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울프팩 2012. 3. 17. 01:38

'애마부인' '뽕' '어우동'은 1980년대 에로물의 대명사였다.
지금과 달리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어서, 야한 영상을 제대로 못 본 청춘들이 숱하게 이 작품들의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보면서 야한 영화로 소문이 났다.

그렇지만 이제와 다시 보니 몇몇 작품은 그런 평가가 꽤 억울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두용 감독의 '뽕'(1986년)이다.

1925년 나도향이 발표한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노름에 미쳐 전국을 떠도는 남편 때문에 홀로 살아가는 여자가 살기 위해 뭇남성들과 몸을 섞는 얘기다.
내용만 보면 무조건 야한 영화 같지만 이 작품 속에는 일제 강점기 시절 제대로 못먹고 못입고 살던 서민들의 고단한 삶이 스며있다.

원작은 더 이상 떨어질 때 없는 빈한한 서민들의 삶을 가정파탄적인 내용으로 극명하게 드러낸 반면, 영화는 적당한 웃음을 곁들여 마냥 어둡지 않게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마치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처럼 우스우면서도 안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물론 여인네들의 속살이 보이는 등 야한 장면이 나오지만 이를 직접적 묘사보다 넝쿨이 우거진 포도밭과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 등 간접 묘사로 눙치고 넘어가는 감독의 연출력이 예사롭지 않다.
특히 이대근 특유의 코믹한 연기와 한창 때 찰진 이미숙의 연기를 보노라면 그들의 이름이 결코 허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그나마 텔레시네를 잘 한 덕분인지, 생각보다 화질이 괜찮다.
물론 요즘 작품과 비교하면 많이 떨어지지만, 제작연도를 감안하면 색감이나 선명도가 양호하다.

일부 장면은 프레임이 유실돼 소리만 나오고, 잡티도 많이 보인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모노를 지원하며 부록은 전무하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한창 때 이미숙의 물오른 연기를 볼 수 있는 작품.
1970년대 김두한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면서 우직하게 힘쓰는 배역으로 굳어진 이대근은 이 작품에서도 마초적인 머슴을 맡았다.
이미숙은 먹고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시골 아낙을 연기해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여우주연상, 제 6회 영화평론가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이두용 감독이 좋아하는 자신의 작품 중 하나로 꼽는다.
나도향의 비극적인 사실주의 시각을 이 감독은 해학적으로 풀어냈으나 영화사마다 의견이 달라 여러군데를 전전하다가 이태원 사장이 처음 차린 태흥영화사에서 제작해 대박을 터뜨리게 됐다.
1986년 구정 특선작으로 단성사에서 개봉한 이 작품은 걸판진 육담과 해학이 흥행 성공의 비결이었다.
짓궂고 익살맞은 이대근의 표정연기는 압권이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이 개봉한 해에 이대근의 변강쇠 이미지를 굳힌 작품인 '변강쇠'도 개봉했다.
노름과 가부장적 권위를 내세우면서도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남성들은 당시 나라잃은 백성의 전형이다. 이미숙의 남편인 노름꾼 삼보는 이무정이 연기. 그가 훌쩍 기약없이 떠나며 외치던 "뽕을 따야 임도 따지"라는 자조적이며 해학적인 대사가 작품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한다..
극중 이해숙도 단역으로 등장. 지금과 다른 모습이다. 당시 이해숙은 몇 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만큼 신인이 아니었는데도 단역으로 나왔다. 극중 창은 코미디언 이상해의 부인 김영임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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