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구입해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LP 중에 버디 리치와 진 크루파의 'The Drum Battle'이 있다.

걸출한 두 명의 재즈 드러머가 박자를 주거니 받거니 불꽃 튀는 드럼 협연이자 경연을 벌이는 명반이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Whiplash, 2014년)를 보면 버디 리치와 진 크루파의 드럼 배틀이 생각난다.

차이가 있다면 버디 리치와 진 크루파의 대결은 유머러스하며 여유가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선혈이 낭자한 전쟁터다.

내용은 무명의 드러머가 피나는 노력 끝에 최고 밴드의 드러머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주인공은 무수한 도전자들과 경쟁을 벌여 살아남기 위해 손바닥 살이 갈라져 터지도록 드럼을 두드린다.

스네어와 탐탐은 피 터지는 전쟁터처럼 여기저기 선혈이 얼룩져 있다.

 

어쩌면 예측 가능한 단선적인 줄거리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놓지 않은 채 집중해서 보게 만드는 힘은 놀라운 드럼 연주에 있다.

온갖 악기 소리를 뚫고 울려 퍼지는 힘찬 드럼 소리는 머리를 쪼갤 듯 파고든다.

 

드럼 뒤로 브라스 밴드의 풍성한 선율이 커튼처럼 너울거리지만 정작 찬연히 빛나는 것은 오로지 드럼 연주다.

새삼 드럼이라는 악기가 얼마나 풍성한 표현력을 지녔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영화다.


각본을 직접 쓴 차젤레 감독은 고교 시절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한 경험이 있다.

덕분에 영화 속 밴드 이야기와 드럼 연습 등 영화 곳곳에서 벌어지는 위대한 대결과 투쟁이 사실감 넘친다.

 

최고가 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멀리 하는 등 주인공이 자신과 벌이는 끝없는 싸움부터,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밴드 멤버들을 악에 받쳐 닦달하는 선생, 그리고 결정적으로 쉽게 틈을 허락하지 않는 드럼이라는 악기와의 싸움이 시종일관 보는 이를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를 결정적으로 응집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막판 연주 장면이다.

 

주인공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즈 명곡 'caravan'을 연주하는 장면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할 만큼 집중해서 보게 만든다.

새삼 드럼이라는 악기의 위대함을 여실히 드러낸 연주다.

 

주연을 맡은 마일즈 텔러는 실제 드럼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배우가 됐다.

물론 록밴드의 드러머여서 재즈 스타일과 다르기는 했지만 주인공 못지않게 고된 연습을 통해 훌륭한 재즈 드러머로 거듭났다.


그가 실제로 두드린 드럼 연주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머리를 까딱거리게 된다.

아울러 지독한 선생을 연기한 JK 시몬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지르고 의자를 집어던지는 악마적 연기 덕분에 영화의 광적인 에너지가 폭발하듯 살아났다.

활화산 같은 그의 연기를 보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탈 만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촬영도 훌륭했다.

눈이 미처 쫓아가지 못할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드럼 스틱과 땀방울이 뚝뚝 듣는 주인공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면서도 정확하게 스틱이 꽂히는 자리를 짚어 주는 영상은 드럼이라는 악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촬영이다.


그만큼 감독의 연출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절묘한 촬영 등이 잘 결합된 영화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의 화질은 훌륭하다.


디테일이 잘 살아 있고 윤곽선이 깔끔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영화의 흥겨운 분위기를 잘 살렸다.


부록으로 감독의 JK 시몬스의 음성해설, 토론토 영화제 이브닝 행사에 나선 감독과 배우들 인터뷰, 유명 드러머들의 인터뷰, 삭제 장면과 예고편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감독은 재즈 드러머 이야기여서 투자받는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밴드의 합주 연습 장면은 뉴욕이라는 영화 속 설정과 달리 LA의 팰리스 극장에서 촬영.

차젤레 감독은 학창 시절 재즈 합주단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주연인 마일즈 텔러는 6세 때부터 피아노, 15세 때부터 드럼을 쳤다. 그는 3,4주 훈련을 통해 록 드럼 스타일을 재즈 스타일로 바꿨다.

주인공의 애인으로 나온 멜리사 베노이스트는 TV 시리즈 '슈퍼걸'의 주연을 맡았다.

제목인 위플래쉬는 재즈 작곡가 겸 색소폰 연주자인 행크 레비가 만든 재즈 연구족이다. 채찍질을 한다는 단어 뜻처럼 학생들을 혹독하게 가르치는 선생의 교육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화 속 합주단원들은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이거나 전문 연주자들이다.

촬영은 알렉사의 HD 카메라를 이용. 촬영은 19일 만에 끝났다.

마일즈 텔러는 뉴욕대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막판 카네기홀 공연 장면은 현지 촬영이 힘들어서 LA의 오르페움 극장을 빌려서 찍었다.

차젤레 감독은 처음부터 마일즈 텔러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다고 한다. 마일즈는 극 중 주인공의 드럼 연주를 대역 없이 모두 직접 했다.

JK 시몬스는 피아노를 연주한 경력이 있다. 마일즈 텔러는 막판 듀크 엘링턴의 '카라반' 연주에서 9분 동안 이어지는 드럼 솔로를 한 번도 끊지 않고 해냈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위플래쉬 (1Disc)
데이미언 셔젤
위플래쉬 (일반판 오링케이스)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Posted by 울프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