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케이트 블란쳇 14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최고의 순간은 맨 앞에 오고 최악의 순간은 마지막에 온다"는 말을 남겼다. 살면서 언제나 뒤를 돌아보며 그때가 좋았다며 아쉬움과 후회를 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늘 걱정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렬하게 꼬집은 말이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이 늘 빈한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랄드도 마크 트웨인의 말을 듣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단편 소설을 썼다. 소설 속의 벤자민 버튼은 영화와 달리 어른만큼 커다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말을 한다. 덕분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명문대를 나와 순탄한 삶을 산다. 소설의 주인공은 실리적이다. 살면서 다른 애인도 만나고, 손자까지 본다. 그렇다보니 그의 삶에서 최고와 최악의 순간을 딱히..

영화 2009.02.21

골든 에이지

16세기에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버진 퀸'으로 불린다. 헨리 8세의 딸인 그는 25세 나이에 왕좌에 올라 45년간 영국을 통치하며 황금기를 이끌었지만 결혼 한 번 못해보고 외롭게 살아간 불운한 여인이었다. 파키스탄 출신의 세커 카푸르 감독의 '골든 에이지'(Elizabeth: Golden Age, 2007년)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전성기를 그린 서사극이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스페인은 천주교를 앞세워 신교를 믿던 영국 침공의 기회를 노린다.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이를 위해 무적함대를 만들어 영국을 공격하지만 필사의 항전을 펼친 영국 함대에게 대패하면서 위대한 대양의 시대를 영국에게 넘겨주고 만다. 원래 이 작품은 엘리자베스 1세의 왕위 즉위를 다룬 1998년작 '엘리자베스'의 ..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Coffee and Cigarettes, 2003년)는 진한 커피 향과 담배 냄새가 가득 배어있는 작품이다. 1986년부터 17년 동안 틈틈히 만든 11개의 단편을 묶어놓은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커피와 담배를 피우며 나누는 사람들의 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시종일관 영화는 좁은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올려놓고 담배를 마주 피우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로만 진행된다. 어떤 사건이나 변화없이 한정된 공간에서 대사에만 의존해 영화가 진행되다보니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특히 커피와 담배를 싫어한다면 이 영화와 함께 호흡하기 힘들다. 커피와 담배를 매개로 사람들의 일상을 심드렁하게 조명한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스타일과 닮았다. 다만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틀리다보니 ..

바벨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만든 '바벨'(Babel, 2006년)은 성경의 창세기의 바벨탑 전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작품이다. 모로코 아이들이 장난삼아 쏜 총 때문에 4군데의 각기 다른 지역의 가정이 흔들리는 과정을 다뤘다. 이 작품에서 바벨탑 역할을 한 것은 총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모로코에서 사냥을 하고 선물로 준 총 한자루는 네 군데 가정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바벨탑이 돼버렸다. 감독은 미국, 모로코, 일본, 멕시코를 오가는 현지 로케이션으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의 충돌이 가져오는 적나라한 모습을 설득력있게 담아냈다. 그러나 영화의 진정한 주제는 의사소통의 문제를 다룬 바벨리즘이 아니다. 이냐리투 감독의 말마따나 "네 가지의 서로 다른 부모와 자식의 이야기"를 통해 본원적인 가족애를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