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수리부엉이 & 게릴라들

울프팩 2012. 3. 30. 23:36

국내 번역 출간된 두 권의 만화 <수리부엉이>와 <게릴라들 : 총을 든 사제>는 영화같은 작품들이다.
내용도 그렇고, 정교한 그림과 화려한 채색 등이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뛰어나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저항하는 인간들을 다뤘다는 점.
더불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고, 성적인 부분도 주저없이 묘사했다.

그렇다고 포르노 수준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볼 만한 수준도 아니다.
그림과 이야기 등을 놓고 볼 때 소장가치가 충분한 만큼 그냥 묻히기에는 아까운 작품들이다. 

<수리 부엉이> 얀 & 로맹 위고 / 길찾기

먼저 얀이 시나리오를 쓰고 로맹 위고가 그림과 채색을 맡은 <수리부엉이>는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독소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구 소련을 침공한 나치 독일의 전투기 조종사와 조국 방위전에 나선 구 소련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창공에서 대결을 펼치는 내용.

언뜻보면 단순 총질이나 하는 작품으로 오해 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서로에게 총질을 하는 적이면서도 인간 존엄성을 짓밟는 권위적인 자국 정부를 조소하는 내부의 적이기도 하다.

특히 무의미한 전쟁의 와중에서 비참하게 유린당하고 소모품처럼 취급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반전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묵직한 작품이다.
탄탄한 이야기도 사람을 빨아들이지만 무엇보다 실사를 보는 듯한 정교한 그림은 오래도록 책장에 머물게 만든다.

어쩜 이리도 정교하게 묘사하고 표현했는 지, 정밀한 밀리터리 프라모델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실사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림을 그린 로맹 위고는 공군 대령의 아들로 태어나 17세때 비행기를 조종해 하늘을 날았다고 한다.

그래픽 학교인 에꼴 에스티엔느를 졸업한 뒤에는 비향기와 공군 관련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다고 한다.
이 같은 경험과 지식이 작품에 녹아들어 매 컷마다 경이로운 그림으로 탄생했다.

그림 뿐만 아니라 내용 또한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저항 시다.
그만큼 매력적이고 놀라운 걸작이어서 이들의 또다른 작품들이 국내에 출간됐으면 좋겠다.

<게릴라들 : 총을 든 사제> 르파주 / 씨네21북스

<게릴라들 : 총을 든 사제>은 또다른 반항과 저항의 송가다.
이 책은 1970년대 소모사의 군부독재정권이 장악하던 니카라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독재정권으로부터 억압받는 민중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총을 든 게릴라들인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과 그들을 돕는 해방신학 신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렇다고 정치적 메시지와 역사 이야기에만 매몰되지 않고, 종교적 의무에 충실해야 하는 사제의 입장 및 욕망과 열정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번민과 고뇌도 잘 녹여 냈다.

특히 한 청년이 신부에서 게릴라로 변해가는 과정을 꽤 설득력있게 그려 냈다.
더불어 동성애에 대한 고민과 묘사도 아주 직설적이다.

작가인 르파주는 이처럼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수채화 같은 그림으로 묘사했다.
만화 특유의 단순화한 선으로 인물을 간결하게 묘사해 표현력을 살렸고, 수채화처럼 농담(濃淡)이 살아 있는 채색으로 니카라과 현지 풍경을 수려하게 살려 냈다.

특히 미장센이 뛰어난 영화를 보는 것 처럼 각 장면에 어울리는 색조를 일관되게 유지한 점이 돋보인다.
특히 물의 농담으로 원근을 살리고, 수도원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살린 그림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한마디로 묵직한 이야기를 정교한 그림과 농밀한 채색으로 잘 살린 명작이다.
이런 작품들이 국내에 많이 소개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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