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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이야기

울프팩 2012. 10. 26. 11:02
참으로 가슴이 먹먹한 영화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동경이야기'(1953년)는 노부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이야기로 큰 울림을 준다.

미국의 유명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위대한 감독일 뿐 아니라 위대한 선생님"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을 보면 그 말에 절로 공감이 간다.

10년 마다 세계 명작 순위를 메겨 유명한 영국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 사운드'는 올해 발표한 리스트에서  1위 히치콕의 '현기증' , 2위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에 이어 3위로 '동경이야기'를 꼽았다.
이처럼 앞다퉈 이 작품을 명작의 반열에 올려 놓는 까닭은 그만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자식들을 모두 분가시킨 노부부가 자식들을 찾아가면서 격게 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노부부는 자식들이 보고 싶어 하루 걸려 기차를 타고 도쿄까지 찾아가지만 바쁜 일상에 쫓기는 자식들은 부모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오히려 노부부는 그 점을 부담스러워 하는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우려해 집으로 돌아간다.

단순한 이야기 속에는 1950년대 당시 일본의 현대사가 모두 녹아 있다.
한도 가즈토시가 쓴 <쇼와사>를 보면 제 2 차 세계대전에 패배하면서 일본은 모든 것을 잃었다.

미국의 단순 점령지가 되면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국가 인정을 받기까지 약 7년 동안 일본은 국가와 국민으로서 자격과 지위를 잃었다.
모든 산업이 정지됐고 먹을게 부족해 도쿄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처럼 피폐한 전후 일본을 살린 것은 바로 한국전쟁, 즉 6.25 동란이었다.
6.25전쟁이 터지면서 일본은 미군의 군수공장 노릇을 하며 모든 산업이 번창해 경제가 벌떡 일어섰다.

당시 일본 언론들은 한국전쟁을 가리켜 '일본을 살린 신풍'이라고 표현했다.
그때 국가로서 다시 인정받았고 일자리와 돈이 넘쳐나며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 졌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1953년 스탈린이 죽고 6.25 전쟁이 멈추자 일본은 전쟁 특수가 사라질 것을 우려해 주가가 폭락했다.
전쟁 특수를 누리는 동안 일본은 급격한 산업화가 이뤄졌다.

농촌 사람들은 도시로 취직하기 위해 올라가면서 대가족이 해체되고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됐다.
'돈은 1년, 땅은 만년'이라는 당시 일본의 유행어가 암시하듯 부동산 가격은 치솟았다.

마치 우리네 1970년대 산업화를 보는 듯한 모습이 1950년대 일본에서 벌어진 것이다.
'동경이야기'는 바로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했다.

1953년 일본에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크게 히트쳤던 이유도 수 많은 일본인들이 산업화에 밀려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모습들을 영화 속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이를 특유의 단정한 영화문법으로 필름에 담았다.

그의 전매특허인 다다미쇼트부터 움직임이 거의 없이 고정된 카메라, 인물이 없는 비어있는 프레임과 시선축을 무시한 인물의 배열 등 오늘날 오즈 야스지로를 표현하는 모든 특징들이 이 작품에 함축됐다.
특히 일본식 장판이라고 할 수 있는 다다미에 맞춰 약 60~90cm 높이에 카메라를 고정시켜 놓고 인물들을 찍는 다다미 쇼트는 마치 영화 속에 앉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다다미 생활을 한 일본인들에게는 더더욱 영화 속 인물들과 동질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사람들의 감정은 아내의 장례 후 아버지가 며느리에게 하는 대사인 "내가 낳은 자식보다 남인 네가 더 잘해줬다"는 한마디에 녹아 있다.

하지만 결코 자식들의 악의나 고의가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모두 안다.
그저 사는게 바쁠 뿐이다.

그래서 노부부는 "우리는 행복한 편"이라고 안위한다.
그러나 "이렇게 혼자 있으니 하루가 참 길다"는 아버지의 대사에 쓸쓸함이 묻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일장 설교를 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의 평이한 생활을 통해 잊고 있던 진리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힘.

그게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가 주는 울림이다.
환갑날인 1963년 12월12일 세상을 떠난 그는 묘비에도 '무'(無)라는 한 글자만 남겼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의 화질은 예상대로 좋지 않다.
화면이 위아래로 덜컥거리고 필름 노화탓에 밝기가 계속 변한다.
음향은 돌비디지털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땅에서 60~90cm, 딱 다다미 높이에 맞춰 다다미에 앉은 사람들을 잡은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유명한 다다미쇼트.
오즈가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 영화에서 아버지를 연기한 류 치슈는 오즈가 총애한 배우다. 어머니는 히가시야마 치에코가 연기. 두 사람 모두 고인이 됐다.
영화평론가 도날드 리치는 다다미쇼트에 대해 "카메라 앵글을 낮게 가져가면 깊이감이 없어지면서 2차원적인 공간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즉 그림처럼 인물들의 평면적 배치를 통해 전체적인 구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남편은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했는데도 여전히 시부모에게 깍듯한 둘째 며느리는 일본의 대스타 하라 세츠코가 연기. 오즈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그는 오즈가 죽자 은퇴해 영화계를 떠났다.
오즈 영화에는 카메라를 등진 사람들이 자주 나온다. 등이 보이는 인물 덕에 덩달아 보는 이도 듣는 이의 입장이 되며, 축선이 바뀌면서 인물들의 좌우 위치가 달라질 때 혼동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그의 영화 속에서는 항상 사람이 전경에 위치하고 그 너머로 풍경이 보인다. 언제나 사람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그의 시선이 읽히는 대목이다.
햇살에 나무는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아래 노부부가 등돌린 채 말없이 앉아 있는 장면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열마디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는 장면이다.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일렬 배치를 특징으로 봤다. 하지만 이는 오즈의 특성이라기보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일본 문화와도 관련 있다. 그래서 일본 선술집이나 식당을 가보면 일렬로 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큰 아들로 나온 야마무라 소는 할리우드 대작 '도라 도라 도라'에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을 연기해 우리에게 낯이 익다.
환자의 머리 위에 열을 식히기 위해 매단 물주머니가 인상적이다. 광고나 배우 얼굴이 그려진 부채, 동그랗게 타들어가는 모기향 등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풍물들을 볼 수 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도 그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더불어 카메라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점도 이채롭다. 마치 스틸 사진 같다. 그렇다 보니 공간을 세세하게 보면서 생각할 수 있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침묵도 대사다. 그는 55편의 영화를 만들고 환갑날인 63년 12월12일 세상을 떠났다. 그보다 1년 전 죽은 모친의 옆에 묻힌 그의 묘비에는 '無'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동경이야기 (東京物語 : Tokyo Story)okyo Raiders)
오즈 야스지로/류 치슈, 히가시야마 치에코 , 하라 세츠코, 야마무라 소
일본명작 컬렉션 (4) 10 DVD Set (무사시의 전설1,2,3 안녕하세요 동경이야기 가을햇살 생존의기록 호랑이꼬리를 밟은 사나이 거미의성 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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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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