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아나스타샤 (블루레이)

울프팩 2014. 2. 8. 23:37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로마노프 일가의 죽음은 20세기 비극 중 하나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는 1917년 볼세비키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부인인 황후 알렉산드라와 알렉세이, 올가, 마리아, 타티아나, 아나스타샤 등 5명의 자녀와 함께 시베리아의 예카테린부르그에 갇혀 있다가 1918년 처형됐다.

혁명군은 황제 일가를 총살한 뒤 시체를 불에 태웠다.
이후 1991년 예카테린부르그에서 유해가 발굴될 때까지 어디에서도 황제 일가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죽음 자체를 둘러싼 숱한 소문들이 무성했다.

아나스타샤 미스테리, 황녀는 살아 남았나

그 중의 압권이 바로 아나스타샤의 생존을 둘러싼 미스테리다.
1920년 2월, 베를린 란트베어 운하에서 10대 소녀가 자살을 시도하다 구조된다.

그의 이름은 안나 차이코프스키로 알려진 안나 앤더슨.
그는 자신이 니콜라이 황제의 막내딸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했다.

혁명군의 총에 맞아 쓰러졌으나 시체를 태우기 위해 옮기던 혁명군 병사 중 차이코프스키 형제가 살아 있는 그를 발견하고 빼돌렸다는 것.
형제는 그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로 데려가 숨어 살았고, 형이 그와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하지만 볼세비키에게 발견돼 형이 살해됐고,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베를린으로 달아났으나 갑자기 종적을 감췄다고 주장했다.
실의에 빠진 안나는 자살을 결심하고 몸을 던졌다는 설명이다.

과연 그는 아나스타샤가 맞을까.
이때부터 진위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안나는 황제 일가만 아는 내용들을 일부 기억하고 있었던 반면 러시아어도 잘 못했고, 여러가지 황실 법도도 제대로 몰랐다.
황제 일가나 황제를 모셨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사람들 사이에 왜 이리 거세게 찬반 논란이 일었을까.
이유는 니콜라이 황제가 혁명 전 국외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진 엄청난 재산 때문이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어마어마한 거액인 8억달러의 현금이 해외 은행으로 송금됐고, 독일에는 막대한 부동산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법정에서는 안나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안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1984년 죽을 때까지 황녀라는 주장을 했다.
그의 이야기는 1956년 율 브린너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출연한 '추상'이라는 영화로 제작됐고, 20세기폭스사는 '아나스타샤'(Anastasia, 1997년)라는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과연 안나는 황녀 아나스타샤가 맞을까.
2007년, 안나와 로마노프 일가의 DNA를 분석한 결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후 아나스타샤가 아니라고 판명된 것이다.
역사는 허무한 비극으로 끝났지만 돈 블루스와 게리 골드먼이 공동 감독한 이 작품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답게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디즈니식 구성의 뮤지컬 애니메이션

사실 아나스타샤의 얘기는 무겁고 어두운 소재여서 아이들과 함께 보는 가족용 애니메이션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소재다.
그런 점에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셈이다.

하지만 영화는 비극을 걷어내고 오로지 아나스타샤가 자신의 신분을 찾는 과정에만 초점을 맞춰 사랑이 깃들인 해피 엔딩으로 몰고 간다.
이를 위해 두 감독이 택한 방식은 로맨스 뮤지컬.

감미로운 세레나데와 축제풍 노래를 곁들여 밝고 환한 하이틴 로맨스 분위기로 끌고 간다.
특히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도 로맨틱 코미디에 강한 멕 라이언과 존 쿠삭을 섭외했다.

손그림과 컴퓨터그래픽을 섞은 영상은 '토이스토리' 이후 컴퓨터그래픽 위주의 애니메이션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향을 보여준다.
손그림의 따스함과 컴퓨터그래픽의 정교함이 적당히 버무려졌다.

여기에 'Once Upon a December' 등 노래도 괜찮고 그림도 볼 만 한데, 결정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기 힘든 건 부실한 스토리 때문이다.
러시아 황실의 비극이라는 어른스러운 주제에 마귀처럼 그린 라스푸틴과의 막판 황당한 대결은 지나치게 유아적이다.

그렇다 보니 권선징악적 해피엔딩으로 치닫는 디즈니식 애니메이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범작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듣기 좋은 음악과 고운 그림은 봐줄 만 하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화사한 색감이 살아 있고 샤프니스가 좋은 편.

