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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7인의 사무라이(블루레이)

울프팩 2018. 1. 5. 18:26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하면 우선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7인의 사무라이'(七人の侍, 1954년)다.
이 작품은 그를 국제적으로 알린 첫 작품이면서 베니스 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전란으로 피폐해진 일본 전국시대에 툭하면 산적에게 시달리는 농촌 사람들이 7명의 사무라이를 고용해 산적들을 막는 내용이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잘 살아 있고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적 갈등과 싸움 장면을 긴장감 넘치게 묘사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만든다.

특히 산적을 유인해 덫에 가두듯 마을에 하나씩 몰아넣고 때려잡다가 빗속에서 최후의 결전을 치르기까지 긴장감을 점차 높여 나가는 연출 솜씨가 일품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두 가지를 강조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사무라이라는 직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와 함께 사라져 간 변화 속 존재다.

 

반면 농민들은 사무라이들이 판치던 전국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살아남아있는 변하지 않는 존재다.

이는 곧 질긴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대비가 있다.

사무라이들의 칼이 죽음을 이야기한다면 농부들의 칼은 삶을 이야기한다.

 

죽음과 삶이 본디 하나이지만 겨울을 밀어내고 봄이 오듯 죽음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생명력이다.

막판 치열한 싸움을 치른 뒤 활기차게 노래를 부르며 모를 심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고 "이번에도 우리는 졌어. 이긴 것은 저 농부들이야"라는 사무라이의 대사가 이를 대변한다.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질긴 생명력의 암시다.

미국의 율 브린너는 이 작품에 빠져서 판권을 구입해 '황야의 7인'이라는 이름의 서부극으로 다시 만들었으며, 샘 페킨퍼 감독은 이 작품에서 '와일드 번치'의 모티브를 얻었다.

 

하지만 영화 속 또 다른 줄기인 남녀의 로맨스를 두고 이 작품과 '황야의 7인'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황야의 7인'이 할리우드식 해피엔딩을 지향한다면 이 작품은 확실한 답을 하지 않고 관객의 상상에 맡겼다.

 

다만 시대적 정황을 감안했을 때 할리우드 해피엔딩과 다른 결말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네마테크용 필름은 141분이지만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과거 DVD 타이틀과 마찬가지로 3시간이 넘는 207분짜리 오리지널 영상이 그대로 수록됐다.


1080p 풀 HD의 4대 3 풀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워낙 오래된 흑백 영상이어서 화질을 논하는 것이 의미 없다.

필름 손상 흔적인 세로 줄무늬가 여기저기 나타나고 밝기도 달라지는 등 화질 편차가 있다.

 

플리커링도 간간이 보이지만 그래도 70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난한 화질이다.

특히 DVD 타이틀보다 화질이 많이 개선됐다.

 

음향은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영상 두 편이 들어 있는데, 한글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마을을 습격할 틈을 노리는 산적 떼. 주인을 잃은 사무라이들이 떠돌다가 산적 떼가 됐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무성영화 변사로 일하던 셋째 형과 살며 화가를 꿈꿨다. 그러나 유성영화가 등장하며 일자리를 잃은 형이 자살하면서 구로사와 감독은 인생의 행로를 감독으로 바꿨다.
구로사와 감독은 1943년 '스가타 산시로'로 감독 데뷔를 했다.
장검으로 땅을 버티고 선 낭인 무사를 연기한 미후네 도시로. '황야의 7인'에서 독일 배후 호르스트 부흐홀즈가 같은 역을 연기했다. '황야의 7인'에서는 기무라 이사오가 맡은 배역도 섞였다.
장작 패는 사무라이. '황야의 7인'에서 찰스 브론슨이 같은 역을 맡았다.
칼을 맞잡은 채 노려보는 정적인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동적 상태로 달라지는 사무라이의 대결 장면은 서부극의 결투 구도와 흡사하다. '황야의 7인'에서 제임스 코번이 신들린 검객같은 칼잡이를 연기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농부의 딸과 사무라이의 사랑을 통해 계급 간 갈등을 극복하려고 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독특한 원형 구도.
구로사와 감독은 1950년 '라쇼몽'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 1980년 '카게무샤'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감독이 됐다. 그는 1998년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도호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대신 이즈반도에 마을을 재현한 세트장을 만들어 촬영했다. 그 바람에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미후네 도시로는 운동신경이 뛰어나 영화 속 스턴트를 직접 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여러 대의 카메라로 촬영해 다양한 영상을 포착했다.
빗속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결전이 처절하다.
음악은 하야사카 후미오가 담당. 그는 구로사와 감독의 '주정뱅이 천사' '이키루',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산소다유' '우게츠 이야기' 등에서도 음악을 맡았다.
계급 간 갈등이 두드러지지 않았던 '황야의 7인'과 달리 계급 갈등이 선명하게 부각된 이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결국 갈등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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