들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소재가 계속 되풀이 되는 이유는 스파이물 특유의 긴장과 두뇌 플레이가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내부 스파이를 색출하려는 조폭들과 경찰들의 숨막히는 암투가 빚어내는 긴장감이 일품이다. 그만큼 '부당거래' '악마를 보았다' 등 화제작 작가 출신 답게 박..

도둑들 (블루레이)

'범죄의 재구성' '타짜' 등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특징이 있다. 숨 쉴 틈 없이 속도감있게 몰아치는 이야기 전개와 여기에 장단을 맞추는 대사, 그리고 여러 명의 배우들이 떼를 지어 출연하는 스타 캐스팅이다. '도둑들'(2012년)도 예외가 아니다. 홍콩 마카오 부산을 오가며 10명의 도둑들이 300억원대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내용이다. 전지현 김혜수 이정재 김윤석 등 최고의 스타들이 씹던 껌, 펩시, 예니콜 등 재기발랄한 별명과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퍼즐같은 대사를 속사포처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마치 김수현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불과 서너 작품 만에 이런 스타일을 만들었으니 최 감독은 좋게 보면 자기 주관이 분명한 것이고, 나쁘게 보면 벌써 자신의 틀에 얽매이는 것은 아닌 지 우려된다. 소위 방송..

거북이 달린다

전통적으로 형사물이라면 주먹까지 잘 쓰는 잘 생긴 형사가 사악하고 못되게 생긴 범인을 잡아 혼내주는게 정석이다. 그런데 이연우 감독의 '거북이 달린다'(2009년)는 그렇지 않다. 탈주범 송기태(정경호)는 잘생긴데다가 홍길동 뺨치게 잘 싸운다. 반면 그를 쫓는 형사 조필성(김윤석)은 싸움도 못하고 투박하게 생겨 먹었다. 아니, 형사도 잘 하는게 하나 있다. 돈 때문이기는 하지만 범인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다. 이미 일반 형사물과 달리 범인과 형사가 뒤바뀐 어긋난 설정에서부터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만든 이 작품은 느긋한 충청도식 유머와 투박한 액션으로 즐거움을 준다. 절로 웃음이 터지거나 감탄이 나올 만큼 액션을 훌륭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삐걱거리는 서민의 투박한 삶을 닮은..

님은 먼 곳에 (DVD)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월남전부터 문세광 사건, 박정희 대통령 서거까지 일련의 사태들이 10년의 역사 속에 소용돌이 치듯 지나갔다. 특히 월남전은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이상문의 '황색인' 등 월남전 소재 소설들을 통해 너무나도 익숙하다. 그만큼 월남전은 70년대를 보낸 사람들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정서의 한 부분이다. 여기에 익숙한 노래까지 한 자락 곁들인다면 옛날 앨범을 다시 들추는 것처럼 지나간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으로 가슴 한 켠이 저려온다.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 곳에'(2007년)가 바로 그런 영화다. 벌써 제목에서부터 신중현이 만들고 김추자가 부른 같은 제목 노래의 서러운 가락이 들려오는 것 같다. 가부장적 질서가 나라 전체를..

미녀는 괴로워 (SE)

김용화 감독은 맛있게 비빈 비빔밥처럼 영화를 맛깔나게 만들 줄 안다. 마냥 유쾌했던 데뷔작 '오, 브라더스'가 그랬고 두 번째 작품 '미녀는 괴로워'(2006년)도 마찬가지다. 스즈키 유미코의 원작 만화를 토대로 만든 이 작품은 못생긴 뚱녀가 성형수술을 통해 다시 태어나 화려한 스타가 됐지만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야기다. 예측 가능한 줄거리지만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며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다. 아울러 '마리아' '뷰티풀 걸' 등 주제가와 삽입곡을 직접 부른 김아중과 주진모 등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김아중은 이번 작품을 통해 신인답지 않은 당찬 연기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재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형은 유행"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