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황정민 23

공작 (블루레이)

기사로 언론에 많이 소개된 박채서는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다. 3 사관학교를 나와 각종 훈련과 교육을 받고 소령 계급으로 국군정보사령부 공작단 본부에서 근무하던 그는 국가안전기획부의 지시로 이중 스파이 노릇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북한을 오가며 이중 스파이 활동을 한 것처럼 가장한 안기부의 공작원이었다. 당시 안기부가 그에게 부여한 암호명이 흑금성이었다. 사업가를 가장해 중국과 북한을 드나들던 박채서는 북에서 꽤나 신임을 얻어 김정일까지 만났다. 덕분에 그는 당시 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이 주도한 북풍을 막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북풍이란 지금의 자유한국당이 뿌리를 둔 신한국당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 북한에 무력 도발을 부탁하고 몰래 지원한 것으로, 북에서 일어난 바람이라는 뜻의 북풍 ..

와이키키 브라더스(블루레이)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년)는 보고 나면 가슴이 짠한 영화다.그토록 좋아했던 음악을 위해 노력하는 일행이 현실적인 삶의 장벽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는 과정을 다뤘다. 나이가 먹고 나서 다시 보니 예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이 영화를 처음 본 30대 때에는 비록 힘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젊은이들의 패기가 보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다시 보니 결코 패기와 용기만으로 넘기 힘든 생활의 어려움이 보인다.아마도 2001년이 IMF 이후이기는 하지만 취업이나 경쟁 상황 등 피부로 느끼는 삶의 여건이 지금보다 덜 각박했던 때문인가 보다. 비록 기술이나 물질은 지금이 그때보다 더 발전했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공평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소위 ..

아수라 (블루레이)

김성수 감독은 화끈한 액션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비트' '태양은 없다' '무사' 등 그의 영화들은 남자들의 호쾌한 싸움이 주를 이룬다. 그만큼 거친 폭력 묘사에 일가견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의 영화들에 잔혹한 세부 묘사가 등장하는 장면은 많지 않다. 다만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와 잔혹한 상상을 하게 만드는 앞뒤 정황 등이 그런 연상을 하게 만든다. '아수라'(2016년)도 그런 영화다.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옥도를 연상케 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권력자들이 얽혀서 처절하게 피 흘리며 지독하게 물고 뜯는 싸움을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들도 지독한 싸움꾼들이다. 각종 이권에 눈이 멀어 마약 밀매 범죄까지 서슴지 않는 부패한 시장과 그에게 돈을 받고 각종 불법을 저지르는..

군함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다찌마와 리' 등을 보며 류승완 감독은 영화를 참 재미있게 만드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다. 액션을 맛깔스럽게 조합할 줄 알며 여기에 적당한 유머를 버무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어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더러 B급 정서라고도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나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도 같은 소리를 듣는 만큼 취향의 문제일 뿐 결코 나쁜 소리는 아니다. 그만큼 류 감독이 만드는 영화들은 최근 '베테랑'도 그렇고 은근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지금 상영 중인 '군함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군함도'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저렇게 왜곡해도 되나 싶었고, 지나치게 표현하면 아픈 역사를 돈벌이의 소재로만 본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의 장기인 액션과 유머..

영화 2017.08.11

베테랑 (블루레이)

정의감에 불타는 외골수 형사가 못되먹은 재벌 2세를 혼내주는 내용의 류승완 감독 작품 '베테랑'(2015년)을 보면 대뜸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2010년 맷값 폭행으로 유명한 최철원 당시 SK M&M 대표 사건이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인 최 전 대표는 인수한 업체의 탱크로리 기사가 화물연대 노조 탈퇴를 하지 않고 버티자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구타하고 맷값이라며 2,000만원을 준 뒤 폭행죄로 구속됐다. 이후 최 전 대표는 집행유예로 풀려 났다. 공교롭게 영화 속 회사는 이니셜도 SK와 비슷하고 이동통신 계열사를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애써 얘기하지 않아도 대번 최 전 대표 사건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비단 최 전 대표 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곳곳에 재벌가에 얽힌 '그랬다더라' 식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