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찰리 채플린 14

황금광시대

1923년 어느 날, 찰리 채플린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를 함께 만든 배우 더글라스 페어뱅크스와 메리 픽포드 부부의 집에 놀러 갔다. 그곳에서 그는 사진을 입체로 보여주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장치를 들여다 봤다. 그때 본 사진이 1896년 알래스카와 캐나다 유콘 강 유역의 금광으로 유명한 클론다이크 사진이었다. 금을 찾아 얼어붙은 칠쿠트 고개를 넘는 사람들의 긴 행렬은 골드러시라는 말을 낳았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채플린은 번쩍 영감이 떠올랐다. 당시 '키드'를 능가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그는 그 사진을 보며 책에서 읽은 조지 도너의 일화를 떠올렸다. 1846년 89명의 사람을 이끌고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조지 도너는 미국 네바다주 타호 호수 근처의 눈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조..

키드

위대한 영화인 찰리 채플린이 작가인 구베르너 모리스와 논쟁이 붙은 적이 있다. 당시 채플린은 그의 명작 '더 키드'(The Kid, 1921년)를 눈물과 웃음이 섞인 드라마로 만들려고 했다. 그러자 모리스가 즉각 반기를 들었다. 모리스는 "형식은 순수해야 한다. 희극이면 희극, 드라마면 드라마 하나를 택해야지, 두 개를 섞는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며 "두 개를 섞으면 한 쪽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채플린은 형식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키드'를 "슬랩스틱과 감성이 섞인 드라마"로 만들었다.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작 '키드'는 그렇게 해서 웃으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화로 태어났다. 김영사에서 번역출간한 '찰리 채플린 나의 ..

장군

버스터 키튼은 찰리 채플린과 더불어 1920년대 무성 영화 시대를 이끈 위대한 영화인이다. 찰리 채플린이 콧수염과 중절모, 빙빙 돌리는 지팡이로 대표되는 가난뱅이 떠돌이 캐릭터를 구축했다면, 버스터 키튼은 마치 가면을 쓴 것 처럼 시종일관 무표정이 특징이다. 그래서 버스터 키튼의 별명은 great stone face, 즉 위대한 무표정이었다. 보드빌 배우였던 부모를 따라 다니며 3세때부터 무대에 섰던 그는 아버지가 객석을 향해 휙휙 집어던지면 나가 떨어졌다가도 아무 일 없는 것 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는 연기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곡예를 연마하며 힘과 기술을 익혀 자신의 영화를 찍을 때 스턴트 연기에 유용하게 써먹었다. 키튼 영화의 특징이라면 아크로배틱 같은 곡예와 더불어 웃음과 긴장..

인생은 아름다워 (블루레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 1997년)는 말이 필요없는 감동적인 걸작이다. 베니니가 각본을 쓰고 감독에 주연까지 한 이 작품은 코미디 속에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비극을 절묘하게 녹여냈다. 그러나 결코 그 과정이 과장되거나 경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아픔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짓는 웃음처럼 희극 뒤에 배어나는 페이소스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야기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 가장이 아들을 살리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노력을 담았다. 아버지는 철부지 아들에게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상품을 타기 위한 놀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소리지르는 독일군은 점수 따는 것을 방해하는 훼방꾼이며, 그들에게 들켜서 상품도 못탄 채 집에 가지 않으려면 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