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천호진 10

불꽃처럼 나비처럼

김용균 감독의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비운의 왕비 명성황후의 최후를 둘러싼 가상의 역사드라마다. 명성황후를 마음에 둔 무사가 최후까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내용이다. 원작이 야설록의 무협소설이다보니 영화는 무협 드라마에 가깝다. 만화가 이현세와 스토리 작가로 단짝을 이뤘던 야설록은 '남벌'로 대표되는 민족적 색채가 강한 작가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초 성향이 두드러진 지나친 국수주의로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일본의 극악무도한 행위 때문에 주인공이 람보처럼 설쳐도 지나친 국수주의나 마초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맨 히어로에 의존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결코 무협지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명성황후와 무사의 미묘하게 전개되는 감정선을 좀 더 꼼꼼하게..

비열한 거리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2006년)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뒤를 잇는 폭력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이 학생들 사이에 빚어지는 날 것 그대로의 우발적 폭력을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직업처럼 폭력을 일삼는 조폭들의 간교한 폭력을 그렸다. 직업적인 폭력이란 결국 돈이 달렸다는 소리. 유 감독은 한 푼의 돈을 위해 서로 속고 속이며 손바닥 뒤집듯 배신을 일삼는 조폭들의 간교함을 통해 폭력의 비열함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말죽거리 잔혹사'가 '친구'처럼 과거 학창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며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반면 '비열한 거리'는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너무 작위적이다. 무엇보다 조인성이 미스 캐스팅이었다.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조폭 역할로 안어울린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몰입도와 현..

데이지 (감독판)

곽재용 감독이 극본을 쓰고 '무간도'를 만든 유위강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데이지'(2006년)는 장편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다. 이야기는 엉성하지만 촬영감독 출신의 유위강이 잡아낸 감각적인 영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류의 연애소설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여인을 둘러싸고 살인청부업자와 국제경찰인 두 남자의 엇갈린 사랑이 비극으로 치닫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국적인 풍경이 가득 펼쳐지는 영상만큼은 감탄이 나올 만큼 깔끔하게 잘 찍었다. 특히 '화양연화'에서 가슴을 아리게했던 음악을 만든 우메바야시 시게루가 담당한 음악이 영상과 아주 잘 어울렸다. DVD는 20분 가량 추가된 감독판과 극장판을 모두 수록했다. 그런데 감독판이라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년)을 보면 요즘 한국영화를 참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쌍의 각기 다른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구성이 '러브 액츄얼리'와 흡사해 감점 요인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우리 현실에 맞는 사랑, 즉 사람들의 애환이 적절히 녹아든 생활 이야기로 '러브 액츄얼리'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형식상 많은 인물과 여러 이야기가 섞이다 보면 혼선을 빚을 법도 한데 연결고리에 신경을 써서 적절한 편집으로 이야기를 잘 정리했다. 영화를 보면 민 감독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시선이 따뜻한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전작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 역시 소외받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다. 현재의 삶이..

주먹이 운다

'주먹이 운다'(2005년)는 한 단계 더 발전한 류승완 감독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인생막장의 불우한 두 인생이 권투에 희망을 걸고 맞부딪치는 내용은 진부할 수도 있지만 실화가 주는 진중함과 극적인 대결이 볼 만하다. 특히 류 감독은 스포츠의 긴장감을 씨줄 날줄처럼 견고하게 엮어서 탄탄한 이야기로 만들었다. 여기에 최민식, 류승범 두 배우의 야수 같은 연기가 불꽃을 튀긴다. 다만 블리치 바이 패스와 개각도 촬영 등 너무 많이 쓰인 영상기교는 지나치게 멋을 부렸다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영화는 광학기술의 산물인 만큼 좋은 그림을 만들기 위해 사용한 영상기교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요란한 포장지 때문에 정작 알맹이를 못 보는 일이 생겨서는 곤란하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