DTS-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음이 넓게 확산되는 등 임장감이 좋다.
부록으로 두 감독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뮤직비디오, 미술교실과 2편의 게임이 실려 있는데 음성해설을 포함해 대부분 한글자막이 들어 있고 일부는 우리말로 녹음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전통적 손그림에 컴퓨터그래픽을 결합한 점이 특징. 감독 등 제작진은 실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아가 1주일 동안 건물과 기차 등 3,500장의 사진과 10개의 비디오테이프를 녹화해 이를 보고 그림을 그렸다.
제작진은 애니메이션은 밝아야 한다는 생각에 색을 너무 밝게 써 실제 사건의 비극적 분위기가 살아나지 못했다. 수 많은 군중들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제해 수를 늘렸다.
아나스타샤는 상트페테르부그르에 있는 표트르대제의 궁전이란 뜻의 페테르호프에서 태어났다. 표트르 대제는 이 궁전을 베르사이유 궁을 본따서 여름 별장으로 지었다.
아나스타샤의 과거를 찾아주는 디미트리의 목소리는 존 쿠삭이 연기. 20세기폭스사 애니메이션부가 첫 번째로 만든 이 작품은 과거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사람의 동작을 촬영해 이를 보고 그림을 그렸다.
본명이 그리고리 예피모비치인 러시아정교회의 돌팔이 수도사 라스푸틴은 원래 소를 훔치다가 쫓겨난 농사꾼이었으나 최면술 능력이 있었다. 그는 이를 이용해 로마노프 왕조의 유전병이었던 혈우병으로 고생하던 황태자 알렉산드라의 피를 멎게 하는 신통한 치유 능력을 발휘했다. 덕분에 황후의 절대적 신임을 얻어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고 뇌물을 받았으며, 육체의 속죄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며 숱한 여성들을 농락했다. 그런데도 황제는 그를 신이 보낸 성자로 받들었다.
아나스타샤의 아역 목소리는 당시 12세의 무명이었던 커스틴 던스트가 연기. 성인 아나스타샤의 목소리는 멕 라이언이 맡았다. 멕이 연기를 꺼리자, 폭스사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의 한 시퀀스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멕 라이언 목소리를 입혀 보여줬다. 이를 보고 멕은 출연을 결정했다.
무도회장에 걸려 있는 황제 일가의 그림 왼편에 스패니얼 개가 보인다. 실제로 아나스타샤의 동생인 황태자 알렉세이는 조이라는 이름의 스패니얼을 길렀다. 이 개는 황제 가족이 총살된 뒤에도 살아남았다.
니콜라이 황제 가족의 수영복은 실제 사진 자료를 보고 그대로 그렸다. 혁명군은 1917년 황제 가족을 페테르스부르그 교외 짜르코에셀로궁에 가뒀다가 시베리아의 작은 마을 토볼스크로 옮겼고, 1918년 다시 에카테린부르그로 이주시켰다. 그해 7월17일, 볼세비키들은 황제 가족을 지하실에서 총살시킨 뒤 23km 떨어진 광산으로 옮겨 시체를 태웠다. 이후 1991년 예카테린부르그에서 발굴된 유해는 1998년 상트페테르부르그에 이장됐다.
1920년대 파리에 살았던 지그문트 프로이드 등 명사들이 카메오로 등장. 이 영화는 코닥 필름을 사용했으며, 음악은 데이비드 뉴먼이 맡았다.
찰스 린드버그도 등장. 라스푸틴은 전횡을 일삼다가 황제의 친척들에게 살해됐다. 황제의 조카 유스포프공이 라스푸틴을 만찬에 초대해 12명을 죽일 수 있는 청산가리를 섞은 과자와 비소가 든 포도주를 먹였다. 그러나 라스푸틴이 엄청난 독을 먹고도 죽지 않자, 유스포프 공이 총을 쐈다. 라스푸틴은 여러 발의 총을 맞고도 죽지 않고 달아나는 유스포프 공을 쫓아갔고, 숨어있던 암살대가 습격해 쇠사슬로 감아서 상트페테르부르그의 네바강에 던져 버렸다. 결국 라스푸틴은 익사했다.
점묘법을 연상케 하는 그림. 라스푸틴은 죽기 전 자신의 암살과 러시아 혁명을 예언했다. 그는 또 황제 일가가 자신을 죽이면 황제 가족 또한 자신의 사후 2년 내 모두 죽을 것이란 예언을 했는데 모두 적중했다.
먼 배경을 흐릿하게 그리는 스푸마토 기법이 사용됐다. 아나스타샤의 노래는 '캣츠'로 스타가 된 가수 겸 뮤지컬 배우인 리즈 켈러웨이가 불렀다.
영화속 뮤직박스는 실제 아나스타샤가 갖고 있었다. 실제로 황제의 어머니인 황태후 마리 표도로브나가 아나스타샤의 13세 생일 때 발레리나 인형이 장식된 은으로 만든 뮤직박스를 선물했다.
아나스타샤의 얼굴을 오드리 헵번을 염두에 두고 그렸다. 황태후의 목소리는 안젤라 랜스베리가 연기.
아나스타샤 (1Disc)
아나스타샤 : 블루레이
맥 라이언 출연/존 쿠삭 출연/Don Bluth 감독/Gary Goldman 감독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